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밀레이 후보 "정치인들이 발행한 지폐 가치 없어, 달러화 도입"환율 880→945페소, 7.3%↑… 좌파정권 퍼주기에 경제대국서 남미의 병자로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 巨野, 세수부족·나랏빚 급증에도 35兆 추경 타령
  • ▲ 유세장서 연설하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선 후보.ⓒ연합뉴스
    ▲ 유세장서 연설하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선 후보.ⓒ연합뉴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극우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52) 후보가 자국 통화인 페소화 대신 달러화를 도입하자고 거듭 주장하면서 아르헨티나 외환시장이 공황에 빠졌다. 전문가들은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가운데 아르헨티나 경제를 이 지경으로 내몬 '페론주의'(페로니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외신을 종합하면 지난 9일(이하 현지시각) 야권 대선후보인 '진보자유'의 밀레이 하원 의원이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페소화 대신 달러화를 도입하자고 거듭 주장하면서 달러 대비 페소화 환율이 945페소로 폭등했다. 지난 6일 1달러당 880페소에서 7.3%나 올랐다. 외환거래 마감 후 장외에서는 9%나 오른 1달러당 980페소까지 상승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밀레이 후보는 인터뷰에서 "페소는 가치가 없다. (페소는) 아르헨티나 정치인들이 발행한 지폐여서 배설물보다도 못하다"고 거친 표현을 쏟아냈다.

    밀레이 후보는 연 124%에 달하는 기록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해결책으로 중앙은행 폐쇄와 달러화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밀레이 후보는 지난 8월14일 치러진 대선 예비투표(경선)에서 총 711만 표(득표율 30.04%)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집권 여당 '나라를 위한 연합'의 후보인 세르조 마사 현 경제부 장관(507만 표)보다 200만 표를 더 받았다.

    밀레이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중이다. 오는 22일 치러지는 대선에서 당선을 확정 짓지 못하더라도 1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다 보니 환율시장은 밀레이 후보의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달러화 도입은 실현 가능성이 작다고 지적한다. 밀레이 후보의 공약은 개헌 없이는 불가능한 데다 현재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의 외화보유고가 마이너스(-) 수준이어서 화폐로 통용할 달러화 자체가 씨가 말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밀레이 후보는 공약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달러화에 필요한 자금은 300억 달러(40조 원) 수준이다. 이를 (조달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할 것이다. 액면가의 25%로 매입할 수 있어서 관심 있는 투자은행이나 펀드가 많다"고 말했다. 다만, 밀레이 후보는 관심을 보인 투자은행 등의 이름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 ▲ 물건 값 올리는 아르헨티나 상점.ⓒ연합뉴스
    ▲ 물건 값 올리는 아르헨티나 상점.ⓒ연합뉴스
    일각에선 실현 가능성을 떠나 밀레이 후보가 이런 공약을 들고나온 배경을 곱씹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르헨티나는 비옥한 토지와 목축업을 기반으로 1890~1920년대 1인당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미국·호주와 엇비슷했던,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었다.

    그러나 페론주의자들이 현금 살포식 복지정책을 남발하면서 아르헨티나는 한 세기 만에 수렁에 빠졌다. 페로니즘은 아르헨티나에서 1946~1955년, 1973~1974년 집권한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과 부인 에바 페론이 내세운 좌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성향의 경제 사회정책을 통칭한다. 외국 자본 배제, 산업 국유화, 공공의료·대중교통 등 공공지출과 복지 확대, 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수입 증대 등으로 요약된다.

    아르헨티나는 1976~1983년 군부 독재 기간을 제외하고 페론주의자가 권력을 독식했다. 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온건 성향의 페론주의자로 분류된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1인당 1만 페소 보조금 지급과 국민의 절반을 대상으로 하는 무상 공공의료 등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확장적 재정운용 기조를 유지했다. 지난해는 18세 이상 국민에게 50달러를 '기본소득'으로 주는 법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문제는 퍼주기식 경제정책은 인플레이션을 불렀고, 살인적인 물가와 경제 위기는 상점 약탈 등 극심한 사회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건체이스는 지난 8월23일 아르헨티나 경제 관련 보고서에서 올해 말 아르헨티나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기존의 150%에서 190%로 40%p나 올려잡았다. 생활고로 인구 10명 중 4명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 ▲ 추경.ⓒ연합뉴스
    ▲ 추경.ⓒ연합뉴스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 정책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선거철마다 퍼주기식 '표퓰리즘'으로 일관했던 문재인 정부의 확장적 재정운용과 닮았다. 기본소득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주장하는 기본소득·기본대출 등 이른바 '기본 시리즈'와 일맥상통한다.

    야당인 민주당은 지난 6월부터 이름만 바꿔가면서 35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한다고 정부·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불안이 다시 커지고 있고 세수 부족도 심각한 상황이지만, 민주당은 이에 아랑곳없이 나랏빚을 더 내서라도 추경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14일 발표한 재정동향을 보면 올해 1~7월 나랏빚(중앙정부 채무)은 1097조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 새 14조5000억 원 늘었다. 이미 올해 말 전망치인 1101조7000억 원에 근접했다.

    나랏빚은 코로나19 사태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660조2000억 원(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36%)이었던 국가채무는 지난해 1068조8000억 원(GDP 대비 49.7%)으로 급증했다. 문 정부는 '추경 중독'이란 비판이 나올 정도로 추경을 남발하며 적자국채를 발행해 왔다. 문 전 대통령 임기 동안 총 10번의 추경을 편성했고, 이는 고스란히 나랏빚으로 쌓였다. 급격한 나랏빚 증가로 윤석열 정부에서 부담해야 하는 이자지출 비용만 5년간 115조 원을 웃돌 거로 추산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