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이 구상하고 제안한 동아시아철도공동체(EARC) 설립이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재확산과 미·중 무역 갈등 격화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당장 오는 10월로 계획했던 EARC 국제포럼이 연말께로 연기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1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EARC는 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안했다. 한국·북한·중국·러시아·몽골·일본 등 동북아시아 6개국과 미국이 참여하는 협의체에서 철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평화기반 구축과 공동 번영을 위한 인프라 투자와 경제협력 사업을 벌이자는 구상이다.
국토부는 올해 4월29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한국철도시설공단,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교통연구원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EARC 국제포럼 설립을 추진해왔다. EARC 국제포럼은 관계국 간 EARC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실행 가능한 실천과제를 도출하는 논의의 장으로 계획됐다. 당시 국토부 황성규 철도국장은 "EARC 구상 실현의 성패는 설립 필요성에 대한 관계국 간 공감대 형성에 있다"면서 "국제포럼이 공감대 형성의 밑거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
그러나 코로나19가 2차 대유행 조짐을 보이면서 방역당국이 방역수위를 높이는 상황이어서 EARC 국제포럼이 예정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국토부 철도정책과 관계자는 "애초 업무계획에는 오는 10월 국제포럼을 열기로 했으나 코로나19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서 "(국토부) 내부적으로는 도저히 상황이 어렵다 보고 (사실상) 12월 초쯤으로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재확산 속에 행사에 참석하려면 2주간 격리가 이뤄져야 하는 등 여러모로 행사 진행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토부는 온라인상에서 비대면으로 국제행사를 치르는 방법도 검토했으나 EARC 설립 추진 과정에서 열리는 국제포럼의 의미를 고려할 때 오프라인 행사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EARC 설립에 힘을 실으려고) 관계국의 장·차관급 인사가 참석하는 행사로 만들려 한다"며 "온라인 행사로는 아무래도 메시지 전달에 부족한 감이 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오는 12월에는 국내외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될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다. 국토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
EARC 관련국인 미국과 중국, 일본, 북한의 정치적 역학 구도가 단단히 꼬인 데다 갈등이 언제 풀릴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도 골칫거리다.
국토부 관계자는 "중국과 몽골, 러시아는 국제포럼 참석과 EARC 참여에 긍정적인 태도"라고 전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 등은 현재로선 정부 차원의 참여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는 게 공식 입장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토부는 미국과 일본은 정부기관 대신 저명한 민간 연구기관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미국은 국제전략연구소(CSIS), 일본은 동아시아교통협회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참석 여부를 타진하는 중이다.
비핵화 문제의 당사자인 북한도 주요 변수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EARC 철도 연계 사업에는 북한이 지정학적으로 끼어있어 북한의 참여가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미·북 간 대화는 좀처럼 외교적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 대선을 앞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낙선한다면 국제 외교정세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현 정부 들어 과거사 문제와 경제보복 조치 논란으로 급속히 얼어붙은 한·일 관계, 날로 격화하는 미·중 간 무역 갈등도 EARC 실현에 있어 암초로 지적된다. 일각에선 오는 12월 EARC 국제포럼이 열려도 미국과 일본, 북한이 빠진다면 반쪽짜리 행사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견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