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이어 조세硏도 증세 논의 가세재정전문가 "생산성 고려해 지출해야"靑 "현실적으로 어려워"…'뼈 깎는 지출 다이어트' 강조
  • ▲ 세금.ⓒ연합뉴스
    ▲ 세금.ⓒ연합뉴스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로 재정지출이 증가하면서 증세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견해다. 대신 불요불급한 지출에서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태도다. 조세전문가들은 "세금을 더 걷느냐 마느냐보다 세금을 어디에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문재인 정부가 혈세 운용에 있어 낙제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정부는 재정을 적극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전시 재정을 편성한다는 각오로 재정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며 "불을 끌때도 조기에, 초기에 충분한 물을 부어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3차 추가경정예산(추경) 규모가 33조~34조원에 달하고 대부분 적자국채를 발행해 충당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최근 국책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증세론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20일 '2020년 상반기 경제전망'을 내놨다. 이날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증세와 관련해 "당장은 경기가 안좋아 어렵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복지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본다"며 "국가채무비율이 상당히 빠르게 올라가고 있어 그에 준해 재정수입도 확대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증세가 필요하다.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26일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증세론에 가세했다. 김유찬 조세연 원장은 이날 재정포럼 5월호에 실은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와 재정 건전성 리스크' 기고에서 "현재와 같은 재난 시기에는 증세를 미루지 말고 적절한 규모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 원장은 "증세는 어려운 시기 국민이 고통을 나눈다는 의미가 있다"면서 "재정지출과 같은 규모 또는 재정지출보다 작은 규모로 증세하는 경우 모두 긍정적인 경제활성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증세 시기는 지출 확대 초기, 방법은 소득상위계층에서 부담한 세금을 소득하위계층에 이전지출을 제공하거나 정부의 투자·소비에 사용하면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법론에선 구체적인 세목을 언급하진 않았으나 내용상 법인세나 부동산세 등 소위 부자 증세를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 ▲ 추경.ⓒ연합뉴스
    ▲ 추경.ⓒ연합뉴스

    일각에선 증세 여부보다 혈세를 어떻게 쓸 건지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광 한국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재정수지가 나빠 적자국채를 발행하든, 흑자 예산을 편성하든 중요한 것은 조달한 재원을 어디에 쓰느냐"라며 "생산적인 곳에 (혈세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입·세출이 맞게 균형예산을 편성해도 비생산적인 곳에 세금을 낭비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최 명예교수는 한국조세연구원장과 국회예산정책처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을 지낸 대표적인 재정전문가다. 최 명예교수는 "가령 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재정을 투입하면 당장은 아니어도 나중에 수익이 발생하고 이는 세수로 들어온다"면서 "지금은(현 정부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비생산적인 곳에 세금을 투입한다. 심지어 세금을 쏟아부어 생산성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국가가 백수십만 원씩 돈을 쥐여주면 누가 힘들게 일하려 하겠느냐"고 퍼주기식 재정지출을 꼬집었다.

    최 명예교수는 증세론에 대해선 일단 긍정적이다. 그는 "지금 같은 (코로나19 범유행) 상황에선 증세를 가능한 빨리해야 한다"면서 "문제는 어느 세목을 더 거둬들일 건지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명예교수는 "현 정부는 부자들 잡겠다고 법인세 인상 등을 추진했는데 구라파(유럽) 복지국가들은 부가가치세가 우리의 거의 2배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18.5%쯤일 거다"라며 "국가정책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세입·세출 전체를 보고 (균형감각 있게) 어떤 세목을 매년 몇 퍼센트씩 올리겠다고 국민에게 정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직설했다. 그는 "(재정당국은) 추경을 할 때마다 반드시 재원대책을 같이 발표하면서 세출과 적자국채 발행 규모 등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면서 "(현 정부가) 추경을 편성할 때마다 과연 그렇게 했는지 의문이다"고 아쉬워했다.

    최 명예교수는 재정건정성과 관련해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여권에서) 국가채무비율은 OECD와 비교해 얼마 되지 않는다며 적자국채를 더 발행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우리는) OECD와 직접 비교가 안 된다"면서 "공공기관의 '숨은 빚'까지 고려하면 우리의 국가채무비율은 40%대가 아니라 80%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직 재정당국이 3차 추경액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30조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더하면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4.4%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조세연 보고서에서 김 원장은 "국가채무비율 상승이 한국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고 평가했지만, 최 명예교수는 숨은 빚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일침을 가한 셈이다.

  • ▲ 청와대.ⓒ연합뉴스
    ▲ 청와대.ⓒ연합뉴스

    청와대는 일단 증세론에 대해 거리를 뒀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6일 기자들을 만나 "25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증세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며 "(증세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재원마련 방안과 관련해 "문 대통령은 정부의 '뼈를 깎는 지출 구조조정'을 여러 번 강조했다"면서 "구체적인 방안은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설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강력한 지출 다이어트를 강조하면서 경제부처에선 재정 당국의 예산 가위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3차 추경과 관련해 기획재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면서 경제부처에서도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지난번 2차 추경을 짜면서 서해선 복선전철 등 철도분야 4개 사업에서 5600억원을 감액한 국토교통부는 기대반 우려반 하는 눈치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추경은 사업예산을 다루는 본예산과 달리 전적으로 재정당국의 권한"이라며 "기재부가 작업중인 걸로 알지만 어느 부분을 얼마나 건들지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 통보를 기다릴 뿐"이라고 밝혔다. 국토부 철도분야의 한 관계자는 "지난번(2차 추경)엔 현장 상황과 올해 불용예상분을 감액했지만 더는 뺄 예산이 없다"면서 "건설현장 노동자중 어렵게 사는 분들이 많은데 더 예산을 빼면 현장이 멈춰 서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큰 틀에서 당장 배고픈 게 중하냐, 공사하는 게 중요하냐며 (기재부가) 예산을 추가로 감액한다면 지역 민원 등을 심사숙고해 (뺄 여력이 있는지)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