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조원 국민성장펀드 공식 출범, 의사결정 배제된 은행산업계 주도 거버넌스 속 ‘누가 손실 책임지나’ 공백 논란AI 30조·대출 50조 … 투자인가 재정사업인가의 경계속도 높인 심사 구조, 리스크 통제·책임 설계는 여전히 숙제
-
- ▲ ⓒ연합
정부가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출범시키며 '투자의 시대'를 선언했지만, 금융권의 표정은 복잡하다. 초대형 정책펀드의 운용 구조에서 핵심 자금 공급자인 은행권을 사실상 배제하면서 성과와 손실에 대한 책임 구조가 불분명해졌다는 지적이다. 산업 육성을 내세운 공격적 투자 기조와 금융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가 충돌하는 지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다.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성장펀드는 향후 5년간 150조원을 AI·반도체·모빌리티·바이오·이차전지 등 11개 첨단 전략산업에 투입하는 초대형 정책 펀드다. 재원은 정부보증채권으로 조성한 75조원의 첨단전략산업기금과 민간·금융권 자금 75조원으로 구성된다. 특히 AI 분야에만 전체의 20%에 해당하는 30조원이 배정되며, 반도체(20조 9000억원), 모빌리티(15조 4000억원), 바이오·백신(11조 6000억원)이 뒤를 잇는다.문제는 자금 규모보다 운용 구조다. 펀드의 최상위 자문기구인 전략위원회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과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한 산업계 중심 체제로 출범했다. 반면 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은 공동위원장단에서 제외됐다. 민간 자금이 절반을 부담하는 구조임에도, 금융권은 '돈은 내고 판단은 못 하는' 위치로 밀려났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정책펀드는 본질적으로 정책성과 투자성과를 동시에 요구받는다. 그러나 현재 설계는 정책 신호와 산업 논리가 투자 판단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고, 손실 발생 시 책임 소재는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정책 목표가 앞선 투자가 실패했을 때 금융권에는 리스크 관리 실패 책임만 남게 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투자 방식도 논란이다. 150조원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은 초저리 대출(50조원)에 배정됐다. 직접 지분 투자(15조원)와 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35조원)는 상대적으로 적다. 혁신 기업을 키우겠다는 목표와 달리, 자금이 기존 기업의 차환이나 비용 절감 수단으로 소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출 중심 구조로는 데카콘(기업가치 10조원 이상) 육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1호 투자로 사실상 낙점된 국가 AI 컴퓨팅 센터를 둘러싼 시선도 엇갈린다. AI 인프라는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필수적이지만, 초기 투자비와 장기 운영비 부담이 크고 수익 회수 구조가 불투명하다. 민간 기업들이 수익성 문제로 참여를 주저한 사업에 정책 펀드가 먼저 나서는 것이 타당하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수익형 투자라기보다 재정 사업에 가까운 구조라는 분석도 있다.금융당국의 책임 회피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책적 목적이 앞선 투자가 손실을 낸 경우 정부는 '민관 합동 구조'라는 이유로 책임을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 금융권에는 리스크 검증이 미흡했다는 역공이 이어지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는 셈이다. 과거 뉴딜펀드 당시 일부 정책 투자처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는 의미다.정부는 투자 속도를 높이기 위해 심사 구조를 '투자심의위원회→기금운용심의회' 2단계로 간소화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통제"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이해상충 방지, 성과 평가, 손실 발생 시 책임 분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을 경우 과거 정책 펀드 논란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다.경제학계 한 교수는 "(국민성장펀드는) 정책·시장·금융이 함께 움직이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전략위가 산업계 중심으로 구성된 만큼, 리스크 통제·이해충돌 방지·성과 모니터링 등 금융적 감시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금융당국의 가장 큰 과제"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