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정학적 위기 최고조 … '검은 화요일'에 시총 377조 증발 '직격탄'확전·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 가능성에 국제 유가 150억 달러 경고등올해 '2% 성장률' 사수 비상등 … "제2 오일쇼크 대비한 선제 대응 나서야"
  • ▲ 지난 1일(현지시간) UAE 아부다비의 항구에 이란의 공격에 따른 연기가 치솟는 모습.ⓒ연합뉴스
    ▲ 지난 1일(현지시간) UAE 아부다비의 항구에 이란의 공격에 따른 연기가 치솟는 모습.ⓒ연합뉴스
    한국 경제가 미·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라는 초대형 돌발 악재를 만났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미국의 관세 압박이라는 기존 악재에 이어 중동지역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원유 수입의 대부분을 이 지역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할 경우, 1970년대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던 '오일쇼크'가 재현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중동 전면전 우려 속 달러화가 급등하고 국제유가까지 뛰면서 원화가 직격탄을 맞는 모습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한국 시간 기준 4일 0시 20분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넘어 1506원까지 치솟으며 변동성을 키웠지만 다시 1500원 아래로 밀렸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이후 17년 만이다. 이날 주간거래에서도 1479.0원에 장을 출발한 뒤 장중 1480원 안팎에서 등락을 이어가고 있다.  

    전날 국내 증시는 이른바 '검은 화요일'이 찾아왔다. 역대 최대 낙폭(452.22p)을 기록하면서 코스피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증발했다. 3일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이는 일별 증시 시가총액 감소액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4일에도 코스피지수는 장중 12.65% 낙폭을 기록하는 등 패닉셀에 사상 초유의 하락장세다. 급락장이 지속되면서 장중 유가증권 시장에는 매도 사이드카와 서킷 브레이커 모두 발동됐다. 코스피와 코스닥의 동시 서킷 브레이커 발동은 2024년 8월 5일 블랙 먼데이 사태 이후 처음이다.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행동이 확전 양상을 보이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도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위험자산 회피 심리도 뚜렷해졌다. 

    국제 유가가 3거래일 연속 급등하는 등 원유 시장도 즉각 반응했다.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엔 치명적이다. 더욱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국내총생산(GDP) 1만 달러당 원유 소비량은 5.63배럴로 1위를 차지할만큼 원유 의존도도 높다. 유가 급등이 곧장 실물경제 충격으로 전이될 수 있는 취약한 구조인 셈이다. 

    에너지 수입단가 상승은 무역수지 악화로 이어진다. 이는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우고 수입 물가를 자극해 소비자 물가로 전이된다. 달러화 수요 확대와 고유가에 따른 한국 교역 조건 악화로 원화 약세 압력도 한층 거세지는 형국이다. 

    중동발 외부 복합 충격에 정부가 올해 목표로 내세운 '연 2% 성장' 달성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의 지정학적 긴장이 지속될 경우 아시아의 거시경제 전망에 하방 위험을 키울 것"이라며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기준으로 한국과 태국, 대만, 인도 등을 성장 측면의 하방 위험이 큰 국가로 지목했다. 특히 아시아의 석유·가스 무역적자는 GDP의 2.1% 수준이며,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를 때마다 GDP 성장률은 직접적으로 0.2~0.3%p씩 낮아질 수 있다고 추산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중동 원유 의존도는 69%로 이 중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들어온다. 미군이 이란 수뇌부를 빠르게 제거했지만 사태가 장기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에너지 수급 차질은 물론 국내 경제 전반에 상당한 충격이 불가피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미-이란 전쟁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전쟁의 장기화 시 글로벌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이 고착화되면서, 해외시장 수요(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의 특성상 불황 국면으로의 진입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예상되는 시나리오 중 협상이 재개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한 달 이내에 해소되는 '기준 시나리오'에서는 연평균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내외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됐다. 이 경우 성장률이 0.1%p 낮아지고 경상수지는 58억달러 감소하는 데 그치는 반면 소비자물가는 0.4%p 오를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미국 또는 연합군이 지상군을 투입하거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는 '오일 쇼크' 시나리오에서는 연평균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이상으로 치솟는 것으로 전망됐다. 성장률은 최소 0.8%p 떨어지고 소비자물가는 2.9%p 급등하며 경상수지 감소도 767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김진욱 씨티 이코노미스트도 브렌트유 연평균 가격이 배럴당 82달러선으로 기존 대비 20% 가량 상승할 경우 한국의 올해 성장률은 0.45%p 낮아지고 소비자물가는 0.6%p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경제는 원유 수입과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아 유가 상승이 GDP 성장률과 경상수지에 누적되는 부정적 영향이 주요국 중 가장 심한 수준"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보다 선제적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 속단하긴 이르지만 제2의 오일쇼크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고,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충격이 더 클 수 밖에 없어 대비를 늦춰선 안된다"며 "비축유가 7개월치에 불과해 우려스럽고 자칫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비축유를 더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