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레임덕 가속화시킨 '신구 갈등'·'경영난'·첨예한 이해관계 얽힌 보건의약 정책
  • ▲ 약사회 조찬휘 회장(맨 오른쪽), 한의사협회 김필건 회장(가운데), 의협 추무진 회장(맨 왼쪽)ⓒ연합뉴스
    ▲ 약사회 조찬휘 회장(맨 오른쪽), 한의사협회 김필건 회장(가운데), 의협 추무진 회장(맨 왼쪽)ⓒ연합뉴스


    주요 보건의약단체 수장들이 잇따라 퇴진 압박을 받으며 위기를 맞고 있다.


    약사 대표단체인 대한약사회의 조찬휘 회장은 회원 동의 없이 신축 약사회관의 일부 운영권을 1억원에 매매했다는 이유로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가계약금 1억원을 1년 6개월 동안 갖고 있다 회관 신축이 어려워지자 L씨에게 되돌려줬다고도 해명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등 약사 단체들은 서초동 대한약사회관에서 조찬휘 대한약사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노숙투쟁을 나흘째 이어가고 있다. 일부 약사 회원들은 조 회장의 각종 비위 의혹을 고발, 경찰 수사도 시작됐다. 대한약사회는 오는 18일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고 조찬휘 대한약사회장의 거취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한의사 대표단체인 대한한의사협회 김필건 회장도 회계 비리 의혹과 정책 책임론에 따른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앞서 김필건 회장은 건강보험급여 침 진료비가 하락된 데 따른 책임을 지고 회장직을 스스로 내려놓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번복한 상황.


    서울·경기·인천 등 지역 한의사회는 지난 7일 연대성명을 통해 "한의협 김필건 회장 병원비가 협회비로 사용되고 일반 회계 부적정 지출 정황이 드러났다"면서 "김 회장은 구체적인 자진사퇴 시기와 방법을 밝히라"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의사 대표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 추무진 회장도 퇴진 요구를 받고 있다. 병원에 따라 최대 10만원까지 받던 의료기관 진단서 상한액을 1만원으로 정한 보건복지부의 '의료기관 수수료 항목 및 금액에 관한 기준' 고시가 발단이 됐다.


    전국의사총연합 등 의사단체는 지난 12일 용산구 의협 회관을 찾아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 등 집행부가 책임을 지고 즉각 총사퇴하라"고 항의했다.


    ◆조기 레임덕 '가속화'…치열해진 개원가, 개혁 요구하는 신구 '갈등'

    주요 6개 보건의약계 단체 중 절반에 달하는 단체 집행부가 퇴진 압박을 받는 것은 이례적이다. 의협 추무진 회장 임기는 내년 4월, 약사회 조찬휘 회장은 내년 8월까지다. 한의사협회 김필건 회장은 2019년 3월까지로 임기 만료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


    과거 간선제를 통해 협회장을 뽑던 보건의약계에는 최근 몇년간 직선제 바람이 불었다. 협회 개혁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세 단체장들의 공통점은 직선제를 통해 재선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특히 추무진 회장과 김필건 회장은 각 단체 직선제 도입 이후 재선에 성공한 첫 사례로 꼽힌다.
     
    이들 재선 협회장의 이례적인 조기 레임덕 원인은 신구(新舊) 갈등, 치열해진 개원가 상황 두 가지 키워드로 분석된다.

    보건의료인 숫자가 늘어나면서 개원가 수익성이 악화되자 의료인들의 정책적인 요구도가 높아지고, 젊은 회원들을 중심으로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

    시대 정신이 변화하면서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협회에 대한 회원들의 요구도 달라지고, 회원들이 그만큼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초선보다 재선 협회장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의료단체 관계자는 "협회비는 '눈먼 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구태했던 곳이 의약 단체 협회였다"면서 "젊은 구성원들이 많아지면서 과거와 달리 여느 협회를 막론하고 주인의식과 관리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의료단체 관계자는 "재임 회장에 대해 숙원했던 의료 정책들을 연속성 있게 이끌어갈 것이라는 기대심이 더 크게 나타나기 마련"이라면서 "개원가 상황이 팍팍한 만큼 조급한 마음이 겹쳐져 더 실망을 크게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의 의료 정책 추진 방식이 협회 내부 갈등을 증폭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단체 관계자는 "경영 상황이 악화되면서 정책에 대한 민감도가 과거보다 훨씬 예민해졌다"면서 "보건의료 정책은 의약단체들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데, 정부는 직능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기는 커녕 불필요한 비밀주의로 논의 과정에서 회원들의 억측,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일부 안티 세력들이 틈만 나면 집행부를 흔들기에 나선다"면서 "'깜깜이 식'정책 논의 과정에서 안티들은 집행부를 호도하고, 이는 회원들 민심 동요로 이어지는 등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