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본사·차등의결권에 집중된 지배력 … 최고 의사결정자는 침묵국내 책임선은 '공백' … 반복된 사고에도 사장은 총알받이소비자 3370만명 피해·주가 급락 … 전문가 "보안 아닌 지배구조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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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배송과 편리함의 상징이 된 쿠팡. 연 매출 40조원을 넘는 국내 유통 공룡으로 성장했지만 그 확장 뒤에는 구조적 문제가 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데일리는 쿠팡의 지배구조, 위기관리 능력, 시장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쿠팡 경영 해부 기획을 통해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쟁점들을 면밀히 짚어본다. [편집자주]
- ▲ ⓒ쿠팡
쿠팡의 개인정보 3370만건 유출 사태는 단순한 보안 사고가 아니라 기업 구조의 취약성이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에서 성장했지만 의사결정권은 미국 본사에 집중되고 최고 책임자는 국내 책임선 밖에 머무는 성장은 한국, 책임은 미국이라는 구조적 모순이 이번 위기를 키웠다는 것이다. 전례 없는 규모의 정보 유출에도 김범석 미국 쿠팡Inc 이사회 의장은 침묵을 이어가면서 책임 회피 논란은 한층 더 확산되고 있다.
◇ 지배는 일원화, 책임은 분산 … 쿠팡 구조의 근본적 문제
쿠팡은 창업지는 한국이지만 현재 지배구조의 중심은 철저히 미국에 놓여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미국 본사 쿠팡Inc가 한국 법인 지분 100%를 보유한 전형적인 미국 기업 구조다.
쿠팡Inc의 주요 주주는 김 의장을 비롯해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투자자로 구성돼 있다. 이사회 역시 김 의장을 포함해 대부분 미국인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김 의장은 쿠팡Inc에서 보통주보다 29배 높은 의결권을 가진 Class B 보통주를 통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한다. 그는 Class B 1억5780만2990주(지분율 8.8%)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의결권 기준으로 환산하면 70%가 훌쩍 넘는다. 사실상 쿠팡의 최종 의사결정권이 김 의장에게 집중된 구조다.
김 의장은 지난해 11월 Class B 일부를 Class A 1500만주로 전환해 매각하며 약 4846억원을 현금화했다. 별도로 Class B 200만주를 자선기금에 기부했으나 해당 기금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만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본사 구조 위에 강력한 차등의결권까지 얹히며 쿠팡의 지배구조는 철저히 미국식으로 굳어졌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최고 지배권은 유지하면서도 책임은 피할 수 있는 통로로 작동해 왔다는 점이다.
김 의장은 2021년 한국 쿠팡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으며 국내 법적 책임선에서도 사실상 벗어났다. 이후 물류센터 화재, 노동자 과로사, 입점업체 갈등 등 굵직한 사건이 잇따랐지만 공식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동일인(총수) 지정에서도 미국 국적 등을 이유로 2년 연속 제외되며 책임경영 논란은 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대응은 박대준 한국 법인 대표 등 실무진에게 맡겨졌다.
이날 열린 국회 과방위 현안질의에서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 의장이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박 대표는 "한국 법인에서 발생한 일이고 제 책임 아래 있기 때문에 제가 사과드린다"고 답했다. 이는 위기 때 최고경영자가 직접 나서 사과문을 발표해온 최태원 SK 회장 등과 대조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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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적 모순이 만든 책임의 공백 … 피해는 결국 소비자
- ▲ ⓒ뉴시스
쿠팡의 337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은 국내 성인 4명 가운데 3명이 피해 대상이 될 수 있는 규모다. 지난 3분기 기준 프로덕트 커머스 활성고객은 2470만명으로 사실상 쿠팡의 핵심 회원 대부분이 뚫린 셈이다. 탈퇴 고객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전 국민 피해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주소·연락처·주문 정보·공동현관 비밀번호 등 2차 범죄로 악용될 수 있는 민감 정보까지 포함되면서 소비자 불안은 극대화됐다. 실제로 유출 사실을 사칭한 스미싱·피싱 메시지나 원격제어앱 설치 유도 시도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금융당국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피해 사실 조회, 보상·환불 안내 등을 빌미로 개인정보·금융정보 탈취 시도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전날 입장문을 통해 "소비자의 가장 내밀한 정보가 노출됐는데도 원인과 규모조차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실질적 피해 구제와 구체적 배상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비판했다.
소비자 피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시장도 이번 사태를 단순한 보안 사고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사고 직후 뉴욕증시에서 쿠팡 주가가 5% 넘게 급락한 것은 내부통제 부실과 책임 구조의 취약성에 대한 우려가 투자심리까지 흔들었다는 방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보안 실패를 넘어 쿠팡식 지배구조가 만들어낸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쿠팡은 사실상 한국 기업이 아니라 미국 기업"이라며 "미국에서 이 정도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했다면 회사가 흔들릴 만큼 제재가 강하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하다는 점을 쿠팡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정보보호에 충분한 비용을 들이지 않는 구조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며 "보안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인식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대적인 보안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배구조상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김 의장이지만 실질적 책임은 한국 법인 사장이 전적으로 지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면서 "이번 사태에서도 사장이 총알받이처럼 책임을 떠안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오너인 김 의장이 책임감을 분명히 느끼고 직접 메시지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또한 "쿠팡은 여러 분야 우수 인재를 영입해왔지만 보안만큼은 투자가 충분하지 않았다"며 "보안 인력 확보와 투자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