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수사, 잦은 압수수색 '정신적 감옥' 상태기업 총수, 이사회 의장 구속 사례 찾기 힘들어경영진 부재 장기화시 사업 대응력 약화 우려도노조 문제, 중장기적 경영 발목 우려… 글로벌 경쟁력 하락
  • 삼성이 지난 4년간 이어진 재판리스크로 '경영 시계'는 오리무중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아직 검찰 기소가 이뤄지지 않은 사안까지 감안하면 단기간에 경영 불확실성을 걷어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삼성 내부도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다.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와 잦은 압수수색, 주요 임원진들의 실형을 바라보는 직원들은 사실상 정신적 감옥에 갇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삼성의 경영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삼성이 올해 내놓은 통근 투자를 비롯해 준법경영 강화 방안 마련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에 이어 2인자 격인 이상훈 이사회 의장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의 설립·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구속되자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여기에 삼성 전·현직 임직원 32명 가운데 26명이 유죄 판결을 받으며 경영 활동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당초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 관련된 재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의혹 수사과정서 발견한 문건을 통해 수사가 이뤄지며 '별건수사' 및 '위법성'에 논란이 있었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은 내년 경영일정을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주요 경영진들의 부재가 장기화될 경우 대응력은 저하될 수 밖에 없다. 한 기업의 총수와 이사회 의장이 모두 구속된 사례나, 같은 시기에 재판을 받은 사례는 찾을 수 없는 만큼 사실상 초비상 상태나 다름없다. 

    삼성전자는 당장 사내 이사가 석 달 만에 5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0월 3년 임기로 등기이사 재선임을 포기한 바 있으며 '삼성 2인자'로 꼽히는 이 의장까지 영어의 몸이 되면서 공백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통상 12월 첫째 주 이뤄지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 임원 인사가 해를 넘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번 사법리스크로 삼성에 놓인 굵직한 현안들이 추진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후 위기 극복과 함께 '정경유착'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털기 위해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었다. 

    삼성은 지난 8월 대법원판결 직후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송구스럽다"며 "앞으로 과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사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이 부회장 재판과 관련한 첫 공식 입장으로 '정경유착'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털고 일신하려는 각오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후 이 부회장은 각종 현장경영 행보와 대규모 투자 발표 등을 통해 위기 극복에 박차를 가했다. 시스템반도체 133조 투자에 이어 디스플레이 시설 개편 등 시설에 12조원을 투입키로 하는 등 잇따라 통큰 투자 계획을 발표한바 있다. 

    이 같은 투자는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도 있지만 우리나라 제조업의 혁신을 이끌고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부 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부분도 크다.    

    지난 4월 이재용 부회장은 화성캠퍼스에서 열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출하식에서 "정부의 종합 반도체 강국 비전 제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4차 산업혁명시대에서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 아닌 거대한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엔진으로 우리 미래를 열어가는데 꼭 필요한 동력"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영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이 같은 투자 실행을 비롯한 미래 성장동력 발굴 행보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향후 노조 이슈도 경영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지난 18일 노조 문제와 관련 공식 입장문을 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노사 문제로 인해 많은 분들께 걱정과 실망을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삼성의 80년 넘게 이어져온 '무노조 경영' 포기 선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경영에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삼성전자서비스, 에버랜드에 이어 지난 해에는 삼성전자에 3개의 개별 노조가 설립됐고 지난 11월에는 한국노총 금속노련 산하 삼성전자 노조까지 출범했다. 우리나라 노조의 경우 강성 일변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조 이슈가 지속적으로 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재계 시각이다. 

    또한 미·중 무역전쟁, 일본과의 통상마찰 등 대외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아지고 있는 점도 삼성전자의 대응전략 약화를 우려하게 한다.

    미국, 중국 등 경쟁국들이 자국 기업 보호 및 성장에 맞추고 있는 만큼 삼성의 대응이 늦어질 경우 추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삼성이 전면적인 쇄신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이 계열사 전체 사장단 회의를 열고 준법경영 강화를 위한 고강도 대책을 논의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4년 동안 재판에 시달리면서 직원들의 피로감도 상당할 것"이라며 "의사결정 늦춰지면 사업 차질이 불가피해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