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후폭풍·공급망 불안 겹쳐… 전기·가스료 인상요인에도 '동결'한전 적자 30兆·가스공사 미수금 9兆… 尹정부 "미룰수록 국민부담↑"정부 "에너지바우처 2배 인상"… 野, 7.2兆 '에너지 고물가지원금' 제안추경호 "국민 부담 봐가며 요금 추후 결정… 횡재세·추경 검토 안해"
  • ▲ 도시가스 배관.ⓒ뉴데일리DB
    ▲ 도시가스 배관.ⓒ뉴데일리DB
    설 연휴에 날아든 지난해 12월분 '난방비 폭탄' 고지서에 국민 불안과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정치권은 네 탓 공방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난방비 쇼크는 새 정부가 출범하며 예견됐던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생색내기식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억제됐던 인상 수요가 윤석열 정부 들어 분출됐기 때문이다. 포퓰리즘 청구서가 날아든 셈이다.

    대통령실은 26일 최상목 경제수석이 '난방비 절감 대책'을 브리핑했다.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현재 15만2000원인 겨울철 에너지바우처(이용권) 지원금액을 올겨울 한시적으로 30만4000원까지 2배 올린다는 게 골자다. 117만6000가구가 혜택을 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또한 사회적배려대상자에 대한 가스요금 할인액도 현재 9000~3만6000원에서 1만8000~7만2000원으로 2배 확대하기로 했다. 160만 가구의 가스비 할인 폭이 2배 커지는 것이다. 난방비 지원에 소요되는 예산은 1800억 원쯤이다.

    대통령실이 난방비 대책을 긴급 브리핑한 것은 급등한 난방비 부담에 취약계층은 물론 중산층마저 충격을 받으면서 민심이 심상찮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 불안과 불만은 쉽게 누그러들지 않을 기세다. 설 연휴가 끝나고 불어닥친 한파와 폭설 등으로 체감온도가 영하권을 밑도는 날이 늘면서 이달 난방 수요가 지난달보다 대폭 증가했을 공산이 다분하다. 한국지역난방공사 관계자는 "12월보다 1월에 더 추운 날이 많아서 난방 수요가 높고 사용량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달 사용분에 대한 요금 고지서는 말 그대로 '쇼크' 수준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 ▲ 민주당 난방비 폭탄 긴급대책회의.ⓒ연합뉴스
    ▲ 민주당 난방비 폭탄 긴급대책회의.ⓒ연합뉴스
    정치권은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난방비 폭탄 민주당 지방정부·의회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이번 사태를 빌미 삼아 대여(對與) 공세의 고삐를 죄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회의에서 "전쟁이나 경제 상황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며 "현 정부는 대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고 날을 세웠다. 이 대표는 정부에 7조2000억 원의 '에너지 고물가 지원금' 지급안을 제안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띄웠던 '30조 원 긴급 민생 프로젝트'에 포함된 5조 원 규모 '핀셋 물가 지원금'을 확대한 개념이다.

    이 대표는 '횡재세'(초과이윤세) 도입도 거듭 주장했다. 횡재세는 지난해 역대급 영업이익을 올린 정유사들에게 고통 분담 차원에서 추가로 세금을 걷자는 것이다. 하지만 조세전문가들은 횡재세가 조세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횡재세 구조가 초과이윤에 대해 추가 소득세를 물리는 방식이어서 거꾸로 법인이 손해를 본다면 손해분에 대해 혈세로 지원해줘야한다는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민주당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녹록잖은 게 현실이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지난 24일 논평에서 "문재인 정권은 나라 곳간을 거덜 낼 궁리만 했고 그 결과 국민은 나랏빚 1000조 원 시대를 맞았다"며 "새해가 시작된 지 고작 스무여 일 지난 상황에서 대규모 추경이 불가피한 사안을 민생 프로젝트라며, 일회성 현금지원에 불가한 정책이 경제를 살리는 만능카드라도 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여권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정책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며 공격에 나섰다. 난방비 급등의 체감도를 높이는 요인에는 전기난로와 온풍기 등 전기를 사용하는 난방기구도 한몫하고 있어서다.

    전기료는 지난해 3차례(4·7·10월)에 걸쳐 킬로와트시(kWh)당 19.3원 올랐고, 올 1분기에만 13.1원 급등하며 2차 석유파동 때인 1981년 이후 42년 만에 최고 인상 폭을 기록했다.

    전기료 인상은 한국전력의 30조 원에 달하는 적자 때문이다. 한전의 경영지표가 최악으로 치달은 데는 탈원전 정책에 따라 발전단가가 싼 원전 대신 비싸고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을 늘렸던 게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설상가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해 장기화하면서 석탄과 석유, 가스 등 발전 원료비가 급등했고 이는 고스란히 한전의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에 있다. 에너지 수입비용이 급등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요금을 올리는 데는 인색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20년 12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연료비 수입가격에 맞춰 분기마다 전기료를 조정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이전에 연료비 연동제가 이름값을 해 전기료가 오른 것은 2021년 4분기 한 차례뿐이다. 연료비 수입가격이 올라 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전기료를 계속 동결했고 연료비 연동제는 유명무실해졌다.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으로 말미암아 전기료가 올랐다는 비판을 피하려고 요금 인상을 일부러 억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지난해 6월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정부는 탈원전이라는 도그마가 있어 전기료를 어느 정도 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도 억누른 부분이 있다"면서 "에너지가 정치화돼서 전기료를 올리면 탈원전 때문에 올랐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방비와 직결되는 도시가스료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 시절 산업부는 새 정부 출범을 달포쯤 앞둔 지난해 3월 말 일반국민과 자영업자가 사용하는 주택용, 일반용 도시가스 요금을 평균 1.8% 올린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인상요인 누적에도 서민경제 안정을 위해 2020년 7월 평균 13.1% 인하한 이후 줄곧 동결해왔다고 강조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 2021년 12월 국제 유가 상승으로 비용 증가 압박이 커졌다며 가정용 도시가스 요금을 불가피하게 10%쯤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당시 가스공사와 업계는 요금을 계속 동결할 경우 2022년 3월 말 기준으로 미수금 규모가 3조 원에 달할 거라고 추산했다. 특히 가스공사는 요금을 일정 부분 올리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폭으로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어 충격파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거라고 경고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전기료를 동결하면서 가스료 인상도 틀어막았고 정권 이양을 한달 남짓 남겨둔 어수선한 시기에 가스요금을 기습적으로 올렸다. 더욱이 2021년 말에 '이듬해 민수용(가정용) 원료비 정산단가 조정안'을 의결하면서 가스요금 정산단가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7월(1.9원)과 10월(2.3원)에 2차례 추가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6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포퓰리즘 폭탄'을 정부와 서민이 뒤집어쓰고 있다"며 "민주당이 난방비 폭등을 두고 현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으로 무책임과 뻔뻔함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최 수석도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 몇 년간 인상 요인이 있었음에도 요금 인상을 억제했다"며 난방비 급등의 배경이 전임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에 있음을 에둘러 지적했다.
  • ▲ 추경호 경제부총리.ⓒ연합뉴스
    ▲ 추경호 경제부총리.ⓒ연합뉴스
    정부는 적정 수준의 가스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태도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가스요금 추가 인상 가능성에 대해 "국제시장에서 우리가 수입하는 천연가스 가격은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 있고 공기업 적자도 누적됐다"면서 "국민 부담을 봐가면서 적정 시점에 적정 수준의 요금 조정 문제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겨울철이 지나 가스요금을 추가로 올릴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난방비 폭탄 논란에도 추가 요금인상을 고려하는 것은 인상 시기를 미룰수록 나중에 국민에게 돌아가는 부담이 더 커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산업부 설명으로는 가스공사의 미수금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9조 원쯤에 달한다. 윤석열 정부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2026년까지 이를 해결하려면 어느 정도의 가스요금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다.

    추 부총리는 야당의 횡재세 도입 주장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특정 기업이 특정 시기에 이익이 난다고 해서 횡재세로 접근해 세금을 물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수익이 나면 법인세를 통해 세금을 납부하는 게 건강한 형태"라고 설명했다.

    추 부총리는 추경 편성에 대해서도 "현재로선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