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배 대표, 이커머스 시장 낙관… 투자 없이 인수만큐텐-티몬-위메프, 경쟁사보다 긴 정산주기… 최대 2개월위시 인수가 결정타로… 정체되자 한계 봉착한 '돌려막기'
  • ▲ 구영배 큐텐 대표.ⓒ큐텐
    ▲ 구영배 큐텐 대표.ⓒ큐텐
    “올 것이 왔다.”

    최근 큐텐과 티몬, 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에 대한 이커머스 업계 전반의 평가다. 판매자(셀러)를 입점시키기 위해 0원 수수료, 마케팅 지원금까지 동원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정산 지연 사고가 벌어지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현재 영업 중인 이커머스에서 없던 일이다. 이런 사고가 벌어진 이커머스는 모두 퇴출됐거나 문을 닫았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 큐텐과 티몬, 위메프의 정산지연 사태를 보는 시각이 심각한 이유다.

    사실 이 일련의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것이었다. 모든 것은 구영배 큐텐 대표의 전략적 판단의 실패에서 비롯됐다. 

    2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큐텐-티몬-위메프의 정산지연 사태는 해결은커녕 눈덩이처럼 커지는 중이다. 이미 결제가 이뤄진 여행상품, 상품권의 서비스가 중지됐고 고객의 환불, 결제취소도 잇따르고 있다. 매출 규모가 가장 컸던 티몬에서는 아예 신용카드의 결제도 막혔다. 

    이미 신뢰를 잃은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물건을 팔 판매자도, 구매할 소비자도 많지 않다. 당장 현금이 부족해 판매자(셀러)에게 정산을 못하던 큐텐그룹은 환불금과 결제취소로 현금이 더 부족해지는 악순환으로 급격하게 빠지는 중이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셀러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에서 큐텐그룹은 앞으로도 이커머스 시장에서 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대규모 적자가 쌓인 플랫폼을 인수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라고 평가했다.
  • ▲ 구영배 큐텐 대표.ⓒ큐텐
    ◇ 적자투성이 플랫폼이 버틴 이유

    이런 업계의 판단에는 구영배 대표의 전략적 실패가 자리하고 있다. 

    구 대표가 적자 투성이였던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를 잇따라 인수한 것은 기본적으로 적자여도 영업을 지속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적자가 지속되고 완전자본잠식인 회사는 영업이 불가능하지만 플랫폼 사업은 전혀 다르다. 구 대표는 지마켓을 창업했던 이커머스 전문가이기도 하다. 

    실제 큐텐은 이들 플랫폼을 인수한 이후 단 한번도 자본조달이나 투자에 나선 적이 없다. 그럼에도 영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정산주기라는 시스템 때문이다. 이커머스 사업은 특성상 소비자가 상품을 결제하는 매출 발생 시점과 셀러에게 수수료를 제외한 상품대금을 송금하기까지 시차가 발생한다.

    배송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이커머스 플랫폼의 특성상 이 시차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정산주기는 플랫폼별로 크게 다르다. 지마켓이나 11번가, 네이버쇼핑 등은 고객이 상품을 받고 ‘구매확정’을 하는 즉시 다음날 셀러에게 송금이 이뤄지고 ‘구매확정’을 하지 않더라도 최장 일주일 뒤 자동으로 입금된다. 

    반면 티몬, 위메프의 정산 주기는 이커머스 업계에서도 유독 길기로 유명하다.

    티몬과 위매프의 경우 정산기간이 매출 발생한 달의 말일 기준 45일에 달한다. 월초에 상품 구매가 이뤄졌다면 셀러는 그 달 말일에 45일을 더해 75일 이후 정산 받는 것이다. 큐텐도 정산주기가 약 2개월에 달하고 셀러의 매출이 감소할 경우 별도의 보증금까지 설정해 정산에 제한을 둔다. 

    이 늘어진 정산 기간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구조를 가능하게 했다. 셀러의 판매금을 다른 셀러의 정산금이나 운영비로 모두 소진하더라도 두 달 사이 발생한 매출을 통해 정산금을 지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형태만 본다면 투자자들이 투자한 돈으로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폰지사기와 같다. 그리고 한계도 비슷하다. 이 구조는 성장이 지속될 때만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구 대표에게 특별한 시간이 됐다.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 ▲ 구영배 큐텐 대표.ⓒ큐텐
    ◇ 소비침체에 매출 위축… 위시 인수 결정타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은 티몬의 경우 실적이 불확실하지만 대규모 적자가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위메프의 경우 작년 매출이 1385억원으로 전년 대비 27.9% 감소했고 영업손실은 전년 대비 두 배 가량 커진 1025억원을 기록했다. 인터파크커머스 역시 같은 기간 15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올해 찾아왔다. 알리와 테무, 위시 등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이 국내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고물가에 따른 소비침체도 가시화됐다. 쿠팡을 제외한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은 올해 모두 매출 감소를 겪었다. 

    이런 와중에 구 대표는 내실다지기 대신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위시 인수에 2400억원을 배팅했다. 빼서 쓸 아랫돌마저 동원된 셈이었다. 자회사 큐익스프레스의 물동량을 늘리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문제는 현금이었다.

    이후 티몬, 위메프가 어떻게 해서든 매출을 키워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했음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티몬이 올해 들어 결제 후 일정기간 상품권 등을 배송하는 ‘선결제’ 상품이나 티몬캐시에 대규모 할인을 진행한 것도 유동성을 벌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이커머스 플랫폼의 외형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판단했던 구 대표의 오판은 처참한 결과로 이어지는 중이다. 티몬과 위메프는 물론 큐텐까지 정산 지연 문제가 생기면서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가 추진해온 큐익스프레스의 상장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큐익스프레스는 지난 6월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했지만 아직까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구 대표는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를 인수하면서 적자를 보더라도 거래규모만 성장하면 지속 영업이 가능할 것으로 본 듯하다”며 “이 일련의 과정이 미국 상장을 추진 중인 큐익스프레스의 거래량 키우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엉키는 상황에 봉착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