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8000 시대 … 금융채무 불이행자 다시 100만명 눈앞40·50 신용불량자 44만명, 자영업·중산층부터 흔들린다반복되는 배드뱅크 논의 … 흔들리는 신용의 경계선대출 막히자 불법사금융 급증 … 무너지는 금융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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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은 돌게 해야 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을 향한 메시지는 분명해졌다. 은행의 공공성과 포용금융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책서민금융 출연금 확대, 국민성장펀드 조성, 장기연체채권 정리 논의 등이 동시에 추진되며 금융권의 정책 부담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문제는 속도와 방식이다. 금융은 본질적으로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는 산업인데, 최근 정책 기조는 은행 수익과 신용 체계를 '공공재'처럼 활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출연금 확대와 채무조정 강화, 규제 강화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금융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는 [착한 금융의 역설] 시리즈를 통해 포용금융 확대 이면에서 벌어지는 변화들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증시는 뜨겁지만 서민 경제는 차갑다. 코스피가 8000선 안팎에서 움직이는 동안 한국 경제 한편에서는 빚을 버티지 못한 취약차주가 빠르게 늘고 있다.

    반도체와 자산시장은 호황을 이어가는 가운데, 자영업·중소기업·중산층 가계는 고금리와 내수 부진에 짓눌린 채 연체와 채무조정으로 내몰리는 모습이다. 자산시장 랠리 뒤편에서 '신용의 균열'이 한국 경제의 또 다른 위험 신호로 떠오르고 있다.

    ◆ 코스피는 뛰는데 … 다시 다가온 '신용불량자 100만명'

    22일 금융권과 한국신용정보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는 93만 5801명으로 집계됐다. 201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 직후 저점이었던 2022년(73만 1428명)과 비교하면 불과 3년 만에 20만명 넘게 늘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올해 안에 다시 100만명을 넘어설 가능성도 거론한다.

    특히 한국 경제의 허리인 40·50대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전체 금융채무 불이행자 가운데 40대는 21만 5479명(23.0%), 50대는 22만 8235명(24.4%)으로 두 연령층 비중만 47.4%에 달했다. 자영업과 제조업 침체, 건설 경기 악화가 한꺼번에 겹친 결과라는 분석이다.

    가계부채는 다시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93조 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분기보다 14조원 증가한 규모다.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등 주택 관련 대출은 8조 1000억원 늘었다. 증시 활황 속 '빚투'를 보여주는 기타대출 증가폭도 4조 8000억원에 달했다.

    반면, 실물경제는 정반대 흐름이다. 제조업과 건설업, 자영업 현장에서는 내수 부진과 원가 상승 압박이 동시에 이어지는 형국이다. 미국 장기금리 급등 여파로 국내 금융채 금리와 국고채 금리도 다시 뛰면서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 상단은 최근 다시 연 7%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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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시화되는 빚 조정 … 흔들리는 신용의 경계

    코로나 이후 누적된 취약차주 부실이 장기화되면서 채무조정 제도는 일시적 위기 대응을 넘어 사실상 금융 시스템의 상시 장치처럼 자리 잡는 분위기다. 새출발기금과 신용회복위원회 프로그램, 캠코의 장기 연체채권 정리 등이 동시에 확대되면서 금융권 안팎에서는 '한국형 배드뱅크 기능'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 정부와 금융권은 자영업자·소상공인 부실이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연체채권 매입과 금리 감면, 장기 분할상환 지원을 꾸준히 늘려왔다. 특히 새출발기금은 코로나 피해 자영업자의 부실채권을 정책적으로 흡수하는 대표적 장치로 자리 잡았다. 은행권 자체 프리워크아웃과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 프로그램 이용도 함께 증가하는 추세다.

    정치권 역시 포용금융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절박한 사람일수록 더 비싼 돈을 쓰는 구조는 잔인한 금융"이라고 언급하며 채무 부담 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최근 공개 발언에서 "금융이 고신용자 중심 구조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며 취약차주 지원 확대 필요성을 거듭 언급했다.

    다만 금융권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진다. 반복적인 원금 감면과 채무조정 논의가 누적되면서 시장의 신용 원칙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버티면 결국 감면받는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에서는 이미 부실 압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서울 중구 신용회복위원회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는 최근 하루 평균 150명 안팎이 상담을 받기 위해 찾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당수는 폐업이나 소득 감소 이후 원리금 상환 능력이 급격히 악화된 사례들이다. 금융권에서는 단순 유예를 넘어 사실상 원금 조정까지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금융 사다리 무너지고 … 취약차주들 불법사금융 내몰려

    제도권 금융의 문턱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은행권 대출 규제가 강화되자 수요는 저축은행과 상호금융권으로 이동했지만, 이들 업권마저 건전성 관리에 나서며 대출 공급을 빠르게 줄이고 있다.

    저축은행 중금리대출 공급액은 2024년 5조 4891억원에서 최근 3조 3000억원 수준까지 감소했다. 새마을금고와 신협, 지역 농협 등 상호금융권 역시 비조합원 대출 제한과 주택담보대출 축소에 들어간 상태다. '은행→2금융권→대부업'으로 이어지던 금융 접근 통로 자체가 좁아지면서 취약차주들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 빈자리는 불법사금융이 파고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사금융 피해 신고는 1만 7538건으로 전년 대비 13.9% 증가했다. 일부 불법 대부조직은 연 환산 6000~7000%대 금리를 적용했고, 극단적인 사례로는 1만 8000%를 넘는 초고금리까지 적발됐다. 생활비와 임대료, 병원비조차 감당하지 못한 청년층과 자영업자들이 마지막 선택지로 불법 대출 시장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경기 둔화가 아니라 구조적 양극화가 만들어낸 결과로 보고 있다. 반도체와 자산시장은 호황을 이어가지만, 실물경제와 취약계층은 빚 부담과 연체 위험 속으로 더 깊게 빠져드는 '이중 경제'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외환위기나 코로나 시기에는 경기 반등과 함께 연체자 수가 감소했지만 지금은 산업 구조와 소득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며 "상환 능력을 잃은 취약차주가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흐름이라는 점에서 훨씬 위험한 국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