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정년 67세서 70세로 연장 … 법안 통과블루칼라 노동자 반발 … "연금 수령 나이 너무 늦어"고령 근로자 증가세 … "정년 연장 미룰 수 없는 과제"
  • ▲ 인천 남동구 인천시청 중앙홀에서 열린 2025 중장년 채용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 인천 남동구 인천시청 중앙홀에서 열린 2025 중장년 채용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덴마크에서 정년을 70세로 연장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국내에서도 '정년 연장' 문제가 재조명받고 있다.

    청년 일자리 부족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현실을 외면할 순 없지만, 세계적인 정년 연장 추세를 거스를 수도 없는 만큼 차기 정부에서 정년 연장 논의가 다시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25일 영국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22일(현지 시각) 덴마크 의회는 전날 찬성 81표 반대 21표로 이런 내용의 은퇴 연령 상향안을 승인했다. 

    덴마크는 2006년부터 기대수명과 은퇴 연령을 연동해 5년마다 조정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덴마크의 정년 연령은 67세이지만, 2030년에는 68세, 2035년에는 69세로 높아질 예정이다. 70세 정년은 1970년 12월 31일 이후 출생한 국민부터 적용된다.

    덴마크 고용부 장관은 이와 관련해 "미래 세대에 적절한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선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덴마크 인구수는 약 600만 명으로, 이 중 60~69세 사이 인구는 약 71만3000명, 70~79세 사이의 인구는 약 58만 명이다.

    다만 블루칼라 노동자들 사이에선 반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육체적으로 고된 일을 하는 이들 입장에선 연금 수령 나이가 지나치게 늦춰지기 때문이다. 

    실제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는 반대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예스페르 에트루프 라스무센 덴마크 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덴마크는 경제가 튼튼한데도 유럽연합(EU)에서 은퇴연령이 가장 높다"라며 "은퇴 연령이 늦춰지는 것은 사람들이 존엄한 노년 생활을 할 권리를 잃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은퇴 연령을 점진적으로 늘리는 현재의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도 지난해 "우리는 더이상 정년이 자동적으로 연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1년 더 일해야 한다고 말할 순 없다"라고 지적했다.

    덴마크 외에도 프랑스가 2023년까지 64세로 연장하고 독일은 66세인 현 정년을 2029년까지 67세로 늘리는 등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정년 연장에 동참하고 있다. 

    이밖에 법정 정년 60세인 일본의 경우 기업에 계속 고용 옵션을 제공해 65세까지 근로자 재고용을 유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현행 63세인 정년을 내년까지 64세로, 2030년까지 65세로 각각 상향 조정한다. 
  • ▲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연합뉴스
    ▲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연합뉴스
    정치·경제계에선 오는 6월 3일 대선 이후 좌우 진영 관계없이 어떤 정권이 출범하더라도 정년 연장 문제를 도외시할 순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당 문제는 여야가 모두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어 대선 이후 계속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년 연장 문제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다루고 있다. 노동계가 비협조적이어서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최근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국민연금 개혁에 합의한 만큼 대선 이후 정년 연장 문제가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정년 연장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에 대해서는 양당의 의견이 엇갈린다. 

    민주당은 노동계가 요구하는 법 개정을 통한 일률적이고 임금 감소 없는 정년 연장안을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일률적인 정년 연장 대신 자율적인 '퇴직 후 재고용'과 임금체계 개편을 전제로 한 연장 방안으로 맞서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최근 페이스북에서 "주 4.5일제 단계적 도입과 실노동 시간 단축 로드맵을 추진하겠다"라며 "정년 연장도 사회적 합의로 추진할 것"이라고 적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최근 경제5단체와 만난 자리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의 '일률적인 법정 정년 연장은 고령 인력에 대한 부담을 더욱 높여 청년층 신규 채용 기회를 축소한다'라며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검토해달란 요청에 "전적으로 제 생각과 같다"라고 답했다. 

    정년 연장에 대한 여론도 호의적이다.

    앞서 한국갤럽이 지난 3월 18∼2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한 결과, '정년을 65세로 올려야 한다'는 79%, '정년을 60세로 유지해야 한다'는 16%로 나타났다. 

    실제 일하는 60세 이상 인구는 700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 취업자들이 원하는 근로 희망 나이도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4월 기준 60세 이상 취업자는 690만6000명으로 전년 대비 34만 명(5.1%) 늘었다. 이는 지난 1982년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역대 최고치다.

    2021년 1월 448만 8300명이던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불과 1년 4개월 만에 150만 명 이상 증가해 2022년 5월 600만 명을 넘어섰다. 70세 이상 취업자는 222만 9000명으로 전년(204만 8000명)보다 8.8% 늘었다.

    고령층 취업자가 늘면서 평균 근로 희망 연령도 높아졌다.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해 55~79세 인구의 평균 근로 희망 연령은 73.3세로 2019년(72.5세)보다 0.8세 높았다. 60~64세는 71.9세, 65~69세는 75.0세, 70~74세는 78.7세, 75~79세는 82.3세였다.

    연령이 높을수록 근로를 계속하길 희망하는 나이도 함께 높아졌다. 고령층의 가장 큰 근로 희망 사유는 '생활비에 보탬'(55.0%)이었다. 이어 일하는 즐거움(35.8%), 무료해서(4.2%), 사회가 필요로 함(2.7%), 건강 유지(2.2%) 등의 순이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령 인구 증가로 취업자 수와 평균 근로 희망 연령이 모두 상승하고 있으며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며 "정년 연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인 만큼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