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집권당, 인플레 둔화하자 감세 시동… 총선 승리카드로 상속세 폐지 만지작한국 상속세율 세계 최고 수준… 세금 폭탄에 기업 경영권 불안·해외 이탈 가속넥슨 물납에 기재부 2대주주 등극 촌극도… 野 '부의 대물림' 프레임, 일각선 개편 목소리도
  • ▲ 발언하는 영국 수낵 총리.ⓒ연합뉴스
    ▲ 발언하는 영국 수낵 총리.ⓒ연합뉴스
    영국 정부가 내년 총선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감세정책, 특히 상속세 전면 폐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속세가 이중과세라는 지적과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를 매기는 한국의 경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부의 대물림'이라는 야당의 프레임은 철 지난 정치 구호에 불과하며 오히려 서민 증세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영국 텔레그래프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정부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감세 정책을 검토하는 가운데 상속세 폐지가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영국의 상속세율은 40%다. 면세 한도인 32만5000파운드(5억3600만 원쯤)를 넘어서면 부과한다. 주택의 경우 상속세 면세 한도는 50만 파운드(8억2000만 원쯤)까지 올라간다. 영국에서 상속세를 내는 가구는 전체의 4%쯤이다. 영국 정부는 상속세 수입으로 연간 70억 파운드(1조8000억 원쯤)를 거둬들인다.

    영국에선 지난 9월부터 상속세 폐지 여론이 형성돼 왔다.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선 상속세가 이미 소득세를 부과한 자산에 대해 세금을 또 매기므로 비도덕적이고 이중과세에 해당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지난달만 해도 영국 정부는 상속세 폐지에 유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집권 보수당은 지난달 23일 의회에서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소득세 격인 국민보험(NI) 요율 인하(12→10%), 내년 8월까지 주세 동결, 최저임금 10%쯤 인상 등을 발표했지만, 예상과 달리 상속세 인하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일각에선 보수당 정부가 상속세율을 절반으로 낮추는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했었다.

    수낵 총리는 그동안 보수당 내 감세 압박에 선을 그어왔다. 인플레이션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감세를 자제해왔다. 자칫 감세가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해서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경계한 것이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제1야당인 노동당에 지지율이 20%포인트(p) 이상 뒤지는 상황이 계속되자 돌파구가 필요해졌다. 노동당과 차별화하면서 보수당 전통 지지자들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어젠다가 필요해진 셈이다. 지난 10월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의 조사에서는 유권자 54%가 현 상속세 제도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답했다.

    영국은 늦어도 후년 1월까지는 총선을 치러야 한다. 현재로선 내년 가을 총선이 유력하지만, 일각에선 봄 조기 총선 가능성도 제기한다.

    여기에 최근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빠르게 떨어진 것도 보수당 정부의 분위기 전환에 한몫했다. 영국 예산책임청(OBR)은 지난달 연 4.6%를 기록한 물가 상승률이 내년 말 2.8%로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우리나라 상속세는 영국의 폐지 검토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기에는 이미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상속세 최고세율 기준으로 영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4번째다. 우리나라는 일본(55%)에 이어 50%로 2번째로 상속세율이 높다. 여기에 대기업 최대 주주 할증과세까지 적용하면 최고세율이 60%까지 치솟는다.

    삼성 일가의 경우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별세 후 12조 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보유 주식을 팔거나 막대한 이자를 물어가며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고 김정주 넥슨그룹 회장의 유족들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물려받은 넥슨 지주회사 NXC의 지분을 물납하면서 별안간 기획재정부가 게임회사의 2대 주주가 되는 촌극이 빚어졌다. 지나친 상속세 폭탄은 기업경영권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기업의 해외 이탈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우리나라 상속세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경영권 상속이 어려울 지경"이라며 "상속세율을 대폭 인하하거나 폐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야당은 부의 세습이나 대물림을 얘기하지만, 1999년 이후 상속·증여세는 세율이나 과표 변화가 없었다"며 "인플레이션으로 상속세를 안 내던 사람이 더 내게 된 것을 얘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령 재산이 강남에 있는 집 한 채가 전부인 가정에서 남편이 사망하면 아내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집을 팔아야 한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며 "이제는 부자증세가 아니라 서민증세가 문제다. 상속세 개편에 대해 전반적인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1일 박성욱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가 한국조세연구포럼의 학술지 '조세연구'에 발표한 '상속세 세율 및 인적공제에 관한 개선방안 연구' 논문에 따르면 현행 상속세는 과세표준 구간이 물가 상승 등의 경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박 교수는 지난 2000년 이후 현재까지 그대로인 최고 과표구간과 세율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최고세율 적용 구간을 30억 원 초과에서 50억 원 초과로 높이고, 최고세율은 50%에서 40%로 낮추자고 제언했다.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30억 원 이상 과표구간의 경우 현재 기준으로 120억 원 정도는 돼야 경제규모나 화폐가치에 맞다는 것이다.
  • ▲ 기업들 몰린 도심.ⓒ연합뉴스
    ▲ 기업들 몰린 도심.ⓒ연합뉴스
    최근에는 야당 내 일각에서도 상속세를 손볼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지난 26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초일류 대형 기업들이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도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초일류 기업을 더 많이 키워내야 함은 분명하다"면서 "기업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기업이 너무도 과도한 규제에 억눌려 있으니 정권이 바뀌면 줄 대기 바쁘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기업승계를 위한 상속세 개편을 더는 미뤄선 안 된다"면서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유족의 사례와 OECD에서 2번째로 높은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을 언급했다.

    이 의원은 "재벌기업을 보는 국민의 시각은 이중적"이라며 "부의 대물림에만 관심이어서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사는 지역에 대기업이 들어오길 희망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기업경쟁력이 곧 일자리 창출이며, 소득재창출의 통로가 된다. 기업을 미워하는 시대는 이제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반발도 만만찮다. 같은 당 이용우 의원은 지난달 13일 MBC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해 "우리나라는 과세포착률(정부가 세금 납부 대상의 소득을 파악하는 비율)이 50%다. 이것이 드러나는 시점이 상속이나 증여할 때"라며 "만약 과세포착률이 굉장히 높다면 상속세를 낮춰도 된다. 그런데 지금 그게 잘 안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