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교수 "넷플릭스, 국경 초월한 감정 경험 만들어… 공간 권력의 이동"김숙영 교수 "美 MZ세대, 불안정한 사회 겪으며 K-콘텐츠에서 소속감 찾아"
  • ▲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 ⓒ넷플릭스
    ▲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 ⓒ넷플릭스
    K-콘텐츠가 국경을 넘어 전 세계 MZ세대의 소비 습관과 생활 양식에 강력한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류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지속 가능한 글로벌 문화 코드로 자리잡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3일 넷플릭스가 서울시 성수동 소재 앤더슨씨에서 '넷플릭스 인사이트' 행사를 열고 K-콘텐츠가 가져온 글로벌 문화 지형의 변화를 논의했다.

    먼저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건축학부 교수는 "현대인의 생활 공간은 더 이상 오프라인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의 상당 시간을 스마트폰과 스크린 속에서 보내는 시대, 온라인 공간은 물리적 공간과 결합해 하나의 확장된 생활 공간으로 작동한다"며 "이 변화의 중심에 OTT 플랫폼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 교수는 "OTT는 단순한 영상 소비 채널을 넘어, 사람들이 감정과 시간을 공유하는 공동의 공간 역할을 한다. 과거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이나, 1970~1980년대 국민 드라마를 통해 형성되던 집단적 감정 경험이 이제는 OTT를 통해 글로벌 단위로 확장된 셈"이라며 "대표적으로 넷플릭스는 특정 국가의 콘텐츠가 국경을 넘어 동일한 감정 경험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완성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람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있는 사람이 힘을 가진다. OTT 시대의 경쟁력은 더 많은 시선을 더 오래 붙잡을 수 있는 콘텐츠와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며 "지금 이 흐름 속에서 K-콘텐츠는 글로벌 온라인 공간의 중심부를 점유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공간 권력의 이동에 가깝다"고 역설했다.
  • ▲ 김숙영 UCLA 연극·공연학과 교수. ⓒ넷플릭스
    ▲ 김숙영 UCLA 연극·공연학과 교수. ⓒ넷플릭스
    김숙영 UCLA 연극·공연학과 교수는 이번 한류 열풍이 일시적이 아닌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 근거는 새로운 세대가 K-콘텐츠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MZ세대는 향후 수십 년간 문화 소비의 중심이 될 핵심 성장동력으로, 이들이 형성하는 취향과 소비 습관은 장기적인 문화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지난 7월 빌보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2%가 일주일 내내 K팝을 청취했다고 답했다. 이 조사의 응답자 47%는 13–24세로 구성됐다. K-드라마 또한 미국 내 다양한 인종에게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K-드라마를 시청하는 30%는 히스패닉계로, 미래 미국 사회의 주류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왜 이들은 K-콘텐츠에 열광할까? 김숙영 교수는 '소속감'을 그 이유로 들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미국 MZ세대는 2001년 9·11 사태 이후 형성된 극우주의적 사회 분위기를 거쳐, 2008~2009년 대공황급 경제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으로 냉전 질서가 재소환되는 등 불안정한 시대를 통과했다. 미국 우선주의의 확산, 미투·흑인 인권 운동·아시아계 차별 반대 운동 같은 거대한 사회적 갈등까지 경험하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문화적 정체성 탐색 욕구를 키워왔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로 대인 관계가 단절되고 온라인 중심 생활이 강화되면서, 이들은 온라인을 통해 글로벌 문화를 자연스럽게 소비하고 빠르게 연결되는 데 익숙해졌다. 동시에 무언가에 깊이 빠져들며 소속감과 공동체를 제공하는 커뮤니티를 찾아 나서는 경향이 커졌다는 것이 김숙영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 K-콘텐츠를 즐기는 인구는 지역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지역성이나 정치 성향, 국내의 갈등적인 상황을 떠나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K-콘텐츠에 빠진 것"이라며 "이들은 K-콘텐츠를 향유하는 커뮤니티에 소속됐다는 느낌, 공동체 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 ▲ 왼쪽부터 패널 토론 모더레이터로 참석한 김태훈 팝 칼럼니스트, 김숙영 UCLA 연극·공연학과 교수, 이승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유통전략팀 차장, 이상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한류 PM. ⓒ넷플릭스
    ▲ 왼쪽부터 패널 토론 모더레이터로 참석한 김태훈 팝 칼럼니스트, 김숙영 UCLA 연극·공연학과 교수, 이승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유통전략팀 차장, 이상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한류 PM. ⓒ넷플릭스
    오늘날 한류 열풍의 특징은 실제 소비로 이어지는 데 의의가 있다. 콘텐츠를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뷰티, 패션 등 다양한 분야로 낙수효과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유통전략팀 차장은 "넷플릭스에서 케이팝데몬헌터스(이하 케데헌)가 공개된 직후인 7월, '뮷즈' 매출이 전월 대비 두 배로 급증했고, 올해 400억원의 매출을 무난히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볼펜, 키링 등 중저가 제품으로 400억원의 매출을 낸다는 것은 엄청난 성과"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코트라(KOTRA)는 올해 11월 뉴욕에서 '한류 박람회'를 열었는데, 현장에서만 총 1100만달러의 수출 계약이 성사됐다. 25번째 열린 한류 박람회는 처음으로 북미에서 열렸으며, 이 또한 케데헌으로 대변되는 한류 전성기 덕분에 가능했다.

    이상윤 코트라 한류 PM은 "문화 콘텐츠가 화장품, 식품, 패션, 생활용품 등 4대 소비재로 넓어졌다"며 "특히 뷰티 제품의 경우 피부에 직접 바르기 때문에 프리미엄 소비재인데, 지난해 북미 수입 시장에서 처음으로 프랑스를 누르고 한국이 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승은 차장은 "소비재는 품질이나 배송 상태 등 서비스적인 부분을 만족시켜야 한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키는 것이 필수"라며 "한류 열풍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려면 콘텐츠 업계의 넷플릭스처럼 큰 유통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2026년 밀라노 동계 올림픽을 시작으로 프랑스, 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서 뮷즈를 소개할 것"이라며 "박물관이라는 점에 얽매이지 않고 K팝 등 다른 대중문화와의 접점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