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째 앞둔 공판… 기약없는 사법리스크자국주의 우선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 격화반도체 산업 위기감 고조 속 해법 마련 고심중이재용 회장, 6년간 재판 출석… 경영활동 발목까지
  •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와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니 마음이 무겁다."

    지난 2021년 11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년 만에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자리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당시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발언을 두고 글로벌 반도체 전쟁 등 급변하는 상황에 놓인 현실을 솔직하게 언급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삼성을 둘러싼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삼성의 주력 사업이자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반도체 사업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8일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이라며 반도체 산업의 위기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한층 격화된 반도체 패권 전쟁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제재로 촉발된 반도체 전쟁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나비효과로 돌아왔다. 미국이 지난해 제정한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이 대표적이다.    

    칩스법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10년간 중국에 반도체 시설을 신·증설하지 못하고 첨단 제조장비도 반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중국 견제 법안이다. 미국은 이를 통해 내 반도체 시설 투자에 최대 40% 세액공제를 하고, 반도체 인프라 투자에 500억 달러(약 56조 원)를 지원한다. 자국 기업인 인텔은 물론 한국의 삼성전자, 대만의 TSMC 등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단행한 이유다.

    최근에는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 제재로 맞대응하며 미중 '반도체 전쟁'이 새 국면에 접어든 만큼 삼성전자의 해법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에 유럽과 일본까지 반도체 육성에 본격 나서며 향후 치열한 경쟁도 예고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2년 초 세계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반도체 생산량을 현재 9%에서 2030년 2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본은 첨단 반도체 기술 개발을 높여 2030년 일본 내 관련 산업 매출을 현재의 3배쯤인 15조엔(142조원)으로 늘리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향후 10년간 민관에서 10조엔이 넘는 투자를 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도 이 회장이 경영활동을 활발히 펼치기에는 제약이 따른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이후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다.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지난 2021년 복권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2020년 9월 기소돼 2년 넘게 재판을 받고 있다. 3주 간격으로 금요일에 열리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재판에도 출석하고 있다.

    이 재판의 경우 국정농단보다 사안이 복잡하고 증거기록도 방대해 길게는 4~5년의 시간이 걸릴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초 이번 사건은 '회계처리 방식'을 두고 벌어진 사안인 만큼 불법성을 입증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대다수 회계 전문가들 역시 불법은 아니라는데 의견을 보이고 있어 1심 선고의 경우 빨라도 올해 말이나 내년에나 나올 전망이다. 

    이 회장은 해외 출장을 갈 때도 명절이나 하계휴가 등 법원 휴정기에 맞춰 일정을 조정해야 하고 장기간 머물기도 쉽지 않다. 복권 이후 출장 길에 오르긴 했지만 UAE, 일본, 미국 등 절반 이상이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 동행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법리스크가 삼성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이와 함께 사법리스크가 지속되면서 삼성의 컨트롤타워 구축에도 시간이 걸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 취임 이후 컨트롤타워 재건에 대한 기대감이 나왔지만 이렇다할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 2017년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해체 한 바 있다. 현재는 사업지원(삼성전자)·금융경쟁력제고(삼성생명)·설계조달시공 경쟁력 강화(삼성물산) 등 3개 태스크포스(TF) 체제로 운영 중이다.

    발 빠른 의사결정과 경영지원을 책임질 컨트롤타워 구축에 대한 기대감도 나왔지만 이렇다할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미 사법리스크로 인해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던 조직이 사라지고 잃어버린 6년을 보낸 상황에서 또다시 시간을 지체한다면 글로벌 반도체 경쟁력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재계에서는 효율적인 업무 조율과 위기 대응을 위한 컨트롤타워 기능과 역할은 필요하지만 여론의 눈치도 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재계 관계자는 "법정 출석으로 경영에 집중하기에는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