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원회 다섯번째 회의' 개최'업종별 차등적용' 도입 놓고 노사 공방전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에 자영업 줄폐업 부작용이미 1만원 최저선 보장됐으니 '업종구분' 균형 필요
  • ▲ 1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5차 전원회의에 참석한 류기정 사용자위원과 류기섭 근로자위원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뉴시스
    ▲ 1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5차 전원회의에 참석한 류기정 사용자위원과 류기섭 근로자위원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뉴시스
    노동계와 경영계가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을 놓고 줄다리기에 나섰다. 경영계는 이미 아시아 최고 수준인 '최저임금'을 더 올리라는 노동계의 압박에서 임금 지불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업종만이라도 '차등 적용'하자고 요구했으나, 노동계는 '저임금 고착화'라며 외면하고 있다.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을 논의하는 최저임금위원회 다섯 번째 회의가 17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가운데 노동계와 경영계가 '업종별 차등적용'을 논의했다. 

    사용자위원 간사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모두발언에서 "그간 누적된 최저임금 인상과 업종별 구분 없는 일률적 적용이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올해 최저임금은 1만30원인데 주휴수당까지 고려하면 이미 12000원 넘어섰고, 5대 사회보험·퇴직급여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실제 인건비는 법정 최저임금의 140%에 달한다"고 말했다.

    류 전무는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는 지난주 최저임금 최초요구안을 올해 대비 14.7% 인상된 1만1500원으로 발표했는데, 주휴수당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1만3800원이 된다"며 "이는 최저임금을 지불하는 영세 중소기업의 절박한 경영현실을 외면한 매우 과도하고 터무니없는 요구안으로 사실상 사업을 그만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류 전무는 최임위가 근로자 6084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를 제시하며 근로자들도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불안과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밝혔다. 해당 실태조사에 따르면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을 묻는 질문에 '3% 미만 또는 동결'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1.8%에 달했다.

    올해 기준 최저임금은 이미 '1만원대'로 진입한 1만30원으로 일본, 대만, 홍콩보다 높은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주 15시간 이상 일할 경우 하루 분을 더 지급하는 주휴수당까지 고려하면 시간당 1만2000원이 넘는다. 노동계의 숙원인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열리며 최저선이 보장됐음에도 15% 더 올리라고 정부와 재계를 향해 압박하고 있다. 인건비 부담에 자영업자들은 직원을 줄이고 무인계산대를 설치하는 '나 홀로 자영업자'가 넘치는 현실을 노동계가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도 "(최저임금 논의에서) 중소 소상공인의 낮은 임금지불능력 고려해야 한다. 저임금 근로자나 낮은 이윤을 창출한 사용자가 동일한 처지에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며 "지불능력이 취약한 사용자에게는 과도한 부담이 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정의롭지도 않고 실효성도 낮다. 최저임금 제도는 구분적용이라는 유연한 접근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감당할 수준을 벗어난 최저임금 인상 탓에 잦은 폐업과 일자리 감소라는 부작용만 낳고 있어 일부에선 '최저임금 제도 폐지' 목소리까지 내고 있다. 정작 최저임금 제도로 보호받아야 할 영세 자영업자와 서민이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노동계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업종별 구분' 논의에 임할 필요가 크다는 얘기다. 

    하지만, 노동계는 업종별 차등 적용은 차별 조장 행위라며 즉각 반발했다.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업종별 차별 적용은 저임금 고착화의 낙인찍기 쏠림 현상으로 인한 인력난의 가중과 산업별 공동화, 취업 기피 등 부작용을 만들 수 있다"며 "최임위는 업종별 차별 적용 같은 사회 갈등만 부추기는 심의는 최소화하고, 내수경기 침체 장기화에 따른 민생 회복 활성화에 발맞춰 발 빠르게 최저임금 수준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선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아래 최임위는 사용자위원들의 업종별 차등 적용 주장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여왔다"면서 "일본은 국가가 최저 수준을 설정한 후 노사가 산업별로 정할 수 있고 미국은 연방 최저임금 기준에 각 주별로 높게 해주는 방식으로 다시 결정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난 12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려던 정책을 철회했다고 발표했다"며 "매우 '저렴한 인력'을 도입하는 방식이 국가의 품격과 지속 가능성을 해친다는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시장 수급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일자리 감소와 자영업 줄폐업 등의 부작용이 커지고 있는 만큼 전문가들은 업종별 구분 적용을 도입해 균형을 맞춰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업종별 구분 적용은 무리한 시도도 아니다. 이미 최저임금법에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경영계는 편의점, 택시 운송업, 일부 숙박·음식점업 등 3개 업종에 최저임금을 낮게 설정하자는 요구를 한 바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도 업종·지역별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서울시내의 한 대학 경영학과 교수는 "업종별 구분이 최저임금 제도 취지를 훼손한다는 주장을 노동계 안팎에서 내놓고 있지만 노동시장 환경이 예전과 많이 다르고 급변하는 상황에서 과거 입장만 고수하는 건 옳지 않다"라며 "시대변화에 맞추지 못하면 결국 최저임금 제도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