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10일 예결특위서 "상속세 건드릴 때 됐다" 발언 '눈길'與, 총선 앞 어젠다 선점하는 과정서 언급했다가 바로 부인하기도민주당 반발 불 보듯 뻔해… 총선 카드 활용 여부 두고 셈법 복잡
  •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상속세 논쟁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상속세 부담 축소를 추진하려던 정부가 '여소야대' 정국에 가로막히면서 개편 논의는 물 건너간 모양새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높은 상속세 최고세율과 유산세 방식이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개편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3%포인트(p) 내리는 개정안이 야당의 반대에 좌절된 이후, 방향을 틀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혼인증여공제다. 정부는 혼인신고일 전후 2년 이내 직계존속으로부터 받은 증여재산 1억 원을 추가로 공제해주는 내용의 개정안을 지난 7월 발표한 세법개정안에 포함했다. 대대적인 상속세 개편을 예고했던 것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었지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의 반대를 고려한다면 이해하기 힘든 것도 아니었다.

    야당은 과거에나, 지금이나 종합부동산세, 법인세, 상속세 인하 등 스스로 '부자감세'라고 이름 붙인 세제개편에 대해서는 타협이나 양보없이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런 세제개편에 동의하는 것은 마치 더불어민주당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이에 정부는 내년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에 변화가 생기면 상속세 개편을 추진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추 부총리는 지난달 20일 국정감사에서 "늘 논의를 진전시키다 보면 '부(富)의 대물림'에 대한 반감으로 벽에 부딪힌다"며 "국회도, 사회적 여건도, 이를 받아들일 태세가 좀 덜 된 것 같다. 상속세는 우선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작업부터 해야 할 것 같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던 추 부총리가 지난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상속세 체제를 한 번 건드릴 때가 됐다"며 "국회에서 개편안을 본격적으로 내주면 정부도 적극 뒷받침하면서 논의에 적극 참여할 용의가 있다"는 진전된 태도를 보였다.

    추 부총리가 한 달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은 여당의 태도 변화 때문이다.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내년 총선전략으로 △김포, 서울 편입 △공매도 일시 중단 △상속세 개편 △신혼부부·청년 정책 △노인 정책 등을 당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여당이 김포 서울 편입 이슈와 공매도 일시 중단으로 정책 이슈를 선점하며 재미를 보자 일각에선 상속세 개편도 들고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막상 이런 보도가 나오자 국민의힘은 "상속세 개편 추진은 사실이 아니다. 이 문제를 전혀 논의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도 추 부총리가 국회 예결특위에서 상속세 개편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은 교통정리가 끝나지 않은 여당 내부에 일종의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이 상속세 개편을 공론화할 수 있게 멍석을 깔아줌으로써, 상속세가 계속 이슈가 되게끔 만들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여당 입장에선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고도로 '계산된 전략'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과 관련해 기업 경영권 해외 매각 문제 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과 상속세는 '부자세금'이라는 인식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정부가 일종의 '여론 떠보기' 기회를 제공해 국민의힘이 선거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견해다.

    만약 상속세 개편에 대해 찬성 여론이 많다면 여당으로선 상속세 개편을 위해 총선에서 국민의힘에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반면 상속세 개편에 대해 야당의 주장처럼 '부자감세'라는 여론이 우세하다면 상속세 개편 논의는 총선 이후로 미뤄두는 것이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상속세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림으로써 세제개편에 대한 국민의 저항을 줄이려는 전략이라는 의견도 있다.

    때마침 최근 학계에서는 상속세 체계를 물가 상승과 세 부담 등을 고려해 개편하자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박성욱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는 지난 1일 한국조세연구포럼의 학술지 '조세연구' 최신호에 발표한 '상속세 세율 및 인적공제에 관한 개선방안 연구' 논문을 통해 "현행 과세표준 구간이 물가 상승 등의 경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세율이 높다"면서 2000년 이후 현재까지 그대로인 최고 과표구간 30억 원·세율 50%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최고세율 적용 구간을 30억 원 초과에서 50억 원 초과로 높이고, 최고세율은 50%에서 40%로 낮추자고 제언했다.

    이는 2003년 이후 월 10만 원을 유지하던 근로소득자 식대 비과세 한도 논란과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해 근로소득자에 대한 식대 비과세 한도가 오랫동안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들끓었고, 결국 올해부터 비과세 한도가 20만 원으로 상향된 바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은 실정이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13일 MBC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해 "우리나라는 과세포착률이 50%다. 이것이 드러나는 시점이 상속이나 증여할 때"라며 "만약 과세포착률이 굉장히 높다면 상속세를 낮춰도 된다. 그런데 지금 그게 잘 안 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과세포착률은 정부가 세금 납부 대상 소득을 파악하고 있는 비율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