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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물 신약은 해외보다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우리만의 것이다. 천연물 신약 전문회사가 주류는 되지는 않고, 니치마켓(niche market)에 있더라도 우리나라가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영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고 싶다."
손미원 엠테라파마 대표는 지난 2015년부터 천연물 신약 전문 벤처를 차리겠다는 꿈을 공공연히 드러내 왔다. 그러던 손 대표가 지난 2월12일 엠테라파마를 설립했다.
엠테라파마 사명에는 '멀티 타깃 주도의 혁신 치료(Multi-target-driven Innovative Therapeutics)'라는 뜻이 담겼다. 단일 타깃의 화합물 바이오의약품으로는 효력이 미흡한 만성 난치성 질환을 개선하는 치료제를 연구개발하겠다는 게 엠테라파마의 목표다.
◆ 글로벌 천연물 신약 성장 속도 매서운데… 국내는 제자리걸음
천연물 신약이란 인체 효능이 경험적으로 알려진 천연물의 작용 원리를 규명한 뒤 그 성분을 이용해 만든 새로운 의약품을 뜻한다. 미국에서는 식물성 약(Botanical Drug), 유럽에서는 허브 의약품(Herbal Medicainal Products) 등으로 부른다.
천연물 신약의 강점은 개발 시 성공확률이 화합물 신약에 비해 높은데다 상용화하면 매출도 잘 나온다는 점이다. 또한, 천연물 신약은 기존에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안전성 문제에서 큰 부작용 우려 없이 개발할 수 있다.
이날 인터뷰에 동참한 장영표 경희대 약대 교수는 "(천연물 신약은) 전통적으로 우리가 충분히 오래 사용해 왔고 큰 부작용이 없기 때문에 케미컬(화합물 신약)보다는 적어도 안전성 문제에서 위험할 가능성은 낮다"며 "제약사의 큰 이슈인 안전성 문제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서 출발할 수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천연물 신약의 멀티 타깃 작용 기전을 어떻게 잘 밝혀서 설득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천연물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약물의 작용 기전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은 물론, 원료 물질과 완제품의 유효성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CMC(의약품 제조·품질관리)의 고도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엠테라파마는 다양한 CMC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균일한 품질의 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천연물 신약 시장 규모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천연물 신약 시장 규모는 지난 2011년 187조원에서 2023년 423조원으로 성장했다. 이 중 미국 천연물 신약 시장은 매출액 기준으로 지난 2012년 175만 달러에서 2017년 6억 달러로 연평균 128% 급증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기준으로 국산 신약 37개 중 천연물 신약은 8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같은 기간 100억원 이상의 연매출을 거두며 성공한 의약품 기준으로 살펴보면 화합물 신약이 17.2%, 천연물 신약이 62.5%로 역전된다.
화합물 신약 중 카나브정(507억원), 제미글로정(315억원), 놀텍정(186억원), 듀비에정(162억원), 올리타정(102억원) 등이 총 1272억원 규모의 매출을 거둔 동안 천연물 신약은 스티렌정(916억원), 조인스정(346억원), 시네츄라시럽(338억원), 레일라정(264억원), 모티리톤정(258억원) 등 총 2122억원의 연매출을 기록했다. -
◆ 손미원 대표, 상위제약사와 바이오벤처 두루 경험한 '천연물 신약 전문가'
천연물 신약 전문가로 손꼽히는 손 대표는 동아에스티에서 연구소장, 연구기획실장을 지낸 후 헬릭스미스 부사장으로 근무했던 인물이다. 지식경제 R&D전략기단 천연물 신약 사업단획장도 역임했다.
손 대표는 상위제약사와 1세대 바이오벤처 양쪽에서 일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엠테라파마를 이끌어갈 계획이다. 손 대표는 "동아에스티에 있을 때는 신약 발매까지 이르는 신약개발 전주기를 배웠고, 헬릭스미스에서는 바이오벤처가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대해 배웠다"고 강조했다.
손 대표는 동아에스티 재직 당시 위염치료제 '스티렌'의 약리 연구를 맡았으며, 기능성소화불량 치료제 '모티리톤'의 연구 책임자로서 천연물 신약을 연구·개발했다. 스티렌은 연매출 최고 900억원대로 국내 매출 1위를 기록한 동아에스티의 '간판 천연물 신약'이며, 모티리톤 역시 연매출 200억원 이상을 기록해 왔다.
글로벌 천연물 신약으로는 당뇨병성신경병증 치료제 'DA-9801', 파킨슨병 치료제 'DA-9805', 치매 치료제 'DA-9803' 등의 개발을 총괄했다. 이 중 DA-9801은 미국 임상 2상에 성공했으며, DA-9805는 미국 임상 2상을 개시했다.
손 대표는 지난 2017년 7월 헬릭스미스(당시 바이로메드)에 합류해 천연물 신약 제품 개발을 주도해 왔다. 손 대표는 헬릭스미스에서 파킨슨병 치료제 'HX203'를 총괄연구했다.
손 대표는 헬릭스미스에서 퇴사해 엠테라파마를 설립하면서 HX203을 엠테라파마에 기술이전해 MT101로 바꿨다. MT101은 전임상 단계에 있으며, 내년부터 임상 1상, 2a상(전기 임상 2상)에 진입해 오는 2023년 임상 2a상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외에도 염증성 장질환 치료제 'MT102', 2형 당뇨병 치료제 'MT103', 치매 치료제 'MT104' 등의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해당 치료제들은 후보 도출 단계에 있다.
주로 만성 난치성 질환을 겨냥한 파이프라인이다. 만성 난치성 질환은 다양한 타깃에 문제가 생긴 질환이기 때문에 천연물 신약이 유리하다는 게 손 대표의 생각이다. 손 대표는 "멀티플 타깃팅 테라피가 만성 질환에서 중요하다"며 "화합물 신약은 단일 타깃이지만 천연물 신약은 방법론적으로 (다양한 성분을) 섞어서 의약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조합 요법(combination therapy)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헬릭스미스와는 각자의 길로… 쟁쟁한 공동창업자들과의 시너지 기대
손 대표의 헬릭스미스 퇴사 시점은 1월31일이고, 엠테라파마 설립일자는 2월12일이다. 손 대표가 이처럼 단기간에 창업할 수 있었던 데에는 천연물 신약에 관심을 기울여온 교수들의 도움이 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손 대표는 "지난해 헬릭스미스에서 분사(spin-off)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것과 전혀 다른 시나리오로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교수님들과 의기투합이 순식간에 됐기 때문"이라며 "저 혼자 생각했으면 이런 속도로 (벤처 설립까지) 못 갔고, 교수님들이 도와줘서 빠른 속도로 이끌게 됐다"고 말했다.
당초 헬릭스미스와 분사한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결국 엠테라파마는 신규 법인 설립을 통해 헬릭스미스와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손 대표는 헬릭스미스에서 기술이전, 특허 승계 등을 도와준 점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손 대표는 "헬릭스미스가 기술이전하고, 특허도 승계하는 등 지원해줘서 감사하다"며 "향후 헬릭스미스도 임상을 잘 해서 명성을 되찾길 바란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엠테라파마에는 김선여 가천대 약대 교수, 김상건 서울대 약대 교수, 오명숙 경희대 약대 교수, 이충환 건국대 시스템생명공학과 교수, 장영표 경희대 약대 교수 등이 공동창업자로 합류했다. 손 대표는 "하나같이 각 분야에서 쟁쟁한 분들"이라며 "이 분들과 이룰 시너지가 기대된다"고 언급했다.
손 대표의 궁극적인 꿈은 글로벌 천연물 신약 개발이다. 되도록이면 오는 2023년까지 MT101의 임상 2a상을 완료하고, 오는 2024년 엠테라파마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예정이다. 글로벌 파트너링을 통한 조인트벤처(JV) 설립도 검토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손 대표는 "엠테라파마가 연구개발회사로서 글로벌 리더가 되는 게 꿈"이라며 "미국에 NDA(신약허가 신청)하는 회사로 성장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버드나무에서 유래한 진통제 '아스피린', 주목나무에서 유래한 항암제 '탁솔', 개똥쑥에서 유래한 항말라리아제 '아르테미시닌'…. 이미 시판 중인 글로벌 천연물 신약들이다. 국내에서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천연물 신약이 탄생하길 고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