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 외치며 표심 경쟁 … 정작 생산성 논의는 실종기업·경제계 "현실 외면한 노동시간 단축, 지속 불가능"산업법안은 뒷전 … 정치권 보여주기식 공약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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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주 4일제와 주 4.5일제 도입을 경쟁적으로 공약에 내걸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주당 근로시간 단축과 주 4일제 법제화를, 국민의힘은 유연근로제를 활용한 주 4.5일제를 각각 추진하며 노동계와 중장년층 표심을 정조준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성 향상이나 기업 부담 완화 방안은 부실한 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마케팅에만 몰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여준, 박찬대 상임총괄선대위원장이 3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1대 대통령선거 '진짜 대한민국'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미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에 올린 직장인 정책 발표문에서 "우리나라의 평균 노동시간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단축하겠다"며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기업에 대해 확실한 지원 방안을 만들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주4일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시간 노동과 공짜 노동의 원인으로 지목돼 온 포괄임금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기존의 임금 등 근로조건이 나빠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보완하겠다. 사용자에게는 근로자의 실근로시간을 측정·기록하도록 의무화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앞서 발표한 민생의제에서도 주당 근로시간 한도를 52시간에서 48시간으로 줄이고 주 4일제를 법제화하겠다고 공언했다.
국민의힘도 지난 14일 유연근로제를 활용한 주 4.5일제 도입 방안을 대선 공약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근무시간과 급여를 유지하더라도 유연한 시간 배분으로 실질적인 워라밸 개선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국민의힘 주장이다.
울산 중구청이 시범 운영 중인 주 4.5일제를 소개하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기본 근무시간 외에 1시간씩 더 일하는 대신 금요일에는 4시간만 근무한 뒤 퇴근하는 방식이다. 지금도 울산 중구 같은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대기업이 이를 시도하고 있다. -
- ▲ 재계 ⓒ뉴데일리DB
문제는 정치권의 이런 공약이 기업 부담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OECD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4.4달러로 38개 회원국 중 33위다. 미국(77.9달러), 독일(68.1달러), 일본(49.1달러)보다도 낮다. 반면 연간 근로시간은 상위권에 속해 많이 일하지만 비효율적인 구조가 고착화된 상태다.
특히 우리경제는 이미 1분기 역성장을 기록하며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1·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2%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최악의 경우 저출산·고령화로 생산 가능 인구가 급감하는 가운데 생산성 개선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성장률을 2030년대 0%대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미 나랏빚(국가재무)도 1000조원을 훌쩍 넘긴 상황이라는 점이다.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재정동향 2월호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말 중앙정부 채무는 1160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경영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경영계가 가장 우려하는 고용·노동 입법은 주 4일제 및 주 4.5일제(34.3%)였다. 대외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만 키우는 조치라는 것이다.
반면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법안들은 정치권의 정쟁에 밀려 표류 중이다. 인공지능(AI)·반도체 지원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후보는 과거 반도체기업의 주 52시간 예외 적용 요청을 일시 수용하는 듯하다가 입장을 철회했고 최근 패스트트랙에 오른 반도체 특별법에서도 관련 조항은 빠진 상태다.
우리 경제와 대내외 환경 변화가 비상인데도 표심잡기용 포퓰리즘에만 몰두하면서 역동경제 구현과 미래세대를 위한 개혁 추진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 전문가는 "생산성과 인건비 부담의 현실을 외면한 채 여론만 의식한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노동개혁의 본질은 일의 질과 생산성 제고인데 정치권은 보여주기식 워라밸 공약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