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너사, 영세 선재가공업체들 "협력사서 하청업체 전락할까 두렵다""특수강 선재는 중기업종…현대 같은 대기업이 뛰어든다니 정말 답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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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거는 만석꾼이 한 석 더 가지려고 몸부림치는 것 밖에 안됩니다"

    "대기업들이 골목상권 죽인다는게 지금 딱 이상황 아니겠어요"

    동부특수강을 손에 넣고자 현대제철, 세아홀딩스, 동일산업 등이 치열한 인수전을 벌이고 있다. 오는 23일 본입찰, 24일 우선협상대상자 통보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특수강산업과 관련된 대다수 영세업체들은 혹여나 동부특수강에 현대제철의 깃발이 꼽힐까 불안에 떨고 있다.

    파스너 업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세아특수강, 동부특수강 등로부터 공급받은 냉간압조용 선재(CHQ Wire)를 볼트, 너트로 가공해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지금도 먹고 살기 빠듯한데, 동부특수강이 현대제철로 넘어간다면 특수강산업 생태계는 완전히 무너지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원재료 선택도, 가격 결정도 못하는 파스너업체

    현대제철이 동부특수강을 품에 안을 경우, 파스너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원재료 선택권은 물론 가격결정권까지 잃게된다는 점이다.

    자동차 하나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철강재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차체에 쓰이는 '강판'과 샤프트를 비롯해 어느정도 크기가 있는 부품 제조에 쓰이는 '특수강 봉강' 그리고 너트와 볼트와 같이 작은 부품을 만드는데 투입되는 '특수강 선재'가 그것이다.

    강판의 경우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시장에서 경합을 벌이고 있고, 특수강 봉강의 경우 현재 세아베스틸이 시장을 독보적으로 점령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제철이 오는 2016년 2월부터  특수강 봉강 60만t, 선재 40만t 등 연산 100만t의 특수강공장을 가동함에 따라 향후 세아베스틸과 현대제철 두 업체가 시장을 양분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특수강선재 시장이다. 현재 특수강선재 시장은 세아특수강이 약 40%, 동부특수강이 약 20%대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파스너사들은 완성된 볼트와 너트를 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 주로 현대차그룹으로 납품하고 있지만, 이와 무관히 세아특수강 제품이든 동부특수강 제품이든 원재료 선택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가격상황, 품질 등 원하는 조건에 맞추 구매하면 되는 것이다.


  • 하지만 동부특수강의 자리를 현대제철이 대신하게 될 경우 파스너사들은 '현대제철과 현대·기아차 사이', '현대제철과 현대모비스 사이'라는 아찔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파스너사는 물론 업계에서도 '현대제철에서 선재를 만들고, 그 선재를 현대제철이 인수한 동부특수강이 가공을 하고,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볼트·너트 만을 현대·기아차나 현대모비스 가 받아 줄 것'이라는 상황을 예측하고 있다.

    파스너업체에 근무하는 한 임원은 "현대차 눈치 때문에라도 현대제철 제품만을 써야되는 상황이 오지 않겠습니까?"라며 하소연했다. 이어 그는 "지금은 명목적으로라도 우리는 현대차의 협력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입도 뻥긋 못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하는건 시간문제다"라고 말했다.

    원재료를 재량껏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결국엔 가격결정권까지 현대차그룹이 움켜쥐게 되어 숨조차 쉬기 힘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 것이다.

    반대로 세아특수강이 동부특수강을 인수해 특수강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공룡이 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없냐는 질문에 "물론 그런 상황도 달갑지는 않다. 그러나 동부특수강이 매각되는 것은 바뀔 수 없는 사실이고 이왕 매각이 된다면 동일산업이나 세아특수강으로 넘어가는 것이 좀 더 낫다는 것이다"고 답했다.

    또 그는 "동부특수강이 세아특수강에 넘어가더라도 꼭 세아특수강 제품을 써야할 이유는 없다"며 "특수강산업이라는 것이 고도의 기술을 요하지 않고, 시장진입장벽도 다른 철강업종에 비해 낮아 세아가 쉽사리 가격을 쥐락펴락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덧붙였다.    

    ◇진정 '상생'하자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영세업체들

    현대제철의 특수강 시장 진출로 속앓이를 하는 것은 파스너업체들만이 아니다. 세아특수강, 동부특수강 외에 선재를 가공하고 있는 영세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동부특수강이 세아에 넘어가더라도 선재를 납품받거나, 가공하는 물량에 큰 지장은 없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반대로 현대제철에 인수되어, 특수강시장이 현대차그룹의 손아귀에 들어갈 경우 선재를 납품받는데도, 또 물량을 생산해내는데도 커다란 제약이 따를 것으로 우려를 표했다.

    선재가공업체의 한 임원은 "이 바닥은 누구나 인정하는 중소기업업종"이라며 "시장이 크지도 않은데다 기술력이 집약된 분야도 아닌데, 현대차같은 대기업이 뛰어든다니 정말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현대차가 매일 '상생(相生)'을 외치든데, 정말 '상생'을 원한다면 이 바닥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살 좀 찌게 해줘야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 ◇유통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

    특수강 유통업계의 경우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의견을 보였다. 특수강 매출의 절반 이상이 자동차부품에서 발생하지만, 이와 관계없이 가전사에 물량을 공급하는 유통업체들은 비교적 현대차그룹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모습이다.

    세아특수강과 동부특수강으로부터 물건을 받고 있는 유통업자는 "개인적으로는 현대제철이 동부특수강을 인수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며 "세아특수강과 동부특수강의 경우 영업망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세아특수강으로 넘어갈 경우 담당자 이동문제 있어서 동부특수강 영업사원들의 역할이 남아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비슷한 유통망을 두고 있는 만큼, 세아특수강이 동부특수강을 인수 시 동부특수강 영업사원들의 일자리가 보존될 수 있을지가 우려스럽다는 것.

    반면 동부특수강으로부터 물건을 받고 있지 못하고, 세아특수강으로부터만 공급받는 한 유통업자는 "세아특수강이 동부특수강을 가져가는게 더 좋을 것 같다"며 "동부특수강이 세아특수강보다 결제조건이 훨씬 더 까다로워 처음에는 양쪽에서 물건을 들였으나 현재는 세아특수강에서 밖에 물건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고, 동부에서 나온 사람이 퇴사해 유통업계로 들어와 특정 제품을 단독으로 공급받는다든가 하는 폐해들도 없잖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아특수강과 동부특수강이 취급하는 품목은 대부분 같으나, 회사마다 제품의 강도를 비롯한 조금씩의 차이가 있다"며 "세아특수강이 동부특수강을 인수한다면 더 다양한 제품들을 납품받을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