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1년 늦추면 고령 정규직 5만명 은퇴 미뤄질 듯당정·노동계 '65세 정년' 입법 추진4.5일제·AI 대체·제조업 공동화도 '고용 위축' 원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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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년이 1년 연장되면 정규직 고령자 약 5만 명의 은퇴가 유예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 여파로 '질 좋은 일자리' 공급이 줄면서 청년층의 취업난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저출생·고령화 심화 속에 정년 연장을 추진하면서도 청년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9일 국가데이터처의 경제활동인구 마이크로데이터를 세부 분석한 결과, 한국 상용근로자의 연령별 분포는 59세에서 60세로 넘어가는 시점에 급격히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상용근로자는 1년 이상 계속 일할 것으로 예상되는 취업자를 뜻하며, 임금근로자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형태로 통상 정규직으로 분류된다.

    1964년생 상용근로자는 59세였던 2023년에 29만1000명이었으나, 60세가 된 2024년에는 23만7000명으로 5만5000명 감소했다. 1960~1964년생 집단에서도 59세에서 60세로 넘어가는 시점에 상용근로자가 평균 5만6000명(감소율 20.1%) 줄었다. 이는 법정 정년 60세에 맞춰 상용근로자가 대거 정년퇴직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종업원 300인 이상 대기업의 상용직에서 법정 정년의 영향은 더 뚜렷했다. 대기업 상용직 1964년생 근로자는 2023년(59세) 4만5000명이었지만, 2024년(60세)에는 2만5000명으로 44.5% 급감해 거의 반토막이 났다. 1960~1964년생 대기업 상용직의 경우 평균 1만7000명(43.3%)이 줄었다.

    이에 따라 정년이 60세에서 61세로 1년 연장될 경우, 59~60세 구간에서 나타난 감소가 60~61세로 1년 유예될 가능성이 높다. 즉 기업이 최대 5만6000명의 고령 상용근로자를 1년 더 고용해야 하는 셈으로, 이는 고령층 인건비 부담 확대와 신규 채용 여력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발표한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정년을 연장할 때 고령 근로자 1명이 늘어날 때마다 청년 근로자 0.4~1.5명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단순 대입하면 정년을 1년 연장할 경우 청년층의 안정된 일자리 약 5만 개가 줄어드는 셈이다.

    청년층(15~29세) 취업자 수는 2021년 11만5000명, 2022년 11만9000명 증가했으나 2023년엔 9만8000명, 2024년엔 14만4000명이 감소했다. 20대 전체 일자리 중 새 일자리 비중 역시 2022년부터 올해까지 51.4%→50.6%→48.0%→46.9%로 낮아지는 등 청년 일자리 공급이 꾸준히 줄고 있다.

    최근 이재명 정부는 정년 연장을 국정과제로 채택했고, 더불어민주당과 노동계가 주도하는 만 65세 정년 연장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성장 잠재력 하락과 노인층 빈곤 완화를 위해 고령층의 생산적 노동시장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다만 정년 연장이 청년층 일자리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만큼, 정교한 청년 고용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변화의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하고 점진적으로 제도를 시행해야 가계와 기업이 이에 맞게 대응할 수 있다"며 "대미 관세협상에 따른 국내 투자 위축으로 신규 고용 창출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정년 연장은 추가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 청년층을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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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와 관련 없음. ⓒ뉴데일리DB
    한편,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본격화하면서 국내 제조업 공동화와 고용 위축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대기업 내에서도 50세 이상 인력이 30세 미만 인력 비중을 처음으로 넘어서는 등 '세대 역전'이 현실화되며 청년 일자리 축소가 구조적 문제로 고착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가 겹치며 고용 한파가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올해 약 1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한국에서도 최근 2년간 청년 일자리 21만 개가 줄었는데, 이 중 98% 이상이 AI에 취약한 업종에서 발생했다.

    노동시장 경직성, AI 확산, 제조업 공동화가 맞물리면서 청년층은 구직 의욕마저 잃고 있다. 청년 고용률은 17개월 연속 하락세(45.1%)를 기록했으며, '쉬었음' 인구는 20대 기준 7.2%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KDI는 "표면상 실업률이 낮게 보이지만, 사실상 청년층의 노동시장 이탈이 통계 착시를 만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청년층의 생활 여건도 악화일로다. 전세 매물 감소와 월세 전환으로 주거비 부담이 급증하며, 월세 거주 가구의 주거비 비율이 21.5%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이 임금 대부분을 월세로 쓰며 자산 축적이 지연되는 악순환이 심화되고 있다"며 "결국 소득 수준에 따라 주거·노동 격차가 고착화되는 양극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