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수적 우위로 '노란봉투법' 강행 처리… 노동계 "즉시 공포해야"예산안 심사도 난항… 나랏빚 1100조 원인데도 더 빚내자 주장韓경제 회복세인데… 野·勞 공세로 리스크 가중·투자 매력도 하락
  • ▲ 한국노총 김동명 위원장과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이 22일 국회에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8월 임시국회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 한국노총 김동명 위원장과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이 22일 국회에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8월 임시국회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가 기지개를 켜고 있는 우리 경제의 회복세를 가로막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야당은 나랏빚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곤궁하게 만들 뿐 아니라 '불법파업 조장법'이라 불리는 '노란봉투법'마저 수적 우위로 강행 처리하면서 노동시장 리스크를 가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쟁과 노동시장의 혼란 등으로 인해 경제 회복에 힘을 싣기는커녕 대외 신인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일 국회에서 일명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법안 직회부와 강행 처리에 반대하며 표결 전 본희의장을 나갔다. 노란봉투법은 야당 174인이 참여한 투표에서 찬성 173표, 기권 1표를 얻어 가결됐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쟁의 과정에서 일어난 폭력 등을 제외하고는 노동자들의 쟁의 행위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이나 가압류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 파견직·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고, 노동쟁의의 대상도 양 당사자 간의 합의를 뜻하는 '근로조건의 결정'에 대한 분쟁에서 '근로조건' 자체에 대한 분쟁으로 확대해 쟁의 행위 범위를 넓혔다.

    경영계는 줄곧 노란봉투법이 정당한 쟁의행위뿐만 아니라 불법적인 쟁의행위마저도 면책해 주는 '불법파업 조장법'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해 왔다. 법이 공포되면 1년 내내 산업 현장에서 불법행위 등이 일어나 큰 혼란이 벌어지고, 기업인들은 추상적인 사용자 범위 확대로 인해 잠재적인 범죄자로 인식돼 경영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노동계는 반대로 '합법파업 보장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복잡한 원·하청 관계를 벗어나 실질 사용자가 교섭에 참여함으로써 불필요한 쟁의행위와 노사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견해다. 민주당은 노동계와 보폭을 맞춰 노란봉투법의 입법을 준비해 왔다.

    정부는 노란봉투법 처리에 난색을 표한다. '노동개혁'을 주요 국정과제 삼아 추진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은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해 줄곧 엄정한 대응 기조를 밝혀왔다. 지난달 1일부터 회계 결산 결과를 공시한 노조에게만 세액공제 혜택을 주도록 의무화한 것 등이 대표 사례다. 현재 정부는 노란봉투법 공포를 막기 위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카드를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9일 법안 통과 이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입장문을 내고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 요청을 중단하라"며 "국민 민의를 따르고 입법부와 사법부의 뜻이기도 한 노조법 개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성명을 통해 "20년 만에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 노조법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노조법 개정안을 즉각 공포하고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양대노총은 노란봉투법을 계기로 그동안 준비해 왔던 대규모 집회에 더욱 화력을 더할 예정이다. 여기엔 지난달 시행된 노조 회계 공시 의무화에 대한 반발도 녹아있다. 이들은 11일 총 30만 명 규모의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서울 여의도 인근에 결집해 '윤 정권 퇴진'을 주장하며 행진할 예정이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저지도 주요 구호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노사 갈등을 넘은 노정 간 대립 심화는 시장에 대한 불안감을 키워 한국의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 ▲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22일 국회에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8월 임시국회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22일 국회에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8월 임시국회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달 말까지 이어지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서 민주당이 재차 대폭 증액을 주장하는 것도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갈아먹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나랏빚은 처음으로 1100조 원에 육박한 상태다. 설상가상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펑크'마저 거론되는 상황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중앙정부 채무는 1099조6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채무가 1101조7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본다.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를 내세우며 긴축 재정을 나서고 있지만, 제1 야당인 민주당은 오히려 빚을 더 내서라도 예산을 더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허영 민주당 의원은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은 감세와 긴축이 결합한 최악의 정책 조합이다. 마이너스 효과로 경제를 위축시키고 재정건전성을 오히려 해칠 수 있다"며 대폭 증액을 촉구했다. 같은 당 김병욱 의원도 "정부는 교조적이고 원칙적인 입장을 접고 좀 더 실용적으로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라"고 주장했다. 앞선 예결위에서도 민주당은 거듭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를 비판하면서 예산 확대 편성을 요구했다. 

    민주당의 이런 주장은 애초 나랏빚이 큰 폭으로 증가한 탓이 전임 문재인 정부에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크다. 나랏빚이 대폭 늘어난 시작점은 문재인 정부 때로, 당시 문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이유로 확장재정을 운용하며 적자국채 발행으로 나랏빚을 대폭 늘렸다. 문 정부는 민생을 위해 확장재정이 필요했다는 당위를 내세웠지만, 똑같이 팬데믹을 겪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채무 증가율이 유독 지나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문 정부 초기인 2017년 627조4000억 원이었던 국가채무는 지난해 1033조4000억 원으로 406조 원(64%)이나 치솟았다.
  • ▲ 안갯속 수출.ⓒ연합뉴스
    ▲ 안갯속 수출.ⓒ연합뉴스
    최근 우리 경제는 고물가·고금리와 불안한 국제정세 등 여러 복합위기 속에서도 회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반도체 위주로 수출이 늘어나면서 13개월 만에 수출이 플러스로 전환했다. 반도체 업황은 당분간 감산이 이어지고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회복하면서 앞으로 상승기류를 탈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를 중심으로 역량을 모아 경제 회복과 대외 신인도 향상에 총력을 다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폭주가 우리 경제의 리스크를 키우고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노란봉투법에 대해 강경한 반대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9일 법안 통과 이후 "개정안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점에 대해 노동 정책을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비통한 심정을 억누르기 어렵다. 엄청난 후폭풍만을 불러올 것"이라면서 "법률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해 거부권 건의를 시사했다. 다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 카드를 행사할 경우 여야와 노정 간의 갈등은 전면전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큰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