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선정 중단 권고…현대건설vs포스코이앤씨 경쟁 '찬물'정비업계 "신통기획 안착 사전작업"…소유주들 "재산권 침해"잇단 강경 대응에 사업속도 둔화…기존 사업지 이탈 가능성도
  • ▲ 서울의 한 아파트 재건축 현장. 사진=박정환 기자
    ▲ 서울의 한 아파트 재건축 현장. 사진=박정환 기자
    신속통합기획 최대어 가운데 하나인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양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먹구름이 꼈다. 서울시가 KB부동산신탁의 시공사 선정 과정에 위법 소지가 있다며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사업이 원점으로 돌아갈 위기에 놓인 것이다.

    시장에서는 신통기획의 빠른 안착을 위해 시가 선제적으로 시공사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사업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공적 부담만 가중한다는 지적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강남구 압구정3구역에 이어 한양아파트 재건축까지 시에 발목을 잡히면서 신통기획 반대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공공성 강화라는 명목 아래 소유주들과 설계·시공사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사업성에 대한 고려 없이 과도한 공적 부담만 지우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는 압구정3구역 재건축 설계사 선정 무효 건을 시작으로 강경 대응 기조를 지속하고 있다.

    앞서 진행된 압구정3구역 설계사 공모에서 신통기획 허용 용적률(300%)을 초과한 설계안을 제시한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가 선정되자 시는 즉각 반발하며 희림건축을 사기 및 업무방해, 입찰방해 등 혐의로 고발했다.

    이어 조합에 대한 운영실태를 점검해 총 12건의 부적정 사례를 적발하는 등 전방위 압박을 이어갔다. 결국 조합은 설계사 취소 후 재공모 절차를 밟기로 하면서 시에 '백기 투항'했다.

    지나친 공적 부담 요구로 주민 반발을 초래해 신통기획이 무산된 사례도 있다.

    '신통기획 1호'로 사업지로 주목받은 송파구 오금동 '오금현대아파트'는 20% 이상의 임대아파트 비율이 책정되자 일부 주민들이 반발하며 사업이 엎어졌다.
  • ▲ 서울 아파트 단지 전경. ⓒ뉴데일리DB
    ▲ 서울 아파트 단지 전경. ⓒ뉴데일리DB
    이번 한양아파트 경우 시공사 선정이 미뤄지면 '여의도 재건축 1호' 타이틀을 놓칠 가능성이 있는 데다 이미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가 막대한 입찰 비용을 지출한 상황이라 소유주와 정비업계의 반발이 더욱 거셀 것으로 보인다.

    한양아파트 재건축은 영등포구 여의도동 42 일대 588가구를 허물고 최고 56층, 5개동 아파트 956가구와 오피스텔 128실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지난해 12월 신통기획안이 최종 확정돼 시공사 선정 작업에 돌입했다.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는 각각 하이엔드 브랜드인 '디에이치'와 '오티에르'를 내세우며 치열한 시공권 경쟁을 펼쳤다.

    양측의 열띤 홍보전이 전개되던 가운데 한 민원인이 시에 "일부 시공사 대안설계가 가이드라인을 어겼다"는 민원을 제출했고, 시는 관할 영등포구청에 시공사 선정 과정 중 정비계획 위반사항이 있는지 조사하라는 행정지도 조치를 내렸다.

    현재 시는 KB부동산신탁이 확정되지 않은 신통기획안을 토대로 시공사 입찰공고를 낸 것에 위법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입찰공고 무효'를 권고한 상태다. 이로써 애초 29일로 예정된 시공사 선정총회도 개최가 불투명해졌다.

    정비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시의 '건설사 군기 잡기'로 보는 시각이 적잖다. 신통기획 참여 사업지가 늘고 있지만, 착공·입주 같은 실질적인 성과는 아직 없는 만큼 빠른 사업 진행을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한양아파트는 상위권 건설사간 시공권 경쟁을 시가 직접 개입해 중단시켰다는 점에서 업계에 미칠 파장이 압구정3구역보다 클 것"며 "신통기획안을 벗어난 어떠한 대안설계나 인센티브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보여줬기 때문에 향후 시공사 입장에서는 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과열 경쟁이나 잡음을 줄여 착공 등을 앞당기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과도한 개입은 오히려 소유주와 시공사들의 반발만 살 수 있다"고 부연했다.

    한양아파트 소유주들 사이에서는 시공사 선정 중단에 따른 재산권 침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시공사 선정총회 날짜가 확정된 만큼 우선 시공사 선정부터 마친 뒤 결격 사유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소유주들의 입장이다.

    건설사들도 불편함을 내비치고 있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입찰 참가 비용이 전체 공사비 1% 안팎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시공사 선정 중단 권고는 지나친 감이 있다"며 "시 권고대로 입찰공고가 무효가 되면 추후 건설사는 재입찰에 따른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주민들은 사업 지연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시의 '어깃장'이 표면상 조합 길들이기로 보일 수 있겠지만 진짜 타깃은 시공사 아니겠나"라며 "내년 상반기에 적잖은 신통기획 사업지가 시공사 선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전에 건설업계에 사전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의 과도한 강경 대응은 '신속한 사업 추진'이라는 신통기획만의 강점을 희석할 가능성이 크다"며 "강경 기조가 장기화할 경우 소유주들의 반발과 신통기획 참여 사업장의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