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수익 일정 부분 배당금처럼 인출해 투자 안전지대 확보탄탄한 네트워크로 생생한 업황 동향 점검운용자산 1억원서 10년 만에 100억원대로 성장화장품 섹터 주력…통신장비주서 기회 엿봐
  • ▲ 권충현 한양증권 여의도PWM센터 부장 ⓒ정상윤 기자
    ▲ 권충현 한양증권 여의도PWM센터 부장 ⓒ정상윤 기자
    [진격의 PB]는 잘나가는 증권사 현직 프라이빗뱅커(PB)들을 찾아 그들의 영업 및 투자 노하우를 들어봅니다. 동료 PB들이 인정하는 진짜 PB, 그들의 역사와 그 시간들을 통해 쌓아온 생생한 경험담과 격이 다른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잃지 않는 투자를 지향하는 권충현 한양증권 여의도PWM센터 부장(사진)은 남다른 원칙이 있다. 모든 고객의 투자 수익은 일정부분 배당금처럼 무조건 인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관리 자산 규모가 곧 능력으로 평가되는 프라이빗뱅커(PB)에겐 고객의 출금은 상당히 꺼려지는 일이다. 

    권 부장은 그 스스로 고객들의 계좌에서 종목의 수익률이 30~50%를 넘으면 수익 난 자금을 출금하도록 권유한다. 확고한 검열을 통한 투자 전략을 세운다지만 이따금 주춤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그가 확신 속에 베팅할 수 있는 건 안전지대를 통한 자신감 덕분이다. 늘어난 예수금으로 더 많은 종목을 사고, 좋은 종목에 더 비중을 태우고 싶어지는 '돈'에 대한 욕망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이는 혹시라도 보유한 포트폴리오 종목의 주가가 빠질 때 계획 있게 태울 자금이 된다.

    "제가 외모와 달리 겁 많은 성격이에요. 주식을 할 때도 보수적으로 하는데, 그 안에서도 확신 있게 공격적인 투자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게 사실이죠. 그렇지만 새로 번 고객 자산의 일부를 출금하면 저 역시 과도하게 무리하지 않게 됩니다. PB든 개인투자자든 이것이 투자 롱런의 비결일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엔 고객들도 욕심 부리면서 반문하셨는데 제가 권유하고 설명하며 진행했어요. 이제는 다들 만족도가 아주 높아요."

    권 부장은 메리츠증권으로 시작해 한양증권에서 대부분의 PB인생을 보낸 12년차 PB다. 여의도에서 그는 마당발로 통한다. 고객이 안전 자금을 기계적으로 확보하도록 하는 자신감은 그의 공고한 네트워크에서 나온다.

    차곡차곡 초년병 시절부터 쌓아온 그의 네트워크는 좋은 정보, 리서치 이면에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낼 그의 관점을 정립하고 확인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업계 선수들이 참여하는 스터디모임을 가기보단 각개전투로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만나왔다. 광고업계를 통해 경기 순환 사이클을 체감하는 것도 노하우다. 

    리서치 보고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실제 현장의 분위기를 맛보고, 사업 종사자들이 한발 먼저 체감하는 시장과 섹터의 변화를 그는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확인해왔다. 이따금 제공된 정보와 현장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종종 느꼈다고 한다. 

    "증권업계 외적으로 사업 실무자들, 오너들을 아주 많이 만나왔고 그렇게 쌓인 인맥들은 제가 섹터 동향, 기업 전망 등 확인하는 데 정말 큰 자원이에요.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했는데, 실제 업황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던 적도 적지 않았어요. 보고서를 보면 저는 현장 분위기를 한 번 더 확인하는데, 그러면서 '이 애널리스트가 진짜 섹터를 잘 보는구나' 전망을 선별하는 눈도 저절로 길러지더라고요. 광고업계는 경기 순환 사이클을 체감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에요.

  • ▲ ⓒ정상윤 기자
    ▲ ⓒ정상윤 기자
    ◆"운 좋은 꼴찌" 바꿔낸 노력파

    권충현 부장의 증권맨으로서 시작점으로 돌아가보면 유쾌한 웃음이 나온다. 그는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와 군 입대를 위해 귀국했다. 제대 후 친구들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레스토랑비지니스를 시작해 밤 늦은 시간에 가게 문을 닫았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이튿날 대낮까지 잠을 퍼질러 자는 아들 모습이 군인인 아버지 눈엔 영 못봐줄 모습이었다고 한다. 

    "내가 이러려고 널 미국까지 유학 보낸 게 아닌데...." 아버지의 경고성 압박에 경영학 전공을 살려 금융사 공채를 넣었던 게 그의 PB 인생의 시작이다. 금융위기가 지나고 증시가 바닥이던 2010년, 채권 부문 지원자이던 그를 메리츠증권은 리테일 영업직으로 채용했다. 1등과 꼴찌를 짝 지어 지점 발령을 내주며 서로 끌며 밀며 함께 가도록 했는데, 신입 테스트 꼴찌였던 그는 우등생 동기와 당시 주식 선수들이 많기로 유명했던 서울 논현동 영동지점에서 초년병 시절을 다질 수 있었다. 

    그는 증권맨으로서 시작 운이 좋았다고 표현했다. 표현대로 시작은 운이 따라줘서였을지 몰라도 이후로는 권 부장의 적지 않은 노력과 원칙이 있었다. 지금이야 PB들의 기업 탐방은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엔 그렇게 일상적인 시절은 아니었다고 한다. 선배들의 엄청난 탐방 스케줄을 함께 소화하고, 섹터별 필요한 공부로 밤을 지샜다.

    "그때 IT·반도체가 한창 핫할 때예요. 핸드폰을 분해해서 배터리부터 각종 부품은 뭐고 이건 어떤 벤더들인지, 업체들의 그해 컨센서스 정도를 파악하는 건 기본이었죠. 지금은 유튜브 등 정보가 지천이지만 그땐 진짜 하나하나 부딪치고 알아봐야 했어요. 신기술도 자꾸 나오고 공부할 게 어찌나 많던지, 정말 밤을 새운 적도 잦았어요. 저 혼자선 못했을 텐데, 주변에 좋은 선배들이 참 많았죠. 제가 사람 복이 많은가봐요(웃음)."
  • ▲ ⓒ정상윤 기자
    ▲ ⓒ정상윤 기자
    ◆성장 가능성에도 눌린 섹터 주목…통신장비주서 '기회'

    잘나가는 PB 대부분 한 번 크게 빠그러지는 위기가 있었다지만 권충현 부장의 그런 적이 없었다. 그는 종목의 업사이드 포텐셜(Upside Potential)과 다운사이드 리스크(downside risk)에 대한 밑그림을 그린다. 확신 있게 엄선한 종목들의 양 구간을 열어두고 단기 매매보단 긴 호흡의 투자를 하는 편이다. 유럽 무더기 신용강등, 그리스 재정 위기, 코로나19 펜데믹 등 굵직한 위기의 하락장에서도 패닉셀링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들고 있던 종목을 팔아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격이 빠지면 확신 있게 물량을 실을 수 있는 것도 이 원칙 덕분이다.

    매크로 상황과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하고, 그동안 그 섹터에 대해 쌓아온 노하우를 통해 그런 기업을 걸러낸다. 심리가 녹아있는 정도로만 차트를 활용할 뿐이다. 업계 안팎의 사람을 만나며 화장품 섹터를 파고들던 지난 2014년 그가 픽했던 종목이 네오팜이다. 당시 중국 공략을 통해 이익을 차곡차곡 내던 회사로, 3년 만에 네 배에 달하는 수익률을 가져다줬다. 원칙을 지킨 덕분에 PB 2년차 1억원에 불과했던 운용자산이 10년 만에 100억원대로 늘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주식은 도박'이라는 말이에요. 저는 종목을 볼 때 어느 정도까지의 하방을 예상하고, 동시에 업사이드 포텐셜이 얼만큼이냐를 봅니다. 하방이 10%인데, 상방이 30%면 베팅하는 거고, 하방을 지지해준다면 업사이드를 보고 자금을 더 실을 용기가 생기는 거죠. 예상한 만큼 빠지고, 기대만큼 올라주는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주식 투자 인생에 큰 리스크는 없었습니다." 

    현재 그의 포트에는 요새 잘나가는 화장품 섹터, 횡보 중인 통신장비주가 주로 담겼다. 반도체 대형주도 일정 부분 채워졌 있지만 최근 밸류에이션이 부담스러워 비중을 줄였다. 통신장비주 같이 소위 '널부러져 있는' 주식들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자율주행, 로봇 등 메가트렌드와 연관돼 있는 종목들에 주목한다.

    "최근 공매도 제도가 전면 중단되면서 어느 순간 위 아래로 부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그러면 그간 많이 눌려 있던 종목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성장에 대한 의심을 받거나 소외받는 종목들의 락바텀을 어떻게 볼까 판단할 때 장기간의 기관 수급을 보면 바닥 구간에서 어떻게 베팅해야 할지 감이 잡힙니다. 그런 면에서 통신주를 눈여겨보고 있어요."

    권 부장은 나이를 들어가도 유연한 사고로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PB를 꿈꾼다. 주식시장에 매일 매일 찾아오는 새로운 기회를 잡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낼 수 있는 유연함은 그가 PB로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질이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종은 바퀴벌레라고 하잖아요.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라 적응을 잘하는 강력한 유연함이라고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세대의 높은 파고 속에 MZ세대와 공존하면서 시니어 PB가 돼서도 고리타분하지 않고 기민한 사람으로 적응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