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과도한 임금삭감·적정 업무조치 없는 '임피제' 부당 판단향후 李정부 임금체계 개편·대상조치에 가이드라인 제시 가능성임피제 자체 부정은 아냐 … "기업들 소송 리스크에 대응책 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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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퇴 (PG) ⓒ연합뉴스
    임금을 과도하게 삭감하고 적정한 업무 감경 조치가 마련되지 않은 임금피크제는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온 가운데 이번 판단이 향후 새 정부가 추진할 임금체계 개편에 새로운 기준점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1부(재판장 박대산)는 지난 15일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다 작년 또는 올해 정년퇴직한 아이엠라이프생명보험(옛 DGB생명보험) 근로자 3명이 회사를 상대로 임금피크제로 인해 덜 받은 임금을 청구한 소송에서 원고 손을 들어줬다.

    아이엠라이프는 2016년 정년을 60세로 정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시행을 앞두고 58세던 정년을 60세로 2년 연장하는 동시에 56세부터 60세까지 임금을 감액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에 근로자들은 56세 때 원래 지급받던 고정급여의 75%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매년 10%씩 감액해 60살에는 35%만 받았다.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은 근로자들이 5년간 받을 수 있던 임금은 기존 연봉의 275%에 그쳐 연장된 정년만큼 더 일하게 됐지만 임금 총액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아울러 회사는 임금피크제 적용 시점부터 이들에게 기존 업무와 무관한 민원 업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판부는 회사가 해당 근로자의 임금을 과도하게 삭감하고 근로자에게 민원 업무를 맡긴 행위를 두고 임금피크제 무효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근로자들은 업무 경력·근무적성과 무관하게 민원 업무를 배정받아 업무를 습득하고 처리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감액되는 임금에 비례해 업무를 감경하거나 업무 내용을 변경하는 등 적절한 대상 조치를 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정년 연장이 근로자에게 이익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연장된 근무기간 추가로 급여를 수령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정년연장과 함께 시행되는 임금피크제의 임금조정률이 과도하고 대상조치도 충분하게 도입되지 않았다면 연장된 근무 기간에 실질적으로 무임금으로 일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부연했다.

    앞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유효하다는 판결이 대부분이었다. 고령자고용법이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의무를 노·사 모두에게 부여했고, 임금이 일정 부분 줄더라도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됐고, 업무 경감 등의 대상 조치가 이뤄졌다면 문제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번 재판부의 판단은 새 정부가 추진하는 정년연장의 핵심 쟁점인 임금체계 개편과 대상 조치 도입 방안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던져줄 전망이다. 향후 정부가 임금피크제 안에서도 과도한 감액을 하거나, 근로자 입장에서 어려움을 느낄만한 업무를 배정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이번 판단을 두고 환영하는 입장인 반면, 경영계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 관계자는 "임금피크제와 관련해선 개별 사건마다 법원의 판단이 달라서 모호한 측면이 있다"며 "정부가 정년 65세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임금피크제를 최근에 도입한 기업들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법원의 판단이 임금 피크제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등법원 제15-2민사부(재판장 신용호) 지난달 13일 르노코리아 전·현직 근로자 A씨 등 45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측 항소를 기각했다. 원고 패소한 1심을 유지한 것이다.

    르노코리아는 만 54세가 되는 1월1일부터 만 60세까지 7년 동안 매년 전년도 고정급여의 10%를 감액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임금피크제 도입 후 대상자들의 임금은 △만 54세 90% △만 55세 81% △만 56세 72.9% △만 57세 65.6% △만 58세 59% △만 59세 53.1% △만 60세 47.8%로 조정됐다. 조정된 임금이 최저임금보다 적은 경우엔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임금피크제는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는 모든 임금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가족 수당, 중식대 보조, 관리수당, 교대수당 등 정액으로 지급되는 수당은 임금피크제 적용에서 제외됐다"며 "2020년부터는 근로자들에게 더욱 유리하게 임금피크제 적용에서 제외되는 수당의 범위가 확대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