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가해자 대부분 상급자…“인사 상 불이익 때문 참는다”남성 중심의 조직문화, 여성 임원 배출로 양성평등 되찾아야
  • ▲ 금융산업 분야 2차 정규직 노동실태.ⓒ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 금융산업 분야 2차 정규직 노동실태.ⓒ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최근 정치권, 문화예술계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미투’ 바람이 불고 있지만 은행권은 조용하다.

    하지만 속내를 들쳐보면 이미 상당수 여직원들은 성희롱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금융노조가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와 함께 조사한 2차 정규직 실태조사에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설문응답자 3297명 중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대답한 여직원은 16.3%에 달했다. 이중 성희롱 및 성추행의 가해자는 대부분 상급자로 비율이 70%나 달했다.

    여직원들은 수치심을 느꼈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성폭력 경험자 89.2%가 주변의 아는 사람에게 하소연하는 수준 내에서 참고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각 은행마다 노동조합 또는 고충처리위원회 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이 성폭력 피해를 입었음에도 참고 넘긴 가장 큰 이유는 ‘신고해봤자 해결될 것이 없어서(65.7%)’란 대답이 가장 많았다.

    고충처리위원회 등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것도 있지만 회사 측의 미온적인 분위기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또 ‘인사 상 불이익을 받을까봐’ 참고 넘긴 비율도 19.7%로 나타나고 있어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2차 정규직, 즉 무기계약직군은 정규직 전환을 위해선 상급자의 평가 점수가 절대적이다. 전환할 수 있는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이 같은 성범죄 사각지대를 야기한다.

    정규직 여직원도 승진을 위해선 참기 마련이다.

    실제 금융권은 여성 직원 비율이 높지만 임원으로 승진하는 숫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맡을 수 있는 업무도 제한적이고 해당 부서에서 실력을 인정받기도 힘들다는 얘기다.

    최근 은행권에서 여성 임원이 속속 배출되고 있지만 사회 분위기에 맞춰 임원을 할당하는 정도다.

    보험, 카드, 증권사 등 2금융권 역시 여직원들에게 야박하다.

    전체 직원 중 여성들이 부서장 자리를 꿰찬 비율은 6.9%에 불과하다. 특히 이사회에 참여해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등기임원은 지난해에 이어 단 한명도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성차별과 위계질서가 명확한 조직문화는 성희롱과 성폭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금융회사들이 성희롱 관련 규정이 잘 마련된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속내는 금융회사의 대외신인도 추락을 우려해 성희롱 사건 발생 시 숨기기에 급급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사건이 은폐된 경우 처벌받지 않은 가해자는 또 다른 가해자를 낳기 마련이고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조직 내에서 찍혀 인사 상 불이익을 감수하는 이중 고통이 강요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금융노조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해 모바일 인식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현재 조사기관을 대상으로 사업자 선정 중이며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모바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6월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