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련 간부 강경진압 계기로 7년5개월만에 사회적대화 불참 선언경사노위, 노동계 전무 '소통창구' 무색… 노·정 갈등 심화 불 보듯노동개혁에 악영향 예상… 어려운 경제상황에 韓투자 매력도 감소전문가들 "상생 위해 대화 필요… 정부가 책임지고 개혁 추진해야"
  • ▲ 7일 한국노총 전남 광양지역지부 회의실에서 한국노총 김동명 위원장과 참석 위원들이 한국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불참ㆍ탈퇴 여부를 논의하는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 7일 한국노총 전남 광양지역지부 회의실에서 한국노총 김동명 위원장과 참석 위원들이 한국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불참ㆍ탈퇴 여부를 논의하는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7일 대통령 직속 노·사·정 대화기구인 한국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노·정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소통 단절까지 이뤄지면서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이 기로에 선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노총의 불참 선언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일부 전문가는 경사노위가 대화의 창구가 아닌 흥정의 창구로 변질됐다며 정부가 진정성을 가지고 노동개혁을 추진하되 책임을 지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전남 광양 지부 회의실에서 제100차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경사노위 참여를 전면 중단하기로 결의했다. 회의에는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류기섭 사무총장을 비롯해 회원 조합 대표자, 지역본부 의장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논의한 결과 사회적 대화 참여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다만 아예 탈퇴할지 여부는 김 위원장 등 집행부에 위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만 논의과정에서는 탈퇴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노총은 오는 8일 오전 10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논의 결과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결정은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의 구속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김 사무처장은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하청업체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고공 농성을 벌이다 지난달 31일 체포됐다. 김 사무처장은 체포 과정에서 정글도와 쇠파이프를 휘둘렀고 경찰은 경찰봉으로 이에 대응했다.

    한국노총은 경찰이 과잉진압을 했다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중집위 모두발언에서 "경찰의 폭력 진압 대상은 김만재 위원장과 김준영 사무처장만이 아니라 한국노총 150만 조합원, 2500만 노동자의 삶"이라며 "이런 폭력 사태는 윤석열 정권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고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의 이번 불참 선언은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경사노위 전신인 노사정위 불참을 결정한 이후 7년 5개월만이다. 박근혜 정부 때에는 저성과자 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지침 마련에 반발하며 불참을 선언했었다. 이후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로 노동계 인사들을 초청해 진행한 만찬을 계기로 사실상 복귀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한국노총은 그동안 경사노위의 유일한 노동계 인사로 참여해 왔다. 양대 노총의 하나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1999년 노사정위를 탈퇴한 이후로 줄곧 사회적 대화에 불참해왔다.

    그동안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에 비해 다소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합리적인 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창구로 통해왔다. 이 때문에 이번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중단 결정은 정부로선 부담일 수밖에 없다. 노·정 간 공식적인 대화 창구가 사실상 완전히 닫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연금개혁 등과 함께 노동 개혁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 중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의 불법 집단운송거부(파업)를 계기로 노동개혁의 고삐를 바짝 쥐고 있다. 하지만 이후 주 52시간 근로제 개편, 노조회계 투명성 강화, 고용세습 근절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진 노·정 갈등은 최근까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노동계는 이번 불참 선언을 계기로 대정부 투쟁의 수위를 높일 공산이 크다. 당장 8일에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3차 전원회의가 예정돼 있다. 최임위는 지난 1·2차 회의에서도 인상을 주장하는 노동계와 동결을 요구하는 경영계 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설상가상 노동계는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정부의 노동개혁에 앞장서는 인물이라며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선 분위기가 흉흉한 최임위가 파행을 겪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최저임금위 파행은 본격적인 노동계 하투(夏鬪)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가뜩이나 수출 부진과 대외 불확실성 확대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는 가운데 노동개혁 드라이브가 자칫 노·정 간 전면전 양상으로 번질 경우 한국에 대한 투자 매력도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 ▲ 한국노총 제100차 긴급중앙집행위원회.ⓒ연합뉴스
    ▲ 한국노총 제100차 긴급중앙집행위원회.ⓒ연합뉴스
    다만 노동, 경제전문가들은 이참에 경사노위 대화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노동연구원장을 지낸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사노위 자체가 황당한 방식이다. 노사 관계를 그런 식으로 이끌어 가면 안 된다"며 "경사노위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도 "경사노위는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만든 것"이라며 "노동계도 대화 참여 자체를 전제로 무언가 보상을 받겠다고 생떼를 쓴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과거 박근혜 정부 때도 노사정위를 운영했지만, 사실 지켜진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합의해서 국회로 가봐야 서로 존중이 없다 보니 사측이 요구하는 것은 전부 폐기되고 말았다"고 부연했다. 이 교수는 "진짜 노동개혁을 하고 싶다면 정부가 책임지고 하면 된다. 독일 정부가 과거 하르츠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총리가 책임을 지고 일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라며 "국회는 노동개혁을 위한 법률을 만들고 정부는 노동계를 설득하면 된다. 정치적 책임은 지도자가 지면 된다"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노총의 불참 선언은 부적절하다"면서 "노동개혁이라는 것이 무조건 노조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상생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화가 필요하다. (논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불참해선 곤란하다"고 대화 참여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