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최고직위자 등 '기업총수 기준' 첫 구체화… "일관성·예측가능성 높여"친족 경영참여·출자 단절 등 4가지 예외조항도 신설… '법인총수' 길 터 줘동일인 지정 피하는 외국국적 총수 2·3세 늘듯… 사익편취 감시 '허점'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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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 김범석 의장에 대한 동일인(총수) 지정 논란과 관련해 김 의장과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는 방식을 택했다. 법인을 동일인으로 볼 수 있는 예외요건을 명문화해 형평성 논란을 돌파하기로 했다.외국국적이나 이중국적을 보유한 총수 중 쿠팡처럼 법인을 동일인으로 내세우는 사례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 총수의 사익편취 등 불공정행위 감시에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공정위는 대기업집단 지정 시 동일인을 판단하는 기준을 정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28일부터 내년 2월6일까지 입법 예고한다고 27일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판단 기준과 절차 등을 정한 지침은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한다.이번 시행령 개정안·지침은 외국 국적을 보유한 동일인과 친족의 등장, 동일인 2·3세의 경영권 승계, 외국인이 지배하는 법인의 한국 설립 등 경제환경 변화와 관련해 명확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적용하고자 마련됐으며 관계 부처 협의와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쳤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동일인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을 지정 대상으로 본다. 다만 그런 자연인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해당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국내 회사나 비영리법인·단체를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다.아울러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있더라도, 기업집단 범위에 차이가 없고 친족 등 특수관계인의 경영참여와 자금거래 등이 없는 경우 국내 회사나 비영리법인·단체를 동일인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즉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보든, 법인으로 보든 국내 계열회사의 범위가 같을 때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이 최상단회사를 제외한 국내 계열사에 출자하지 않고 △해당 자연인의 친족이 계열사에 출자하거나 임원으로 재직하지 않으며 △해당 자연인과 친족, 국내 계열사 간 채무보증이나 자금대차가 없다면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게 명시한 것이다.공정위는 예외요건을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외국인이더라도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김 의장은 동일인 지정을 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김 의장은 최상단회사인 쿠팡Inc를 제외하면 국내 계열사에 지분이 없다. 김 의장의 동생 부부가 쿠팡 계열사에 재직하고 있지만, 임원이 아니라 예외 조항에 어긋나지 않는다. 김 의장 동생 부부가 쿠팡Inc 주식 24만 주쯤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쿠팡Inc는 미국 시장에 상장된 미국 법인이라 '국내 계열회사 출자'를 금지한 조항도 충족한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쿠팡에 대해선 확인해야 할 사실관계가 여러 가지 있다"며 "현재로선 쿠팡의 동일인이 누가 될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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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시행하는 지침은 동일인 판단을 위한 5가지 세부기준 등을 규정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는 동일인 정의를 따로 명시한 조항은 없다. 다만, 공정위는 '실질적인 지배력'을 기준으로 동일인을 지정해 왔다. 지침은 동일인 판단 기준을 △기업집단 최상단회사의 최다출자자 △기업집단의 최고직위자 △기업집단의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 △기업집단 안팎으로 집단을 대표해 활동하는 자 △동일인 승계 방침에 따라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결정된 자 등으로 구체화했다.지침은 또한 동일인 사망, 사임, 지분 매각 등으로 총수를 바꿔야 할 경우 원칙적으로 사유발생 이후 기업집단을 새로 지정할 때 변경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공정위는 매년 5월 공시대상기업집단을 지정하고 그 기업집단의 총수를 동일인으로 지정해 사익편취 규제, 총수 일가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규모 내부거래 등 각종 규제를 적용한다.공정위는 동일인 확인 절차도 분명히 했다. 기업집단이 관련 자료를 제출하면 공정위는 이를 바탕으로 충분히 협의한 뒤 기업집단을 지정하기 전 잠정 동일인을 통지하고 기업집단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공정위는 관련 입법절차를 거쳐 내년 상반기 중 시행령 개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국적과 관계없이 동일인을 판단하는 일반원칙 등을 마련해 동일인 판단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며 "법인을 동일인으로 보는 예외기준을 합리적 수준으로 설정하고 동일인 지정에 대한 이의제기 절차도 신설해 기업집단의 절차적 권리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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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각에선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공정위가 자신과 쿠팡 김범석 의장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논란이 불거진 것은 지난 2021년 쿠팡이 자산 5조 원 이상의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다. 공정위는 지난해 김 의장을 쿠팡의 동일인으로 지정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었지만,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 등이 미국과의 통상 마찰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이후 공정위는 김 의장 대신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그동안 김 의장이 국내 쿠팡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이 명백한 데도 국적 때문에 동일인 지정을 피하고 총수의 의무를 면제받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런 가운데 산업화학 전문업체 OCI의 총수인 이우현 부회장이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한기정 위원장은 지난 4월 브리핑에서 "쿠팡은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고, 주가 하락 등을 이유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다"며 "하지만 자유무역협정(FTA) 분쟁과 관련해 OCI는 이 부회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된 이후 현재까지 동일인 변경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해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기업집단이 목소리를 크게 내며 반발하면 동일인 지정을 피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됐기 때문이다.이 때문에 이번 시행령 개정안을 두고 공정위가 면피성 조항을 신설해 면죄부를 주는 방식으로 논란을 무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된다. 또한 앞으로 외국 국적을 보유한 동일인 2·3세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법인을 동일인으로 내세워 각종 규제를 피하려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