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사무총장 유엔연설서 횡재세 공식 요청英 등 횡재세 도입… 국내서도 논의 가속화국가별 산업구조 달라… 자칫 투자 위축 초래도
  • ▲ 주유소. ⓒ강민석 기자
    ▲ 주유소. ⓒ강민석 기자
    최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유가 상승으로 큰 이익을 본 석유기업에 '횡재세'를 물릴 것을 촉구하면서, 그 파장이 국내까지 이어지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이익에 따른 단순 논리라며 반시장적 투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횡재세는 기록적인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글로벌 석유기업들이 예상을 뛰어넘는 초과수익(횡재)을 거뒀기 때문에 이의 일정 부분을 세금으로 환급 조치하는 것을 말한다.

    구테후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제77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기조연설에서 "모든 선진국에 화석연료 회사들의 횡재이익에 대한 세금 부과를 촉구한다"며 횡재세 부과를 요청했다. 기금을 조성해 기후 변화로 피해를 입은 국가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고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국내에서도 횡재세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회에서는 11월 3일에 횡재세 관련 토론회가 열릴 계획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으로 여는 토론회로 정부-학계 관계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인사도 섭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 1일 정유사와 시중은행의 초과이득에 특별 과세하는 이른바 '한국판 횡재세법'(법인세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8일 대표 발의한 법인세법 개정안에 이어 두 번째다. 

    용혜인 의원안은 부과대상에 은행을 추가한 것이 특징이다. 또 이성만 의원안이 횡재세 과세요건으로 초과이득과 유류세 인하 조치를 두고 있는 반면, 초과이득만으로 횡재세가 과세토록 했다.

    실제 일부 유럽 국가는 이미 횡재세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 5월부터 석유 및 가스 회사에 초과 이윤세를 25% 늘려 부과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한시적으로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다.

    다만 국가마다 정유 사업구조가 상이하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영국 등 기업이 원유를 직접 시추하고 되파는 업스트림 구조라면,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를 수입해와 가공해 되파는 다운스트림 구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자는 원유 시추 비용은 그대로나 유가 상승에 판매가격이 높아지면서 이윤을 크게 늘릴 수 있지만, 후자는 원가 상승분을 그대로 떠안는다.

    아울러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정유사가 지난 2014년 및 2020년 대규모 적자 및 손실을 기록할 당시 정부의 지원 및 적자 보전이 없었던 상황에서 일시적 고수익에 대해서만 과세한다면 조세 형평성에 위배될 뿐 더러, 기업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의견이다.

    영국이 횡재세를 도입하자 지난 5월 석유 메이저 BP는 180억 파운드(28조47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밝힌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상반기에 창출한 수익으로 친환경-탈정유 등 신사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며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은 자칫 기업의 투자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유사들이 내수를 통해 폭리를 취해 도입한다는 횡재세는 논리적 결함을 내포한다. 

    정유사들의 직영 주유소는 지난 6월 기준 전국 주유소(1만1000여 개)의 7~8%에 불과해 수익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오히려 매출의 70% 안팎을 수출로 벌어들이고 있다. 

    8월 수출 기준 석유제품은 전년 동월 대비 113.6% 상승한 약 65억7000만 달러(9조3340억원)를 나타냈다. 전체 수출 가운데 12%로 반도체에 이어 2위다. 

    한편 상반기와 달리 정유사들의 하반기 전망은 좋지 않은 상황이다. 

    정유사의 핵심 수익지표인 정제마진은 9월 셋째 주 기준, 배럴당 0 달러를 기록했다. 연중 최고치인 6월 넷째 주(29.5 달러) 대비 급락한 수준이다. 통상 정유업계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4~5 달러다.

    업계 관계자는 "2분기 막바지부터 정제마진이 많이 빠지고 있다"며 "이런 와중에 횡재세 도입은 정유사들에 너무 가혹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자유시장 경쟁 원리에도 맞지 않는 반시장적 투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