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개선 권고, 내년 상반기 개편안 예고해외서는 가격·무게·탄소배출량 등 혼합 적용무역협정, 친환경차 확대, 정책 등 ‘변수’
  • ▲ 행정안전부가 대통령실 권고에 따라 자동차세 과세기준 개편에 착수했다 ⓒ연합뉴스
    ▲ 행정안전부가 대통령실 권고에 따라 자동차세 과세기준 개편에 착수했다 ⓒ연합뉴스
    배기량 이외 가격 등 새로운 기준 적용을 앞두면서 자동차세 개편안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미 해외에서도 무게와 가격, 탄소 배출량 등 다양한 요소를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FTA와 친환경차 확대 정책 등은 자동차세 개편안 마련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국민참여토론 결과를 바탕으로 자동차세 부과 기준을 가격 등을 고려해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한국지방세연구원과 이달 중 자동차세 개편 추진단을 구성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개편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앞서 대통령실이 진행한 제4차 국민참여토론 이후, 자동차세 기준개선 찬반 결과 총투표수 1693표 중 1454표로 86%가 개선에 찬성했다. 찬성 응답자들은 시대 환경변화에 따라 합리적인 세금 체계를 갖출 필요성을 주로 언급했다.

    기존 배기량 중심의 자동차세 부과는 대형차 보유자에게 불합리할뿐더러 배기량이 없는 전기차·수소차 비중이 늘어나면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엔진 다운사이징과 친환경차의 등장으로 배기량 기준의 재산세로서 성격은 희석됐다는 평가다. 이에 배기량 외 차량 가액과 운행 거리에 따라 부과해야 한다는 개선 요구가 나온다.

    전문가들도 자동차세 과세표준은 한 가지 지표만을 사용하기보다는 재산과세적 성격과 환경비용적 측면을 모두 고려할 수 있는 혼합지표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김필헌 한국지방세연구원 지방세연구실장은 보고서를 통해 “차량가격 기준 과세는 형평성 제고에 도움이 되나 친환경 정책에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 과세는 국제 추세나 친환경 정책에는 부합하지만 과세 형평성은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자동차세 부과 기준에 다양한 요소를 적용하고 있다. 가격 기준의 과세 체계에 친환경차 보급 확대를 위해 세금 면제와 유예제도를 병행하는 형태가 대표적이다.

    미국에서는 주(州)마다 다른 자동차세 기준을 가지고 있다. 차량 가액에 따라 정액세를 도입한 주가 26곳으로 가장 많으며, 이는 1년에 정해진 금액만 내면 다른 세금을 걷지 않는 형태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차량에 높은 세금을 매기기도 하며, 차량의 연식과 마력에 따라 자동차세를 부과하기도 한다.

    중량과 출력은 주로 전기차의 과세표준으로 주로 쓰인다. 무게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는 재산세적 성격보다 도로 파손 등에 영향을 끼치는 운행 관련 요소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차량이 무거울수록 도로손상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으로, 덴마크 등에서도 과세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출력기준 과세는 내연기관과의 세부담 형평성과 연결된다. 전기차의 출력은 내연기관 차량의 배기량과 유사한 개념으로, 상호 변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내연기관과 친환경차가 혼재하는 상황에 적합하다는 측면이 부각된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27개 EU 회원국 중 21개 국가가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하고 있다. 1km 주행 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환산해서 배출량이 많을수록 많은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전기차 등 친환경차에 유리한 구조로, 전기차는 아예 세금 부과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한다.

    구체적인 과세 기준은 국가마다 다르다. 독일과 영국은 1km 주행거리마다 발생하는 탄소배출량 기준을 정하고, 이를 초과할 때마다 일정 금액을 부과하는 형태다. 프랑스는 탄소배출량을 여러 구간으로 세분화해 구간마다 다른 자동차세를 부과한다. 스웨덴 등은 연료 종류에 따라 탄소 배출량을 차등 적용한다.

    일본은 배기량을 기준으로 과세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한 세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친환경차에 대해 자동차세 부담을 덜고, 탄소배출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큰 차는 부담을 늘리는 형태다. 연식이 오래된 차는 국내 사례처럼 감면이 아닌 할증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해외의 다양한 자동차세 부과 사례를 검토하는 한편, 국내 세제 개편 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적지 않다.

    차량 가액 기준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친환경차 확대 정책과 충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도 부작용을 감안해 전기차는 가격이 아닌 중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거나, 보급 추이에 따라 과세적용 시기를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FTA도 세제 개편의 걸림돌이다. 미국은 협정 체결 당시 배기량 기준 자동차세가 대배기량 위주의 미국 자동차 수입을 막는 차별적 규정이라고 주장했고, 이를 한국이 수용한 바 있다.

    또한 미국은 국내 자동차세 세제개편을 제한하는 내용도 합의문에 포함시켰다. 한미 FTA 자동차 협정에는 ‘대한민국이 차종별 세율 차이를 확대하기 위해 배기량 기준에 기초한 새로운 조세를 채택하거나 기존의 조세를 수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후 자동차세 개편논의를 진행할 때마다 반대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초생활대상자 선정과 장애인 복지,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 지원 등 정책에 자동차세 배기량 기준이 활용되는 부분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현행 기초생활대상자 선정 시 소유한 자동차 배기량이 2000cc를 초과하면 재산가액 감면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편, 자동차세 개편이 가시화되면서 지자체에서는 세수 부족 우려도 나온다. 자동차세가 지방재정의 주요 재원조달 수단으로 기능하는 가운데, 전기차 등 저율과세 구조로 인해 재정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정책 목표에 맞게 다양한 과세표준을 적용하는 한편, 친환경차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필헌 연구실장은 “가격 기준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은 서로 장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구조”라며 “변수를 조합해 과세표준으로 삼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되며, 전기차는 중량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