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 16개월만에 감소세 전환 트럼프, 내달 반도체 관세 부과 예고 정상외교 공백에 통상문제 '역부족' 반도체 특별법, 정쟁에 논의 '하세월'
  • ▲ 세미콘 코리아 2025에 반도체 웨이퍼가 전시되어 있다. ⓒ뉴시스
    ▲ 세미콘 코리아 2025에 반도체 웨이퍼가 전시되어 있다. ⓒ뉴시스
    반도체 산업이 위기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수출이 꺾여 수출 전선에 비상등이 켜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달 반도체에 대한 관세도 예고한 상태여서 대외 불확실성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하고 통상 리스크가 확대돼 반도체 지원책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국회는 정쟁에 매몰돼 관련 논의가 헛바퀴만 돌고 있다. 

    한국 수출의 핵심축인 반도체 수출이 지난달 16개월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내달 반도체에 관세 부과를 예고한 만큼 수출 부진이 일시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96억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 감소했다. 2023년 11월 이후 15개월 연속 이어온 증가세가 멈춰선 것이다. 또 지난해 5월 114억달러를 기록한 이후 지난 1월까지 8개월 연속 100억달러를 넘어섰지만 지난달에는 100억달러에 못미쳤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고부가 메모리 호실적에도 범용 메모리 반도체인 DDR4, 낸드 등의 고정가격이 하락하면서 전체 반도체 수출이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메모리 반도체 고정가격은 중국산 저가 물량 공세로 전년 동월 대비 큰 폭의 감소를 보였다. DDR5 16기가비트(Gb), DDR4 8Gb, 낸드 128Gb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7.5%, 25.0%, 53.1% 급감했다. 이에 지난달 대중국 반도체 수출액도 전년 동월 대비 15.3% 줄었다.  

    앞으로의 상황도 낙관적이지 않다. 미중 무역전쟁과 맞물려 대중국 중간재 수출 감소를 초래할 수 있어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 중 85.86%가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무선통신 부품 등 중간재였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내달 반도체 관세 부과도 예고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 반도체에 관세를 매기면 업체들이 대미 투자를 늘릴 것이란 입장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반도체 보조금도 불투명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기간 동안 반도체 지원법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줄곧 유지해와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현지 반도체 거점 건설에 각각 370억달러(약 54조원), 38억7000만달러(약 5조7000억원)를 투입한다. 이에 미 상무부로부터 각각 47억4500만달러(약 6조8000억원), 4억5800만달러(약 6600억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보조금 정책 재검토에 나서면서 불확실해진 상황이다. 더욱이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정상외교에 공백이 발생하면서 통상문제를 풀기에도 역부족인 모습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가 수출 주력 품목으로 경제 성장에 기여를 해왔는데 과거와 달리 상승 사이클이 강하지 못했고 미·중 갈등 등이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다 과거의 성장 방식도 작동이 잘 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단기적인 사이클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장기적인 성장 전략 문제인데다 국가 간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만큼 정치권에서 대응책을 마련해 제도적 기반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주요국들이 보조금 등 각종 반도체 지원책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한국은 여야 정쟁으로 반도체 시설 투자에 정부가 직접 보조금을 지원하는 반도체특별법 논의도 공회전하고 있다. 

    여야는 국정협의체를 통해 반도체 특별법 등을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더불어민주당이 불참을 선언해 관련 논의가 지연됐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를 두고 전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지난 28일 민생법안과 추경 논의를 위한 여야정 국정협의체가 민주당 노쇼로 무산됐다"고 비판했다. 오는 6일 여야협의체를 열고 쟁점현안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답보상태인 논의가 진전될지는 미지수다. 

    반도체 특별법은 주 52시간 제외를 두고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제외한 반도체특별법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을 예고한 상태다. 이 경우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180일을 심사해야 해 6개월동안 묶이게 되는 셈이다. 

    대한전자공학회·한국테스트학회·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반도체공학회 등 반도체 학계도 성명서를 내고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로 예외 조항을 포함한 반도체 특별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반도체 학계는 "반도체 연구자에게는 집중적인 연구와 실험을 할 수 있는 연구 환경 제공이 필수적이며 우리와 경쟁하고 있는 미국, 중국 등은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근로시간 규제를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다"며 "반면 우리나라 반도체 연구자들은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로 인해 세계적인 연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 인공지능(AI) 등 급격한 기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반도체 산업의 지속적인 기술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도체 특별법'에 연구개발 핵심인력에 대해 주 52시간 근로시간 특례제도 도입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며 이에 대한 국회의 신속한 협의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