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청구공사액, 미분양·원자재값 상승에 2년만 '40.1%' 급증생활물가지수 22.4% 오르는 동안 건설용중간재 35.5% 증가 자재값상승→분양가인상→미분양적체→미청구증가 '악순환'"생활물가 인상분 만이라도 보장해 달라…생존권 달린 문제"
  • ▲ 서울 재개발 공사현장. 사진=박정환 기자
    ▲ 서울 재개발 공사현장. 사진=박정환 기자
    "공사비조차 제값을 못받으면 정말 끝이다. 필요하다면 소송도 불사할 것."(중견건설사 관계자 A씨)

    건설경기 침체 여파로 상위 30대건설사 미청구공사액이 20조원을 돌파했다. 미분양과 원자재값 상승여파로 공사후 회수하지 못한 대금이 대폭 증가한 것이다. 자금난 위기에 내몰린 건설사들은 본격적인 '외상값 수금'에 나서고 있다. 공사비 인상을 둘러싼 건설사와 발주처·조합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소송 등 법적분쟁 빈도도 잦아질 전망이다.

    다만 건설업계 공사비 증액 요구를 향한 시선은 썩 곱지 않다. 가뜩이나 부동산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 공사중단을 운운하며 떼를 써 시장을 더 얼어붙게 만들었다는 비판여론이 상당하다.

    하지만 떼쓰기로만 치부하기엔 건설사들에게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

    이들이 공사비 인상에 사활을 건 이유는 업계 고질적 문제인 미청구공사액이 다시 증가하며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한 까닭이다.

    미청구공사는 건설사가 공사를 진행한뒤 발주처에 청구·회수하지 못한 금액이다. 주로 발주처가 건설사 공정률이나 사업비용을 인정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외상공사비'로도 불린다. 

    미청구공사액은 추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잠재적 부실요인으로 꼽힌다. 보통 해당금액이 많을 수록 현금이 돌지 않아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우려도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분기보고서를 보면 1분기 시공능력평가 상위 30대건설사 미청구공사액은 22조4075억원으로 전년동기 19조9474억원대비 2조4601억원(12.3%) 늘었다.

    건설경기가 고꾸라지기 시작한 2022년 1분기(15조9890억원)와 비교하면 2년만에 6조4185억원(40.1%)이나 급증한 수치다.

    분기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비상장건설사까지 더하면 미청구공사액은 보다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보통 국내외현장이 많은 대형사일수록 미청구공사액이 높은 경향을 보인다.

    30대건설사중 현대건설(시평순위 2위)이 4조4330억원으로 미청구공사가 가장 많았고 △삼성물산 건설부문(1위) 2조3656억원 △포스코이앤씨(7위) 1조8642억원 △롯데건설(8위) 1조5920억원 △현대엔지니어링(4위) 1조5123억원 △대우건설(3위) 1조4198억원 △GS건설(5위) 1조2025억원 △SK에코플랜트(9위) 1조1913억원 △HDC현대산업개발(11위) 1조61억원 △DL이앤씨(6위) 9687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10위권밖 중견건설사 가운데선 워크아웃중인 태영건설(16위)이 5276억원으로 최고액을 기록했다.

    시멘트 등 급격한 자재값 상승이 분양가 인상과 미분양 적체, 미청구공사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 12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3년간 건설용중간재 물가지수는 35.6% 증가했다. 같은기간 생산자물가지수 증가율인 22.4%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 ▲ 건설공사 현장. ⓒ뉴데일리DB
    ▲ 건설공사 현장. ⓒ뉴데일리DB
    시장침체로 주택사업 수익성이 줄고 미청구공사가 늘면서 건설사 유동성도 악화됐다.

    실제로 1분기 기준 10대건설사 영업활동현금흐름 총합은 지난해 812억원에서 올해 마이너스(-) 2조3797억원으로 급감했다.

    자금난 위기에 놓인 건설사들은 조합과 발주처를 상대로 수금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쌍용건설은 판교 KT 신사옥 공사비 증액건을 두고 KT와 소송전에 돌입했다. 공사비를 171억원 올려달라는 쌍용건설 요구에 KT가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하며 법정공방이 시작됐다.

    물가변동에 따른 공사비 조정이 없다는 내용의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공사계약에 포함된 만큼 공사비 추가지급 의무가 없다는게 KT측 입장이다.

    그외 롯데건설은 1000억원대, 한신공영은 141억원대 공사비증액분을 두고 KT와 줄다리기를 지속하고 있다.

    또 GS건설은 최근 서울 강북구 미아동 '북서울자이폴라리스'(미아3구역) 재개발조합을 상대로 323억원 규모 공사대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공사비 분쟁을 완화하기 위해 국토교통부가 전문가 파견제도를 도입했지만 강제성이 없어 유명무실해 진지 오래다.

    이에 건설업계는 소송 등 강경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공사를 애초에 수주하지 않는 것이 나을 정도"라며 "물가인상분만 보장해줘도 수주나 착공이 활기를 띠고 건설경기 숨통이 트이겠지만 발주처가 이를 용인하지 않는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물가변동 배제특약 유지여부가 공사비갈등 핵심쟁점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중견건설 B사 관계자는 "도시정비 등 조합사업은 그나마 협상여지가 있지만 공공발주사업 경우 소송외엔 답이 없어 보인다"며 "지금보다 미청구공사 등 재무 부실요인이 더 늘면 중견사들은 생존자체가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공사비 갈등 문제는 코로나 팬데믹과 물가·금리급등 이후 한시적·과도기적 상황에서 발생한 사안"이라며 "공사는 계약서 조항대로 수행하는게 기본으로 계약조항이 불분명할 경우 당사자간 합의, 이게 안되면 법적절차가 불가피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