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 건조·우라늄 농축 등 핵심 사안은 여전히 조건부자동차 관세 인하에도 수입 문호 확대… 국내 업계 긴장LMO 승인·고정밀지도 반출 등 곳곳서 논쟁 여지 많아대미 투자 확대 속 원화 약세… 외환시장 리스크도 커져
  • ▲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기자회견장에서 한미 팩트시트 타결과 관련해 발표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명 대통령,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연합뉴스
    ▲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기자회견장에서 한미 팩트시트 타결과 관련해 발표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명 대통령,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연합뉴스
    한·미 관세·안보 협상 결과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공개됐지만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여전히 조건부 합의가 적지 않고 후속 협상이 필요한 사안도 남아있어 상황이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심하기 이르다는 반응이 나온다.

    ◆팩트시트 안 담긴 韓 핵잠 국내 건조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지지 등이다. 정부가 이번 회담의 핵심 성과로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실행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2015년 개정된 현행 한·미원자력협정은 미국 사전동의 없이 한국이 핵물질을 농축하거나 재처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번 팩트시트에서는 원자력 협력에 대해 '123협정(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로 이어질 절차를 지지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협정 개정이 명시되지 않은 채 농축 및 재처리 절차에 대한 미국의 지지만 제시돼 향후 험난한 추가 협상이 예상된다. 

    2035년 종료 예정인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려면 미국 행정부가 동의해야 하고 미 의회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미 원자력 고위급위원회조차 2018년 이후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 향후 상황을 낙관하긴 어렵다. 

    원잠과 관련해서는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다'며 '미국은 이 조선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란 표현이 담겼다. 다만 원잠 건조 장소와 방안은 명시돼 있지 않다. 

    위 실장은 "(한미) 정상 간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내 건조를 전제로 진행됐다"고 강조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고 못받으면서 논란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다. 한국과 미국의 메세지가 엇갈린 만큼 향후 협상 과정에서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곽노성 동국대 명예교수는 "양국이 핵추진 잠수함 건조 장소를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고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우라늄 저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포괄적으로 허용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며 "앞으로 실무 협상을 통해 잘 조율해나가야 할 과제로 남은 셈"이라고 말했다. 
  • ▲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는 모습.ⓒ연합뉴스
    ▲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는 모습.ⓒ연합뉴스
    ◆車 관세 내려도 15%  … 철강 50% 고관세 그대로
    한국의 대미 자동차 관세가 기존 25%에서 15%로 낮아졌다. 다만 4월 이전만해도 무관세였던 한국산 수출차에 15%의 관세가 확정되면서 그동안 유지돼 온 가격 경쟁력 우위도 사라진 셈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미국산 자동차의 수입 문호가 더 개방됐다. 미국 연방자동차안전기준(FMVSS) 충족 차량의 연간 수입 쿼터였던 5만대 제한이 사라진 것이다. 사실상 미국산 차량의 유입 장벽이 사라진 상황이다. 이를 두고 정부는 "현재 매년 미국에서 수입되는 자동차가 모든 제작사를 합쳐도 5만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번 완화 조치에 따른 우리 자동차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테슬라가 안전자율주행 출시를 준비하고 있어 업계의 우려가 적지 않다. 

    더욱이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춘다는 내용만 담겼을뿐 소급·적용하는 시점은 빠져 있다. 정부는 MOU 이행을 위한 별도 법인이 국회에 제출되는 달의 1일부터 소급적용하기로 양국 간 합의했다고 밝힌 상황이다. 다만 모든 조치는 미국 상무부에서 관세 인하 이행을 위한 권고를 연방 관보에 게제해야 최종 확정된다. 

    팩트시트에는 '한·미 양국은 미국 기업이 네트워크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 등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고, 위치·보험·개인정보 등 국경 간 데이터 이전을 원활히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디지털 규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한 것이어서 국내에서 논의 중인 빅테크 망 사용료 법제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정밀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 요구 등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 관세협상에도 철강·알류미늄 품목은 협상에서 제외돼 여전히 50%의 고율 관세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트럼프 정부가 철강을 '안보 핵심 품목'으로 지정했다는 이유로 안건에서 제외하면서다. 

    철강업계가 50%의 고율관세로는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여기에 중국의 밀어내기식 저가 물량 공세와 온실가스 감축 의무까지 겹치면서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 형국이다. 최대 수출처인 유럽이 미국의 고율 관세에 맞서 관세 대폭 인상에 나설 가능성도 나오면서 한국 철강의 수출 환경은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다. 
  • ▲ 한·미 관세협상 팩트시트에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포함되지 않았다.ⓒ연합뉴스
    ▲ 한·미 관세협상 팩트시트에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포함되지 않았다.ⓒ연합뉴스
    ◆비관세 장벽 논의에 커진 국내 개방 부담 

    팩트시트에는 '한국은 식품·농산물 교역에 영향을 미치는 비관세 장벽 논의를 위해 미국과 협력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식품의 규제 승인 절차를 효율화하고 미국 업체가 신청한 건의 심사 지연 문제를 해소하겠다고도 약속했다. 

    미국산 과일과 채도 등 원예작물 검역 절차 전담 창구인 'US 데스크' 설치가 추진된다. 미국 측이 병해충 위험성을 평가하는 검역 협상이 지나치게 길다고 불만을 제기해온 데 대한 대응으로, 양국간 소통을 강화하하는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기존 합의에서 벗어난 농축산물 추가 개방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팩트시트에는 미국산 농산물의 국내 진입을 한층 수월하게 하는 비관세 분야 제도 개선도 담겨 있어 결과적으로는 사실상의 추가 개방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농민단체는 US데스크를 두고 "US 데스크 설치는 우리 농업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인 검역주권마저 저버리며 식량주권을 포기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양국은 연내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를 개최해 농산물·데이터 등 비관세 장벽 완화 등에 대한 구체적 이행 방식과 명문화 등을 추가 논의할 방침이다.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는 외환시장에 또 다른 부담요인으로 지목됐다. 정부는 한국 외환시장 부담 경감을 위해 연 200억달러 한도를 두긴 했지만, 대규모 해외투자는 원화 약세를 자극하는 대표적 변수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지난 14일 원달러 환율의 1457.0원을 기록했다. 전날 1475.7원까지 오르며 7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후 외환당국의 구두 개입이 나온 뒤에야 소폭 되돌아선 것이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대미 투자금과 관련해선, 사업성 논란이 계속돼 온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로의 자금 투입을 제대로 막아낼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며 "철강의 경우도 미국이 '안보 핵심 품목'을 이유로 논의대상에서 제외했는데 우방에도 이 같은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