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 감액 예산안 통과에 경제정책 동력 잃어 산업경쟁력 회복 차질… "여야정 경제채널 가동 필요"
  • ▲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국회(정기회) 제18차 본회의에서 2025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 가결을 선언하고 있다. ⓒ뉴시스
    ▲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국회(정기회) 제18차 본회의에서 2025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 가결을 선언하고 있다. ⓒ뉴시스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반도체 등 각종 산업지원법안과 경제정책 처리가 멈춰섰다. 탄핵이 모든 현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산업계 숙원 법안들이 국회서 공전하고 있다. 또 야당이 내년도 예산을 4조원 넘게 깎아 정부가 추진해 온 경제정책들도 제동이 걸렸다.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글로벌 경영 환경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국내 정세마저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12일 국회 등에 따르면 정부안보다 4조1000억원 감액된 673조3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이 야당 주도로 통과되면서 경제정책 전반에 비상등이 켜졌다. 내년도 예산 운용은 물론 정부가 추진하던 주요 경제정책들도 좌초 위기에 처했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야당 단독 수정 예산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가운데 이번 감액 대상은 주로 기획재정부의 예비비, 주요 권력기관 특활·특경비, 윤석열 정부 중점사업 예산 등이다. 정부는 예산안 삭감을 두고 경제 리스크 가중, 산업 경쟁력 골든타임 실기, 민생·지역경제 지원 계획 차질 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예비비가 당초 4조8000억원에서 2조4000억원으로 2014년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에 따라 재해·재난 등 예상치 못한 비상 상황 발생 시 정부 차원의 적시 대응이 어려워졌다. 환율 변동으로 인한 원화부족액 보전 경비 지출도 발이 묶인 셈이 됐다. 

    예산과 밀접한 내년 경제정책 방향 수립도 줄줄이 밀리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중하순경 발표 예정이었던 내년도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내달로 연기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도해온 혁신 생태계 강화를 위한  '역동경제 로드맵'도 좌초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는 '사회이동성 개선 방안', 기업 투자 촉진을 위한 '3차 투자 활성화 대책', 고령자의 계속고용 관련 대책이 담긴 '계속고용 로드맵' 등이 준비 중이었으나 제동이 걸렸다. 

    국회에 계류 중인 산업계 숙원산업들의 처리도 멈춰섰다. 우선 반도체산업 지원을 위한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반쪽짜리 법안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는 반도체 기업의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 투자 관련 세액공제율을 현행보다 5%포인트 올리고 일몰 기한도 5년 연장하기로 합의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일몰 기한을 올해 말에서 3년 연장하는 내용만 담긴 채 통과됐다. 

    여야가 필요성을 공감했던 반도체 특별법도 후순위로 밀려난 분위기다. 정부가 반도체 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와 주 52시간 제외 등이 골자다.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 주요 경쟁국은 자국 반도체에 대한 강력한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있는 반면 국내 정책은 세액공제 등으로 한정돼 있어 반도체 산업 지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추진된 법안이다. 하지만 지난 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조차 열리지 않으면서, 이번 정기국회서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첨단산업 전력 공급을 책임질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도 거북이걸음이다. 사실사 여야 비쟁점 법안이었지만 탄핵 정국에 휩싸이면서 관련 법안 논의는 중단된 상태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참여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우 2050년까지 현재 수도권 전력 수요의 약 4분의 1인 10GW(기가와트) 이상의 전력이 필요하다. 전력망법 통과가 늦어지면서, 송전망 건설 지연으로 첨단산업 발전에 필요한 대규모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조속한 입법화를 통해 사업준공에 대한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법·제도적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내 제정이 유력했던 인공지능(AI) 기본법도 표류하고 있다. AI로 만든 이미지나 영상이 AI로 생성했다는 사실을 표시하는 것을 골자로 가짜뉴스, 딥페이크 등 기술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법안이다. AI 기본법이 제정돼야 AI 학습데이터 범위, AI 서비스 책임소재, 저작권 문제 등 기준이 설정돼 기업들의 사업화 방향을 정할 수 있는데 불투명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경제 현안에서만큼은 여야정이 협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행정의 구심점이 없어 국회가 구심점 역할을 해줘야 하는 상황으로 여야정협의체 등을 통해 정책 현안에 집중하고 위기탈출을 위한 소통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