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회장 6회째 추대, 12년 최장수매출 936억→456억, 직원 210명→66명… 임대수익으로 버텨4대그룹 복귀 실낱 기대… 최태원 상의行에 물거품경총 흡수통합론에 '불쾌' "역할도 성격도 달라"
  • ▲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빈소를 찾은 모습ⓒ뉴데일리 DB
    ▲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빈소를 찾은 모습ⓒ뉴데일리 DB
    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의 줄을 바꿔 맨다는 뜻으로 느슨해진 것을 긴장하도록 사회적·정치적으로 개혁한다는 말이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이 고사성어를 강조했다. 혁신을 말할 때 흔히 쓰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이나 제구포신(除舊布新) 아닌 더욱 강한 어조인 이 단어를 택함으로써 근본부터 갈아엎겠다는 허 회장의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경제단체 맏형인 전경련의 올해 행보도 그리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10년째 회장을 맡아온 허 회장이 올해 또다시 2년간 회장을 맡는 것만 봐도 현재의 위상이 얼마나 쪼그라들었는지 알 수 있다. 허 회장은 1977년부터 10년간 회장직을 수행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전경련은 26일 정기총회를 열고 허 회장을 제38대 회장으로 추대한다. 허 회장은 2년 임기인 회장직을 2011년부터 10년째 맡고 있다. 지난해 GS그룹 회장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이 된 만큼 올해는 전경련 회장직도 내려놓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해 고사 끝에 연임을 받아들였다.

    전경련의 위상 추락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시작됐다. 삼성, 현대차, LG, SK 등 4대 그룹이 탈퇴를 선언하면서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매출은 2016년 936억원에서 2018년 456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주수익원인 회원사 회비가 400억원 대에서 100억원 이하로 줄었기 때문이다. 4대 그룹이 내던 회비가 끊긴 탓이다.

    여의도 전경련 빌딩 임대수익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지만 이역시 넉넉치 않다. 입주해 있던 LG 계열, 한화건설 등 주요 기업들이 모두 이사 가면서 공실률이 치솟았다. 부수입원인 컨퍼런스홀 렌트 사업도 부진해 30% 가격 인하 정책을 올해도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210명이 넘었던 직원수도 지난해 말 66명까지 줄었다. 한때 4대 그룹급 처우를 받았지만, 급여삭감·복리후생 폐지에 고급인력들이 대거 이탈했다. 전경련의 연간 입사율은 7.35%에 그친 반면 퇴사율은 10.29% 수준이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한동안 직원 채용도 하지 못하다 2019년부터 매년 공채공고를 내고 있지만 현재 인력 유지도 버거운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 관계자는 "여러 기관과 유관관계에 있는 곳이어서 이직률은 높은 편"이라면서도 "유수한 인재들이 나가는 만큼 또 입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 ▲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당시 미국 순방을 함께 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경제인들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연합뉴스
    ▲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당시 미국 순방을 함께 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경제인들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연합뉴스
    최태원 상의行에 '부글' 통합론에 '발끈'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전경련이 버텨왔던 데에는 떠났던 4대 그룹이 복귀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전국 상공인을 아우르는 대한상의나 노사관계에 주력하는 경총과는 달리 전경련은 재벌이나 대기업 입장을 대변해왔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5대 경제단체 모두 조직구성이나 성격, 지향점이 다르다"며 "전경련은 그 중 대기업의 '규모의 경제'를 주창하는 성향을 띄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 팬데믹과 친환경 산업 트렌드에 발맞춰 재벌기업의 2차 도약이 절실한 현 시점에서 전경련이 재건되기를 희망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전경련의 바람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으로 가면서 물거품이 됐다. 최 회장은 상의 회장을 맡으면서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택진 엔시소프트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등 IT기업인을 부회장단에 합류 시키며 외연 넓히기에 나섰다.

    최 회장의 상의행(行)은 재계에서도 의외로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부친인 고(故) 최종현 회장이 6년간 전경련 회장을 지낸데다, 재벌 총수가 상의 회장을 맡는 일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는 경제단체 회장직은 4대 그룹 총수들이 돌아가며 맡는 것이 관례였지만, 1998년 최종현 회장이 물러난 이후 일절 고사해왔다. 

    최 회장은 전경련 부회장단에서 활동할 당시부터 소위 삼성 위주로 운영되는 전경련에 부정적 인식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경련은 1961년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발족한 단체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 부재로 삼성의 오너 리스크가 장기화될 전망인 가운데 4대 그룹 총수 맏형격인 최 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많이 모아졌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가 대한상의 회장으로 가면서 전경련은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갑자기 터져나온 경총과의 통합론도 불편한 이슈다. 전경련은 이날 허창수 회장 연임을 의결한 이후 갖는 기자회견에서 손경식 경총 회장이 제기한 통합에 대해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통합론은 회장 교체때마다 나오는 단골 이슈지만, 이번처럼 경총의 흡수 통합론이 불거진 것은 처음이다. 경총이 전경련 출범 이후 노사문제에 집중하는 기관으로 사실상 떨어져 나온 단체인 만큼 전경련 관계자들은 매우 불쾌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전경련 관계자는 "전경련은 대기업 가입사가 80%이고, 경총은 80%가 중견·중소기업"이라며 "역할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단체가 합친다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