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채점 전 답안지 파쇄 사고 발생 후 5~6월 특정감사 시행반복해서 답지 분실 사고 겪고도 문제 해결 노력 안 기울여노동부, 중징계 3명 등 총 22명 징계 요구… 산인공엔 '경고'
  • ▲ 한국산업인력공단 전경.ⓒ한국산업인력공단
    ▲ 한국산업인력공단 전경.ⓒ한국산업인력공단
    지난 4월 사상 초유의 '채점 전 답안지 파쇄'로 609명의 응시자에게 피해를 안긴 한국산업인력공단(이하 산인공)이 최근 3년 동안 최소 7번의 답안지 분실 사고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매년 2차례 이상 '상습적'으로 답지를 분실해왔다는 얘기다. 답안지 파쇄 사고 전에 비슷한 사례가 7차례나 있었음에도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미흡해 결국 화를 불렀다는 비판이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12일 이런 내용의 '국가자격시험 특정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는 지난 5월22일부터 6월23일까지 한 달간 진행했다. 답안지 파쇄 원인과 책임 규명을 위한 이번 감사와 별도로 국가자격시험 운영 전반에 대한 감사도 6월19일부터 7월19일까지 한 달간 실시했다.

    답안지 파쇄 사고는 4월23일 서울 연서중학교에서 시행한 '정기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에서 벌어졌다. 이날 시험에 응시한 61개 종목의 수험생 609명의 답안지가 채점 전 파쇄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답안지는 전국의 각 시험장에서 지사로 통합하고, 이후 지사에서 채점센터로 옮겨지는 구조다. 파쇄된 답안지는 채점센터로 옮겨지지 않은 채 폐기 문서 목록에 섞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파쇄 전 1년 동안 보관해야 한다는 공단의 운영 규정도 어긴 채 곧장 파쇄에 들어갔다. 이날 분실된 답안지 4건의 사례까지 합하면 총 피해 규모는 613명에 달한다.

    감사 결과, 산인공에서 2020년 이후 최소 7차례의 답안 인수인계 누락 사고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채점센터에서 채점하려는 과정에서 답안지가 없는 것을 발견해 뒤늦게 각 기관에 연락하는 방식으로 수습이 이뤄졌다. 다행히(?) 7차례 모두 파쇄 전 폐기 문서들을 모아두는 곳에서 답안지를 찾아내면서 일단락됐다.

    이에 대해 노동부 감사담당관은 "4월 사고도 1년간 보관 규정을 지켰다면 비슷한 패턴으로 (문제 되지 않고)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며 "과거에 7차례나 이런 사고들이 있었으면 각 단계별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야 하는데, 이런 과정 없이 문제를 방치해 결국 사건이 벌어지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감사를 통해 파쇄 규정 위반과 재발방지 노력 미흡 이외에도 다수의 부적정 사실이 발각됐다. 산인공은 답안지를 시험장에서 지사로, 채점센터로 인수인계하는 과정에서 답안지 수량 확인과 인수인계서 서명 등을 시행하지 않았다. 문서 파쇄에 있어서도 파쇄 전 보존기록물 포함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파쇄 과정에서는 점검 직원이 상주하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지난해 5월9일에는 한 응시자의 답안지 6매 중 1매를 분실했음에도 당사자에게 별도의 상황 설명이나 보상 없이 임의로 채점을 마친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해당 사고는 응시자의 다른 시험 점수가 낮아 실제 당락 여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응시자는 시험에 불합격했으며, 아직도 본인의 답안지가 분실된 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태다.

    감사를 마친 노동부는 파쇄 사고에 책임이 있는 직원 총 22명에게 비위 정도에 따라 징계를 내리도록 조처했다. 중징계 3명, 경징계 6명, 경고 2명, 주의 11명 등이다. 산인공에도 시험 관련 사고가 지속해서 발생한 점에 대해 기관 경고 조치를 내렸다.

    노동부 감사담당관은 "최근 3년치 자료를 조사한 결과 (드러난 답안지 분실 사고가) 최소 7번이라 그전에도 비슷한 문제가 없었다고 볼 수 없다"며 "응시자의 답안지 1매를 잃어버린 채 자체적으로 추론해 채점한 것도 당락에는 영향이 없었다지만, 기관의 신뢰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 ▲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전 이사장(왼쪽 네번째)과 임직원들이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 답안지 파쇄사고와 관련해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연합뉴스
    ▲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전 이사장(왼쪽 네번째)과 임직원들이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 답안지 파쇄사고와 관련해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에 대해 산인공 측은 다른 검증 기관보다 자격시험 등은 월등히 많지만, 인력 충원율은 가장 낮고 시험 수수료를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받다 보니 인력 예산도 극히 부족하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사고 발생의 간접적인 원인으로 사정을 고려해달라는 의견이다.

    산인공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산인공의 1인당 업무량은 수험 인원과 종사 직원을 나눈 단순 계산으로도 7000여 명분에 달한다. 이에 비해 대한상공회의소는 5700여 명, 한국디자인진흥원은 600여 명 등이다. 시험 수수료는 최근 5년여간 동결된 상태다.

    산인공과 노동부는 조만간 이런 애로사항에 대해 해결 방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공단 내 전담팀(TF)이 노동부와 소통하면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노동부도 자체적으로 혁신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최초로 실시한 국가자격시험 전반에 걸친 운영실태 감사 결과에서도 다양한 위반 사실이 적발됐다. 해당 감사는 △출제 △시행 △채점 △환류체계 △조직·운영체계 등 5개 분야로 나눠 진행됐다.

    출제 분야에서는 기술사 채점위원 후보자 선정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실기시험 출제장 보안을 미흡하게 한 사례가 적발됐다. 시행 분야는 시험장의 수험자 현황 관리를 소홀히 하고, 시험 담당 직원의 교육을 실시하지 않은 경우가 지적됐다. 또 인수인계 관련 규정·절차 등의 보안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채점 분야는 채점센터로 답안 인수인계 시 보안 취약, 인수인계서 서식 불일치, 채점센터의 답안지·수험자 현황 관리 미흡 등이 문제로 꼽혔다. 환류체계 분야는 채점 리포팅제(10% 선채점 후 채점 보완) 결과 환류 부재, 사고 보고·조사체계 미흡, 국가자격 소관 부처와의 협업·소통부족 문제가 드러났다. 조직·운영체계 분야는 자체 시험장 부족과 업무량 대비 인력 충원율 부족, 낮은 검정수수료 등 산인공의 고질적인 인력·예산 문제가 지적됐다.

    이날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산인공이 주관하는 국가자격시험은 연평균 450만여 명의 국민이 응시하는 대규모 시험인 만큼 신뢰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공단은 철저한 원인 규명을 통해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해야 하며, 노동부도 철저히 관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