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아우성에도 조사만 1년

김영란법 3·5·10 손질 언제하나… 소비감소 뚜렷한데 계속 검토만

부처별 실태조사 시기·방법 제각각… 컨트롤타워 부재 지적도
농·축·수산업계 "예외 인정해야"… 정치권도 개정 필요성 제기

임정환 기자 프로필보기 || 최종편집 2017.02.17 12: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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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연합뉴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자는 의견이 팽배하다. 하지만 컨트롤타워 부재 속에 부처별 움직임은 엇박자를 내고 있다.

식사·선물·경조사비 기준액 '3만·5만·10만원' 손질은 마냥 하세월이다.

17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소비를 북돋우고자 청탁금지법 조기 정착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청탁금지법 영향을 크게 받는 음식점업과 농·축·수산물 유통업, 화훼업 등을 중심으로 지원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일단 큰 틀에서 청탁금지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법 시행령에서 정한 가액기준은 음식물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으로,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 소비를 위축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지난해 11월 한국행정연구원 설문조사에서는 식품접객업과 유통업, 농·축·수산업 등의 업종에서 사업체 40.5%가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매출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지난달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청탁금지법을 시행해보니 피해가 너무 크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며 "피해가 발생한다면 이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가액기준을 바꿀 것이냐, 대상업종을 어떻게 할 것이냐 구체적인 논의를 하다 보면 법의 근본취지가 흔들릴 수 있어 쉽게 판단할 일은 아니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정치권도 청탁금지법 개정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3일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청탁금지법은 근본적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농·축·수산업, 화훼업 등 선의의 불이익을 보는 분들의 피해가 최소화하도록 개정작업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야권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도 지난달 8일 경북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영세상인의 어려움이 크다"며 "문제점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농·축·수산물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시행령 개정의 당위성을 찾기 위해 부처별로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업종별 영향 등 실태파악에 나섰다.

문제는 부처마다 조사 시기나 방법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부터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을 통해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농·축·식품분야 판매 동향을 조사하는 중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준비해 1월부터 마트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오는 20일까지 결과를 도출해달라고 연구원에 요청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연구원은 이번 조사 결과를 2014년 이후 자료와 비교해 매출 변화를 분석할 예정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필요하면 추가 조사를 벌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 계획은 없다"며 "조사 결과를 최대한 빨리 내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청도 지난달 말부터 외부 전문조사기관을 통해 소상공인 업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있다. 중기청은 이달 말이나 늦어도 다음 달 초까지 조사 결과를 도출한다는 방침이다.

중기청도 나중에 추가 조사 가능성은 열어두면서도 되도록 결과 도출을 서두르는 분위기다.

반면 해양수산부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의뢰해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수산물 판매 동향 및 수산업에 미치는 영향 최소화를 위한 대책 마련'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해수부는 3월 또는 4월에 중간 결과를 내달라고 요청했으나 기본적으로 오는 12월까지 연구용역을 수행할 계획이다. 추석 명절까지 지내보고서 법 시행에 따른 영향을 분석하겠다는 태도다.

해수부 관계자는 "단기간 분석도 가능하지만, 정부 차원의 판단 근거 자료를 확보하려면 조사 기간을 길게 두고 설과 추석, 두 명절은 조사하는 등 내용을 충실히 할 필요가 있다"며 "전반적인 불황의 여파로 소비가 감소한 것인지, 김영란법 시행의 영향인지를 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영란법 관련 농축산물 및 화훼류 농민 반대 집회.ⓒ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정부 조사가 전시행정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조사가 비용·인력의 한계로 표본조사에 그치는 상황에서 조사 기간만 길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다. 같은 맥락에서 설과 추석 대목 시장을 굳이 구분해 조사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다 보니 조사에 일관성이 없다는 견해도 나온다.

중기청 관계자는 "부처별 실태조사 기간을 맞추자는 얘기는 들은 바가 없다"면서 "관련 부처가 나누어져 있으므로 국무조정실에서 각 기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각 부처에서 중구난방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가운데 업종별 현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한우협회 관계자는 "일반 조사든, 연구용역이든 중요치 않다. 영농조합이나 정육점 어디에 물어도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매출 감소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뼈 등 부산물을 넣지 않고는 5만원에 선물세트를 만들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어 "한우는 명절 선물 선호도 조사에서 거의 1위를 해왔다. 농가에서는 30개월쯤 소를 키워 명절에 맞춰 출하해왔다"며 "선물 가액기준을 10만원으로 올려도 수입품과 경쟁이 안 될 판에 굳이 연구용역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는건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협회 관계자는 "한우는 청탁금지법에서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며 "자유무역협정(FTA) 협정의 돌파구로 고급육 생산을 독려하더니 이제는 선물 가액기준을 터무니없게 설정해 한우의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됐다"고 비판했다.

설상가상 한우농가는 설 명절 이후 구제역마저 발생해 소비가 한층 더 위축되는 등 된소리를 맞고 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뚜렷한 소비 감소세를 보이는 것은 과일과 인삼·버섯 등 특산품, 가공식품도 마찬가지다.

농식품부가 지난 설에 대형할인점을 중심으로 농식품 소비변화를 자체 조사한 결과를 보면 농식품 선물세트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8%쯤 감소했다. 특히 신선식품 선물세트는 22.1%나 매출이 줄었다. 축산이 마이너스 24.5%, 과일 마이너스 20.2%, 인삼 등 특산품 마이너스 23%를 각각 보였다.

가격대별로는 5만원 이하 선물세트가 3% 감소한 데 비해 5만원 초과 선물세트는 22.9% 감소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과거에도 경기 불황은 있었지만, 명절 선물세트 매출이 감소한 것은 이번 설이 이례적이다. 유통업계가 말하는 체감 감소율은 30%에 가깝다"며 "5만원 이상 선물세트의 매출 감소가 뚜렷해 전반적인 소비심리 위축 외에 청탁금지법의 영향이 분명히 작용했다는 게 업계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수협중앙회도 되도록 빨리 식사와 선물에 대한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협 관계자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지난해 말까지 수협에서 판매한 수산물 선물세트 매출액이 24.4%쯤 감소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수산물은 전반적인 어획량 감소 추세로 가격이 지속해서 오르는 상황인 만큼 법으로 제한을 두면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서 "공개적으로 주고받는 수산물 선물이 뇌물 등의 용도로 사용된다고 보는 것은 무리인 만큼 예외를 인정하거나 현행보다 가액기준을 큰 폭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굴비선물세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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