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력 사업·자산 대거 정리, 유동성 확보 총력화학·유통 부진에 위기감 고조 … 선택과 집중으로 돌파신사업 투자 지속, 배터리·바이오·AI로 미래성장동력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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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린 롯데그룹이 올해 초부터 생존을 위한 대대적인 사업 재편에 나섰다. 그룹 전반에 걸쳐 비주력 계열사와 자산을 정리하며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를 통해 재무구조를 안정적으로 개선하고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 ▲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전경 ⓒ롯데케미칼
20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전날 이사회를 열고 파키스탄의 고순도테레프탈산(PTA) 생산·판매 자회사 롯데케미칼 파키스탄(LCPL) 보유 지분 75.01% 전량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상반기 내로 거래를 마무리하고 약 979억원을 확보해 파키스탄의 금융 불안과 환율 변동성 등 리스크에서 벗어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6월에는 현지 중앙은행의 외화 반출 제한으로 지급받지 못했던 2022~2024년 배당금 약 296억원을 회수해 이번 매각 대금과 합쳐 총 1275억원을 확보하게 된다. 이번 파키스탄 법인 매각으로 롯데케미칼의 재무구조 개선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와 함께 롯데케미칼은 해외 자회사 지분을 활용한 추가 유동성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미국 법인 주식으로 6600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을 완료했고 인도네시아 라인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현지 법인을 활용한 PRS(주가수익스와프)도 검토 중이다. 올해 연결 기준 차입금은 지난해와 유사한 10조원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실질 차입금은 약 2000억원 줄일 계획이다.
롯데의 구조조정은 화학 부문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룹 차원에서 중장기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을 과감히 접고 유휴 자산을 매각을 전방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호텔롯데는 최근 자사 소유 4성급 호텔인 L7 및 롯데시티호텔 중 한 곳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1월 기관투자자 설명회에서 매각 계획을 밝힌 지 3개월 만이다. 다만 호텔롯데 측은 아직 구체적인 매각 대상은 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호텔롯데는 지난해 말 국내 렌터카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롯데렌탈 매각에도 성공했다. 지난해 12월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와 구속력 있는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호텔롯데(2039만6594주)와 부산롯데호텔(768만1511주)이 보유한 롯데렌탈 지분 총 56.2%를 1조5729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실사는 올 상반기 내 마무리되며 이후 최종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유통·식품 부문에서도 사업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롯데웰푸드(구 롯데제과)는 지난 7일 제빵사업부 증평공장을 신라명과에 매각했다. 수원·부산 등 일부 공장 매각도 검토 중이다. 이는 2022년 롯데제과와 롯데푸드를 통합한 이후 중복 사업을 정리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매각 대금은 해외 생산라인 확장에 활용할 예정이다. 롯데물산 역시 경기 안성 및 이천의 물류센터 매각을 추진 중이다. -
롯데는 올해를 쇄신의 원년으로 삼고 생존을 위해 비주력 사업을 대거 정리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이어갈 전망이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8월 비상경영을 선포한 뒤 실적 중심의 사업 재편 작업에 착수했다.
-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지주
특히 신 회장은 지난달 9일 열린 롯데 가치창조회의(VCM·옛 사장단 회의)에서도 최고경영진(CEO)에게 "지금이 변화의 마지막 기회이며 강력한 쇄신과 혁신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하며 구조조정을 강하게 주문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그룹이 가진 자산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지금의 난관을 돌파하자고 역설한 것이다.
롯데는 2010년부터 13년간 자산 기준 재계 순위 5위를 유지했으나 지난해 주력 사업의 부진으로 포스코에 밀려 6위로 내려앉았다. 그룹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화학 및 유통 부문이 부진한 데다 오프라인 유통 시장의 쇠퇴로 인해 경쟁력이 약화된 것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지난해 말 정보지에서 촉발된 유동성 위기설로 인해 불안감이 확산됐다. 정보지에는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 가능성, 차입금 39조원, 이커머스 계열사 롯데온의 수조 원대 적자 등이 언급되면서 그룹의 위기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롯데는 생존을 위한 사업 재편과 동시에 미래 먹거리를 위한 신사업 투자도 지속할 방침이다. 화학 부문에서는 배터리 소재와 수소 사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현재 60% 이상을 차지하는 기초화학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하로 줄이고 첨단소재·정밀화학·전지소재·수소에너지 등의 사업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다.
바이오 부문에서는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인천 송도 바이오캠퍼스 1공장 신설과 함께 미국 시러큐스 공장의 항체약물접합체(ADC) 생산시설을 증설하고 있다. 롯데이노베이트는 자체 개발한 생성형 인공지능(AI) 플랫폼 아이멤버를 기반으로 대외 사업을 본격화하며 신사업을 확대 중이다.
롯데 관계자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사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편하는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면서 "중장기 전략을 바탕으로 비핵심 사업∙자산 매각을 속속 진행하며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에 성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