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안전성·유효성 문제 ‘심각’ VS 한의계 “의료독점 위한 떼쓰기” 복지부, 7월 건정심 의결로 ‘번복 불가’… 시범사업은 ‘일단 추진’ 청와대-한의협 야합 논란 재점화, ‘문케어 받고 첩약 급여 추진’ 의혹
  • ▲ 지난달 여의도 공원에서 열린 전국의사 총파업 궐기대회에서 첩약급여화를 반대하는 의사들의 피켓시위가 진행됐다. ⓒ박성원 기자
    ▲ 지난달 여의도 공원에서 열린 전국의사 총파업 궐기대회에서 첩약급여화를 반대하는 의사들의 피켓시위가 진행됐다. ⓒ박성원 기자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2020년 의사 파업 사태’로 정점을 찍었다. ‘파업 종료’와 ‘원점 재검토’가 담긴 합의서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뇌관은 남아있다. 코로나 시국 속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잠시 쉬어갈 뿐이다.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논란의 중심인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첩약급여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육성 등 내용을 분석하고 향후 방향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첩약 급여화’는 한의계의 숙원과제이자 의료계가 막아야 할 악(惡)이다.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관련 정책이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구조를 심화시켰다면 이 문제는 의정갈등을 넘어 직역 갈등까지 확장된다. 

    한의원에서 처방받는 소위 ‘한약’을 건강보험 항목에 진입시켜 보장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내달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이 시행되는데 뇌혈관질환 후유증, 안면신경마비, 월경통 등 3개 질환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2023년 9월까지 연 500억씩 3년간 총 1500억원의 재정이 투입된다. 

    이미 지난 7월 보건의료정책 최고 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서 안건이 통과된 상황으로 정부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수가는 진찰비 포함 총 10만8760원~15만880원 수준(10일분 20첩 기준)이며 환자 1인당 연간 최대 10일까지 본인부담률 50%가 적용된다.

    의료계는 첩약 급여화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첩약과학화 촉구 범의약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까지 구성했다. 여기에는 대한약사회, 대한약학회 등 약계 단체도 참여하면서 의사는 물론 약사들까지 반대하고 있다. 

    한의계는 현 상황에서 건정심 결과를 뒤집을 수 없다고 반박에 나섰다. 의료계와 약계의 주장을 ‘억지와 생떼’로 규정했다. 대국민 요구에 의해 관련 사안이 논의됐고 충분한 절차를 밟아 최종 시범사업이 결정된 것으로 번복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결국 갈등의 불씨는 첩약 급여화로 옮겨붙었고 내달 예정된 시범사업 추진 과정에서 논란이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좀체 조율점이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 쟁점은 첩약 ‘비(非)과학’ 논란  

    의약계가 첩약 급여화를 반대하는 주요 이유는 안정성과 유효성이 확보되지 않은 비과학적 영역에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의계는 이미 검증이 완료된 부분이라고 맞서고 있다. 

    먼저 범의약계 비대위에 따르면, 한약제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를 받고 GMP(의약품 제조 품질 관리 기준) 시설에서 생산돼 안전성 검증이 됐다. 하지만 부속시설인 원외 탕전실에서 조제되는 첩약은 조제 과정에서의 적절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처방의 변경이나 수정이 즉시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이며 표준화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간 의대 정원 문제와 관련해서는 범의료계 4대악 저지투쟁 특별위원회(범투위)가 주축이 돼 최대집 의협회장이 선봉에 나섰다면, 첩약 급여화 문제는 범대위가 중심이 된다. 이 과정에서 이왕준 대한병원협회 국제위원장(명지병원 이사장)이 총대를 메고 움직이고 있다.

    이왕준 위원장은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첩약의 원재료관리에서부터 조제 후 과정까지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건강보험의 비과학적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2000년 의약분업 사태 후 최초로 의약계가 일치된 목소리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결코 직역간 다툼이 아니다. 한방의 과학화와 의료일원화에 역행해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는 발단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대한한방병원협회·대한한의학회 등 단체를 결집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양의계’가 의료를 독점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안전성은 이미 검증됐다는 주장이다. 

    한의계는 GMP 회사에서 생산되고 GMP 시설 아닌 약국에서 조합되는 양약과 식약처가 관리하는 hGMP(한약재 GMP)에서 원료 한약재가 생산되고 한의원에서 조제되는 한약이 안전상 큰 차이가 없다는 판단이다. 

    최혁용 한의협회장은 “한약재를 이용한 첩약도 각종 통계와 논문들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충분히 검증돼 있으며 향후 급여화를 통해 더 폭넓게 증명해 나갈 수 있다. 건정심 의결 역시 이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첩약 건강보험 급여화는 한의약 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고 경제적인 부담을 완화시켜준다는 차원에서 진작에 추진됐어야 하는 정책이다. 시범사업의 세부적인 설계와 실행은 물론 첩약 건강보험 적용을 완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첩약과 관련 원초적 논쟁인 ‘과학적 검증’을 두고 의약계와 한의계는 제자리걸음을 걷는 중이다. 

    ◆ 청와대는 한의사 편? 야합 의혹 구설수 

    첩약 급여화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됐던 청와대-한의협 간 밀실야합 논란이 재조명되고 있다. 

    최혁용 한의협회장은 지난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정책특보로 활동했다. 현 정부 정책에 친화적 인물로 문재인케어 추진을 찬성하는 대신 첩약 급여화를 얻어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순례(전 미래통합당)의원이 의혹을 제기한 바 있는데 시범사업을 앞둔 시점,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김순례 의원은 당시 국감장에서 최혁용 회장이 인천지구 회원들에게 발언했던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서 최 회장은 “의협은 문재인 케어를 반대하지만 청와대에 가서 한의협은 적극적으로 지지하겠다. 대신에 첩약 급여화를 해달라고 거래했고 청와대가 이를 받아들여서 첩약급여화가 사실상 결정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이하 한특위)는 “정부가 추진 중인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이 청와대와 한의사협회의 야합으로 인한 부당하고 불공정한 거래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만큼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은 즉각 폐기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부당거래를 약속하고 추진을 지시한 청와대 관계자 및 복지부 공무원 엄중 문책 및 사법처리를 요청했다. 

    한의계는 정상적 절차를 밟아 첩약 급여화가 추진됐으니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한의협 관계자는 “8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한약협의체를 운영했고 건정심 소위원회 역시 2번이나 개최해 다양한 쟁점들을 검토했다. 건정심 본회의에서도 의약계 일부를 제외하고 찬성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아 시범사업이 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 건정심 되돌리기?… 政 “번복 불가, 10월 시범사업 진행” 

    결국 이 문제는 건정심 의결을 되돌릴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인데, 정부는 번복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의약계가 지속적으로 안전성 및 유효성 문제와 야합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기엔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파악됐다. 

    복지부 측은 “첩약 급여화 논의과정에서 의협, 약사회도 참여해 반대의견을 냈다. 그렇지만 건정심에서는 건강보험 가입자의 의견을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해야 한다고 결정이 됐다”고 설명했다. 

    건정심 의결에 따라 정부는 시범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직 시범사업 참여기관 모집공고 등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지만 10월 내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일 의협과 체결한 의정합의 내용 중 첩약 급여화도 원점 재검토 항목으로 담겨있지만 이는 시범사업 이후 논의할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창준 한의약정책관은 최근 브리핑을 통해 “우선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의정협의체에서 논의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 과정에서 안전성·유효성 등 여러 문제들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가 내달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추진을 예고한 가운데 범대위는 조만간 전문가 공청회를 열어 관련 정책의 부당함을 논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의료계 파업이나 건정심 탈퇴 등 초강수는 다시 등장하지 않았지만 파열음은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