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전 세계적인 AI 대규모 투자 움직임에 역행 입법 지연되며 골든타임 놓칠 수 있다는 우려 트럼프 대통령, 반도체도 관세 예고 '발등의 불'
  • ▲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공지능(AI) 기술 경쟁이 국가 대항전이 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입법은 거북이걸음이다. 반도체 특별법은 '주 52시간 근무 예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여야 간 큰 이견이 없는 '에너지3법(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법, 해상풍력 특별법)' 처리도 정쟁에 밀려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AI 주도권을 쥐기 위해 경쟁적으로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것과 대비된다는 지적이다. 

    11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 나서, 반도체 연구개발(R&D) 고소득 종사자에 대한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를 골자로 한 반도체 특별법과 전력망 특별법 등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권 원내대표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반도체 특별법과 전력망 특별법 통과도 발목을 잡고 있다"며 "반도체와 전기가 부족한데 어떻게 첨단산업을 육성하냐. '쌀 없이 밥 짓겠다'는 거짓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세계 각국은 국가적 정책 지원과 근로시간 유연화를 통해 초경쟁 체제에 돌입했다"며 "연구개발과 생산이 24시간, 365일 지속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산업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전날 기업인 출신인 안철수·고동진 국민의힘 의원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도체특별법 처리를 통한 규제 완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두 의원은 "반도체특별법 없이 AI도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며 "반도체 분야와 같이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는 노동시간에 대한 유연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국민의힘이 일관되게 반도체 특별법 상의 주 52시간 예외 적용을 요구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특별법의 쟁점은 52시간 예외조항이다. 반도체업계는 그간 반도체는 신제품 R&D를 위해 6개월에서 1년간 연속 집중근무가 필요한 산업이라는 점을 들어 52시간 제도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피력해왔다. 특히 중국 기업의 생성형 AI '딥시크' 파장도 이같은 요구에 기름을 부었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반도체 특별법이 2월 내 처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정은 이미 미국·일본·대만 등 주요 경쟁국이 반도체 산업 R&D 인력의 무제한 근로를 허용한 반면 우리 반도체 기업은 근로 시간 규제에 묶인 채 경쟁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야 이견이 없는 에너지3법도 처리가 지연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이 중 전력망 특별법은 22대 국회 들어서만 10건 넘게 발의돼 있다. AI 시대 첨단기술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막대한 전력 공급이 뒷받침돼야 해 전력망 확충을 위한 전력망 특별법 처리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에 따르면 국내 최대 전력수요는 2003년 대비 2023년에 98%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송전 설비는 26%에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AI 대규모 투자 계획이 이어지고 있는 것과도 대비된다. 지난해 중국국제금융공사(CICC)의 향후 6년 간 AI에 10조 위안 투자 계획, 미국의 5000억 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 유럽연합의 5200만유로 예산이 투입되는 '오픈유로LLM'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예산은 커녕 관련 입법도 지지부진해 AI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올해 정부 예산 673조3000억원 중 AI 관련 예산은 1조8000억원으로 0.27%에 그친다. 주요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민간투자도 마찬가지다. 미국스탠퍼드대 'AI 지수 2024'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 민간 투자액은 13억9000만달러로 세계 9위다. 1위인 미국(672억2000만달러)의 2.1%에 머무른다. 

    이런 가운데 2월 국회서 법안 처리가 무산된채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면 상반기 중에는 입법을 매듭짓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조기 대선 정국에서는 국회가 사실상 전면 휴업 상태에 들어갈 것으로 보여서다. 

    더욱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산업 지원 입법 과제는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른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추가적인 상호 관세를 이번주 내 발표하고 반도체, 자동차, 의약품에 대한 관세도 검토 중이라고 밝혀 한국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등에도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 "반도체법이 상당히 지지부진하게 오래 끌어오고 있는게 사실"이라며 "반도체 산업을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필요성이 높고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도 "주 52시간 제외는 근로임금에 대한 보장이 선행될 필요가 있으며 반도체 특별법 내 규정된 시설투자, 인프라 구축 등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반도체는 규모의 경제로 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인프라 구축이 적기에 이뤄져야 해 '전력망 특별법'과 같은 입법이 하루빨리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