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 이달 13.5조 계약 해지 … '캐즘' 현실화엘앤에프, 3.8조 계약 사실상 물거품 … 도미노 우려美전기차 보조금 폐지 및 EU 전동화 계획 급제동 영향내년 전기차 반등 실현 가능성↓ … ESS 성장도 더딜 수도
  • ▲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 ⓒLG에너지솔루션
    ▲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 ⓒLG에너지솔루션
    국내 배터리 업계가 연말 대규모 공급 계약 해지가 잇따르는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한 세계 전기차 시장의 수요 정체 등의 영향으로, 연말 '매출 증발'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시적 둔화로 보던 전기차 업황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관련 전략을 수정하는 가운데, 그 여파가 내년에도 배터리 업계에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30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전일 이차전지 양극재 전문 기업인 엘앤에프가 테슬라와 지난 2023년 2월 맺은 3조8000억 원 규모의 하이니켈 양극재 공급 계약이 해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엘앤에프는 테슬라와 체결한 하이니켈 양극재 공급 계약 규모를 기존 3조8000억 원에서 973만 원으로 변경했다고 공시했다.

    당초 엘앤에프는 해당 계약으로 인해 지난해 1월부터 이달까지 2년간 3조8347억 원 규모의 하이니켈 양극재를 테슬라에 공급하려고 했다. 4조 원에 육박하는 금액으로 당시 화제를 모았으나, 사실상 계약이 증발한 셈이다.

    회사 측은 이번 공시가 기업의 기초 체력 저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주력 제품인 NCMA95 하이니켈 제품의 출하 및 고객 공급에는 변동이 없고, 한국 주요 셀(Cell) 업체로의 출하 역시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해명이다.

    그러나 이달 들어 LG에너지솔루션이 대규모 계약을 취소한 데 이어 엘앤에프까지 대형 수주가 엎어지면서 업계 전반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달 들어서만 두 차례에 걸쳐 13조 원에 달하는 계약이 물거품이 됐다. 앞서 미국 포드와 계약한 9조6000억 원대 물량이 해지된 데 이어 미국 배터리팩 제조사 FBPS와도 3조9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해지했다.

    업계에선 13조5000억 원에 달하는 예정 매출이 순식간에 사라져 LG에너지솔루션의 충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지난해 매출(25조6200억 원)의 절반을 넘는 수준으로, 내년 사업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 독일 동부 작센주 드레스덴의 폭스바겐 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전기차인 ID.3를 조립하고 있다. ⓒ연합뉴스
    ▲ 독일 동부 작센주 드레스덴의 폭스바겐 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전기차인 ID.3를 조립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계약 해지 배경에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 미국, 유럽연합(EU) 등의 정책 변화가 있다. 

    특히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 우려와 유럽의 전기차 정책 변화 등 정책적 불확실성이 가시화되면서 속속 속도 조절에 나서는 것과 연관이 깊다. 미국은 전기차 보조금 폐지로 전기차 시장이 얼어붙는 데다 EU도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려던 정책을 사실상 철회하면서 글로벌 수요 둔화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과 계약을 해지한 포드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전기차 구매 세액 공제 혜택을 없애자, 전기차 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하이브리드 및 내연기관 차량 중심으로 전략을 수정한 바 있다.

    제너럴모터스(GM)도 최근 전기차 투자 축소를 결정했다. 아울러 3분기 실적에서 전기차 계획 변경과 관련해 16억 달러(약 2조3000억 원)의 손상차손을 반영됐다고 밝혔다. 이밖에 폭스바겐도 잇따라 전기차 투자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있다. 유럽 내 전기차 수요 둔화와 비용 부담 심화를 이유로 독일 드레스덴 공장의 전기차 생산을 종료하고 공장 폐쇄를 결정한 것이다.

    이에 국내 배터리 업계 전반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기차 수요를 끌어 올릴 요인이 부족하고, 대안 수요처로 거론되던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의 내년 성장률이 예상보다 더딜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LG에너지솔루션과 포드·FBPS의 계약 해지는 전기차 후발주자의 경쟁력 열위가 공급계약 해지로 이어지는 사례 확대를 시사한다"라며 "향후 전기차 후발주자의 공급 계약 해지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연구원은 이어 "LG에너지솔루션은 해지된 계약이 2027년 1월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음을 고려하면, 현시점에서 해당 물량을 대체할 수 있는 신규 수주를 즉각적으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2027년 유럽 공장 가동률 개선은 예상보다 지연이 불가피하다"라고 진단했다.

    업계는 ESS용 배터리 시장으로 눈을 돌려 활로를 찾고 있지만 이마저도 낙관적이지 않다고 분석한다.

    최문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ESS 배터리 셀 수요 증가율이 둔화할 수 있다"라며 "ESS가 전기차 부진을 만회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