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법 개정안 상임위에 계류직선제 OK·연임허용 '발목'타 협동조합과 형평성 논란… 농협만 '단임제'조합장 88.7% 연임허용 '찬성'
  • ▲ 농협.ⓒ뉴데일리DB
    ▲ 농협.ⓒ뉴데일리DB
    #1. 지난 16일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을 뽑는 선거가 3파전으로 치러졌다. 현 임준택 회장은 불출마했다. 대신 김임권 전 회장이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이런 광경은 수협중앙회장이 연임은 안 되지만, 중임은 허용하고 있어서다.

    #2. 협동조합 가운데 이런 모습조차 생경한 곳이 있다. 바로 농협중앙회다. 농협중앙회장은 과거 정부가 임명하다가 1988년부터 조합장에 의한 직선제로 바뀌었다. 4년 임기에 연임 포함 중임할 수 있었다. 이후 MB(이명박) 정부에서 대의원이 뽑는 간선제로 선출방식이 바뀌면서 연임·중임을 제한했다. 4년 단임제가 된 것이다.

    현재 정부가 출자한 법인이나 공공기관이 아닌 데도 법률에서 조직 수장의 임기를 단임제로 못 박은 것은 농협중앙회장이 유일하다. 이에 조합의 구성원들이 조합원을 대표하는 회장을 평가하고 직접 뽑을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지난 20대 국회에서부터 이런 의견을 반영한 농협법 개정안이 속속 발의되기 시작했다. 이후 정부와 국회 차원의 공청회, 전문가 토론회 등을 거치면서 지난해부터 전체 조합장 직선제로 선출방식이 환원됐다.

    이제 농협중앙회장 선출방식 정상화의 남은 과제는 연임 허용이다. 농협중앙회장의 연임을 1회 허용하는 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채 계류 중이다. 야당 몇몇 의원이 연임 허용에 반대하고 있어서다. 오는 20~21일 농해수위 전체회의가 예정된 가운데 2월 임시국회에서 농협법 개정안이 통과될지 주목된다.
  • ▲ 구호 외치는 전국농민회총연맹.ⓒ연합뉴스
    ▲ 구호 외치는 전국농민회총연맹.ⓒ연합뉴스
    일부 농민단체는 연임을 계속 제한해야 한다는 태도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지난해 12월 개정안이 상임위 법안소위를 통과하자 성명을 내고 "농협중앙회장의 '셀프연임'을 허용하는 개악안이 법안소위에서 통과됐다"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전농은 "농협중앙회장 임기를 단임으로 제한한 이유는 연임 허용 당시 중앙회장의 활동이 연임을 위한 활동으로 변질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비리로 연임한 중앙회장 4명 중 3명이 구속됐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며 "중앙회장에게 권한이 지나치게 집중된 것도 문제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할 대책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농은 "이번 개정안은 현직 이성희 중앙회장의 연임이 가능한 초법적 내용을 담고 있다"며 "특정인을 위해 국회가 움직였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 농협.ⓒ연합뉴스
    ▲ 농협.ⓒ연합뉴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먼저 단임제를 도입한 원인이 해결됐다는 의견이 적잖다. 회장직이 비상근인 데다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거대 조직이 8대 법인으로 분리되면서 회장의 권한 집중이 과거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비치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화했다는 것이다.

    형평성 시비도 불거진다. 다른 협동조합과 달리 유독 농협중앙회장만 단임제를 고수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한국협동조합협의회에 소속된 산림조합중앙회, 신협중앙회, 새마을금고중앙회 등은 중앙회장 연임을 1회 허용한다.

    단임제 도입의 부작용도 연임 반대논리 못지않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전농은 연임을 허용하면 중앙회장의 활동이 연임에 치중될 거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단임제도 일회성·보여주기 사업을 부채질하고, 사업의 연속성이 조합원의 선택이 아니라 법으로 단절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반론이 나온다. 어차피 다음 기회는 없기 때문에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위주의 생색내기 사업에 집중하는 등 책임 경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중앙회장 입장에서도 임기 4년은 실질적으로 일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과거 협동조합 중앙회장을 지냈던 A씨는 "임기가 4년이지만, 조직·업무 파악을 하고 필요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일할 만하게 되면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현상)에 빠지게 되더라"고 하소연했다.

    무엇보다 농협의 실질적인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조합원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연임 여부도 조합원들의 자율적인 의사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농협법 개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윤재갑·김승남 의원도 연임제 도입의 당위성으로 경영에 대한 조합원의 중간평가 효과를 든다. 중앙회장의 연임을 허용하는 신협중앙회, 중소기업중앙회 등의 구성원은 연임제를 통해 중앙회장의 역할과 성과를 평가할 기회와 권리를 얻는다는 설명이다. 단임제 아래에선 중앙회장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서면 끝이기 때문에 조합원이 중앙회장의 공과를 평가할 기회 자체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농민단체 한 관계자는 "하물며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도 임기 중 총선이나 지방선거 등을 통해 국민이 정부 정책 등을 평가한다"면서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연임제 도입은 중앙회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합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을 잘하면 연임하고, 못 하면 물갈이할 권리를 법이 아닌 조합원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논리다.
  • ▲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도입 관련 농협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연합뉴스
    ▲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도입 관련 농협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연합뉴스
    지난해 12월 6일 전국 농·축협 조합장들은 국회 소통관에서 연임제 도입을 찬성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무기명 투표로 익명성을 보장한 가운데 농협 구성원의 의사를 물은 결과 전체 조합장의 88.7%가 중앙회장 연임 허용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조사에 참여한 1045명 중 927명이 연임제 도입에 찬성했고, 반대 의견은 100명(9.6%)에 그쳤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단임제 부작용을 방지하고 농협의 중장기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기반으로서 연임제 도입이 필요하다"면서 "농업·농촌의 중장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현직 여부와 상관없이 실력과 열정을 가진 조합원이라면 누구나 선거에 입후보해 공약과 비전으로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현 이성희 중앙회장에 대한 셀프연임 논란도 지나친 기우라고 일축한다. 연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다른 협동조합의 사례를 보면 연임에 성공한 사례가 신협중앙회장은 5명 중 1명(20%), 중기중앙회장은 4명 중 2명(50%)으로, '현직 불패'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