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내년 최저임금 1만500원~1만1000원 수준 전망"2~5% 인상이 현실적 … 노사 요구안은 경제 현실과 거리""노사 윽박지르기 그만… 물가 기준 점진적 접근해야" 조언
  • ▲ 역대 최저임금 인상률 추이 ⓒ최저임금위원회·챗지피티
    ▲ 역대 최저임금 인상률 추이 ⓒ최저임금위원회·챗지피티
    내년도 최저임금이 1만500원에서 1만1000원 사이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경제학계에서 나왔다. 노동계가 '역대급' 인상을, 경영계가 동결을 각각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양측 요구 모두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고물가 속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 부담은 고려해야 하지만 경기 침체와 자영업 위기를 감안하면 인상률 '2~5% 수준'이 현실적이라는 분석이다.

    전 노동경제학회장인 김기승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물가 상승률과 경기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현재 상황에선 물가 상승률 수준 또는 그보다 약간 높은 정도가 현실적인 범위"라고 밝혔다. 

    같은 학회장을 지낸 김진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상한선은 물가 상승률 정도가 적절하다"며 "올해는 2%대 초반 수준이면 적절한 인상률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은행과 정부가 전망하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 중반 수준임을 감안하면,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인상률 범위는 자연스럽게 2~5%대로 수렴된다.

    현재 적용 중인 최저임금은 시간급 1만320원이다. 올해보다 290원(2.9%) 오른 수준으로, 주 40시간 기준 월 환산액은 215만6880원이다. 

    전문가들의 전망대로라면 내년 최저임금은 1만530원에서 1만840원 사이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최임위 초반 노사 간 요구안의 격차는 크겠지만, 결국 1만500원~1만1000원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오히려 일자리 뺏는다"

    전문가들이 신중론을 펴는 배경에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자영업 생태계와 고용시장의 현실이 자리한다. 재작년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는 1995년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올해 3월 기준 자영업자 실업급여 수급자는 1794명으로 전년 대비 15.5% 급증했고, 같은 기간 지급액도 51억9800만원으로 19.1% 늘었다.

    김기승 교수는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들이 문 닫는 상황에서 과도한 인상은 최저임금 근무자들의 생계를 뺏는 역설적인 상황이 된다"며 "특히 지금처럼 반도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업종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급격한 인상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결 역시 물가를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주장"이라고 덧붙여 노사 양쪽 극단의 요구 모두에 선을 그었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고용 자체를 줄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최근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무인화 바람과 아르바이트 축소 현상이 맞물린 상황에서 급격한 임금 인상은 사회초년생을 비롯한 저숙련 노동자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진영 교수는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하면 오히려 취업시장이 침체되는 등 노동시장에 왜곡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38년간 법정시한 지킨 건 9번뿐 … "파행의 구조화"

    이러한 전문가들의 균형 잡힌 시각과 달리 실제 최저임금 협상 테이블의 풍경은 매년 극한 대립의 반복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6·3 지방선거 다음 날인 4일 제3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심의를 본격화할 예정이지만, 노사 양측이 최초 요구안을 제시하는 순간부터 진흙탕 싸움은 예정된 수순이나 다름없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최저임금위는 고용노동부 장관으로부터 심의 요청을 받은 뒤 90일 이내에 최저임금안을 의결해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된 이후 38년 동안 법정 심의 시한이 지켜진 것은 겨우 9차례에 불과하다. 명백한 법률 위반이 매년 되풀이되면서 노사 양측과 정부 모두가 사실상 묵인하는 관행으로 굳어진 셈이다. 

    최저임금 제도 시행 이후 38번의 결정 과정에서 노·사·공 만장일치로 합의가 이뤄진 경우는 단 7차례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은 단 한 번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표결로 결정하는데, 노사 위원 간 타협의 여지가 없어 실제로는 공익위원이 제시한 최저임금이 채택돼 정부가 정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있다.  

    지난 2년간은 '심의촉진 구간'을 둘러싼 파행이 반복됐다. 지난해 민주노총 노동자위원은 촉진 구간에 반발해 회의장에서 퇴장했고, 2023년에는 사용자위원 전원이 표결 직전 퇴장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매년 반복되는 노사 간 극한 대립과 법정시한 초과, 공익위원 중심의 표결 구조 등은 제도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심의기구의 위상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계 '1만3000원' vs 경영계 '동결' … "둘 다 현실 외면"

    올해 노사 양측의 최초 요구안은 예년보다 격차가 더 벌어질 전망이다. 

    노동계는 최근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에서 비롯된 대기업과 저임금 노동자 간 소득 격차를 근거로 최대 26.6% 오른 1만3000원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경영계는 내수 침체와 폐업 증가를 이유로 동결을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전문가들은 양측 모두 현실과 동떨어진 요구라고 입을 모은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 노조의 억대 성과급 요구와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형 임금 인상 논쟁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보여준다"면서도 "대기업 노동자의 억대 성과급 요구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근거가 될 순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경기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선 최저임금도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노사 양측이 윽박지르기식으로 과도한 요구안을 내기보단 최소한 물가 수준을 기준으로,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