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 디램 시장 잠식 후 DDR5·HBM 급선회중국 정부 지원 등에 업고 빠른 공정 전환HBM2 등 구세대 제품에선 의미있는 점유율中 공격적 기술 투자 전략 韓 반도체 위협
  • ▲ CXMT의 DDR5 제품 이미지 ⓒCXMT
    ▲ CXMT의 DDR5 제품 이미지 ⓒCXMT
    값싼 DDR4로 범용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뒤집어놨던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DDR5에 이어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어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당장은 최첨단 기술을 확보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영향을 주긴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 정부가 HBM 자립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는 점 자체가 위협요인이란 분석이 나온다.

    1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CXMT가 중국 최대 IT 기업인 화웨이에 HBM3를 공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HBM 시장에 본격 뛰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화웨이는 CXMT에서 HBM3를 공급받아 자체 AI 반도체인 '어센드(Asend)' 모델을 고도화해 중국의 AI 반도체 자립화에 힘을 실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CXMT는 일찌감치 HBM으로 생산설비를 전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기존엔 DDR4 같은 범용 메모리 중심으로 생산 공장을 운영하며 생산능력(CAPA)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었는데 돌연 DDR4 생산 중단 대열에 합류하며 업계와 시장의 예상과 다르게 HBM으로 투자를 선회했다.

    CXMT는 최근 몇 년 사이 범용 D램 시장에 메기로 등장해 DDR4 같은 구형 제품들의 단종을 부추겼다. 특히 지난해엔 CXMT가 DDR4 생산능력을 폭발적으로 늘리며 물량을 쏟아내는 바람에 기존에 이 시장을 차지하고 있던 D램 3사(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가 생산 중단을 선언했을 정도다. 지난 2022년 월 7만 장 수준의 DDR4 생산능력은 지난해 거의 3배 증가한 월 20만 장 규모가 됐다.

    그러던 CXMT가 올 들어선 갑자기 DDR4 생산 종료 계획을 밝히면서 전략 변화를 시사했다. 아직 고객사들에 단종이 통보되진 않았지만 늦어도 내년 중반까지는 DDR4 생산을 모두 접겠다는 게 CXMT의 최근 계획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CXMT가 올해 연내에 고객사들에게 이를 공식적으로 통보할 것이란 전망도 하고 있다.

    CXMT가 생산능력을 3배나 확충하면서 확보한 가격 우위로 DDR4 시장을 접수한지도 얼마되지 않았는데 이처럼 갑작스럽게 생산 종료 결정에 나선데는 중국 정부의 압박이 결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가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AI 자립이 절실해지면서 AI 반도체를 자체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기술과 여기에 필요한 HBM 같은 고성능 메모리도 자체 조달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이미 2세대 HBM인 HBM2 같은 구세대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CXMT가 당장은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 HBM 사업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업계에서도 중국과 한국의 HBM 기술력 차이가 적어도 2세대 이상 난다는게 공통적 의견이고 지난 몇 년 간 이 격차를 좁히지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올 들어 CXMT가 이렇게 범용 라인을 접고 HBM에 올인을 택한 상황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중국이 HBM 생산에 큰 뜻을 두지 않고 있던 지난해까지도 사실상 HBM2 생산으로만 삼성·SK의 HBM 생산량의 4분의 1을 차지했을 정도로 잠재력을 숨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AI 산업 드라이브에 힘 입어 CXMT가 HBM 자립화에 올인하고 국내업체들보다 빠른 속도로 기술 개발에 나서는 상황이 현재로선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남아있다. 지난 2016년 설립돼 뒤늦게 D램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공격적 캐파 확장과 기술 투자로 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는 것이 CXMT의 가장 큰 무기이기도 하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최근 HBM 시장 경쟁 상황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CXMT 등 중국업체들의 DDR5 시장 진입은 전체 D램 시장 자체의 잠식을 의미하기 때문에 메모리 업종 전반에 대한 하방 리스크"라고 지적하며 "중국업체들의 고성능 메모리 시장 진입 시점과 그 수준이 관건"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