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6兆 달빛내륙철도 일치단결해 통과… 사업성 없지만 예타면제 밀어붙여83만 영세소상공인 범법자 양산할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는 네 탓 공방만 치열불만 커지는 '실거주 의무', 유예로 급선회… K방산 지원할 수은 자본금 확충 외면
  • ▲ 빨간불 켜진 국회.ⓒ연합뉴스
    ▲ 빨간불 켜진 국회.ⓒ연합뉴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국회가 폭주하고 있다.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결승선을 향해 내달리는 모습이다. 결승선을 1등으로 통과하면 1억5000만 원의 세비와 불체포·면책 특권 등 180여 가지나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문제는 이 특권을 누리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결여된다는 점이다. 바로 국민과 경제 논리다.

    지난 25일 국회 본회의가 열렸다. 이날 국회 문턱을 넘은 법안 중 논란이 제기되는 것은 우선 광주와 대구를 잇는 광주~대구철도(달빛내륙철도) 특별법이 있다. 지난 1999년부터 논의된 달빛철도는 대구(서대구), 경북(고령), 경남(합천·거창·함양), 전북(장수·남원·순창), 전남(담양), 광주(송정) 등 6개 시·도와 10개 시·군을 지나는 영호남 연결 철도다. 대구 옛 이름인 달구벌과 광주의 순우리말 빛고을 첫 글자를 따 달빛철도로 불린다. 총길이 198.8㎞로 총사업비 4조5158억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달빛철도 특별법은 압도적 찬성(재석 216인에 찬성 211·반대 1·기권 4인)으로 통과됐다. 정치권에선 달빛철도를 영호남 화합의 상징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여당인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달빛철도 건설이 경제적 가치와 비견할 수 없는 영호남 화합과 소통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구호를 빼고 보면 달빛철도는 혈세 먹는 하마로 개통 이후 자칫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먼저 사업비가 논란이다. 국회 상임위 검토보고에 따르면 달빛철도 건설 사업비는 11조3000억 원쯤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8월 특별법안 발의 당시 예상한 사업비의 3배쯤 불어난 금액이다. 특별법이 의결될 때 고속철도가 일반철도로 바뀌고 복선화 부분이 빠졌지만, 단선 기준으로 최소 6조 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더욱이 여야는 이 사업에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 조항을 넣었다. 천문학적인 사업비가 투입되는 사업을 타당성 검토도 없이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예타 면제와 관련해 기획재정부는 다른 노선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국회는 예타 면제를 강행 처리했다.

    이 사업은 지난 2021년 3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사전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 분석(비용 대비 편익·B/C) 결과가 0.483으로 나왔다. 100원의 돈을 썼는데 그로 인해 얻는 편리함과 유익함은 48원에 그친다는 얘기다. B/C는 1.0을 넘어야 사업성이 있다고 본다. 운임 수입으로는 시설 유지도 안 돼 애물단지가 될 공산이 적잖다. 즉 달빛철도 사업은 경제성이 없는 철도건설에 수조 원의 혈세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쏟아붓겠다는 얘기다.

    정치권 안팎에선 여야가 4월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의 핵심 지지기반인 영·호남 지역 표심을 의식해 이 사업을 일치단결해 처리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1대 국회에서 특별법을 통해 지역 선심성 사업으로 예타를 면제해 준 사업은 달빛철도 외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가덕도신공항 등이 있다. 이들 3개 사업에만 최소 22조1000억 원의 국비가 투입된다. 경제성 분석도 없이 강행하는 사업들로, 장래 국가재정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 ▲ 중대재해처벌법.ⓒ연합뉴스
    ▲ 중대재해처벌법.ⓒ연합뉴스
    반면 국회는 이날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유예하는 개정안에 대해선 합의에 실패했다. 중소기업뿐 아니라 동네 빵집, 카페 사장도 처벌 대상이 돼 '법 시행을 2년 더 미뤄달라'는 영세 사업장의 절규를 외면했다.

    정부는 지난 24일 관련 부처 합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영세사업 현장에서 코로나19 등 피할 수 없는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아직 준비가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준비 기간을 더 달라고 호소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영세·중소기업의 경우 대표이사가 생산부터 기획·영업·안전관리까지 역할을 해서 중대재해로 처벌을 받을 경우 경영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고 한다"며 "83만7000개의 50인 미만 기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면 피해가 고스란히 그곳에서 일하는 800만 명 근로자의 일자리에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거야(巨野)인 더불어민주당은 공무원 일자리만 늘리는 옥상옥이 될 거라는 지적에도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전제조건으로 주장하는 중이다.

    일각에서는 총선을 의식해 여야가 다음 달 1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지각 처리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지난 26일 민주당이 분양가상한제 아파트에 대한 실거주 의무 시작 시점을 유예하는 주택법 개정안을 추진하기로 입장을 선회한 게 좋은 사례다. 그동안 정부·여당의 실거주 의무 폐지에 반대해 온 민주당은 최근 실거주 의무 시작 시점을 현행 '최초 입주 가능일'에서 '최초 입주 가능일로부터 3년 이내'로 변경하는 데 의견을 모으고 이를 여당에 제안하기로 했다. 지난해 '1·3 부동산대책'에서 실거주 의무 폐지를 발표했던 여당은 공식 제안이 오면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태도지만, 합의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야당이 상임위에 1년 넘게 계류돼 있던 법안 처리에 전향적으로 나선 배경에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입주 예정 아파트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자 당 지도부가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표심을 의식했다는 얘기다.
  • ▲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왼쪽)와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연합뉴스
    ▲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왼쪽)와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연합뉴스
    반대로 총선에서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은 본회의 통과가 묘연하다. 국회에는 수은의 자본금을 15조 원에서 최대 35조 원으로 늘리는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기획재정위에서 반년 넘게 표류 중이다. 자본금을 늘리면 윤석열 정부가 세일즈 외교를 통해 수주 실적을 내고 있는 방산·원전·해외건설 등에서 정부의 금융지원이 확대된다. 현재 수은 법정자본금은 98%가 소진돼 추가적인 자금 공급 여력이 없어진 상태다. 방산·사회간접자본(SOC) 등 수주 규모가 큰 사업은 통상 수출국에서 정책금융을 지원한다. 당장 방산업계에선 수은법 개정이 늦어지면서 30조 원쯤에 달하는 폴란드 2차 무기 수출이 무산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야당은 법 개정으로 대형 방산업체에 특혜를 몰아줄 수 있다며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형 프로젝트 사업에 대한 글로벌 수주전이 치열한 상황에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할 수밖에 없는 사업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 표심과 직결되는 사업이 아니면 민생과 국익을 위한 법안 처리도 등한시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흔히 중독에도 단계가 있다. 술, 섹스, 마약보다 끊기 힘든 게 도박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혹자는 도박보다 무서운 게 정치중독이라고 한다. 180여 개 특권을 누리는 정치의 맛에 빠지면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지는 모양이다. 서민들은 과자 한 봉지를 살 때도 어디가 저렴한지, 1+1 묶음 판매는 없는지, 주머니 사정은 괜찮은지를 꼼꼼히 따진다. 하물며 금배지를 다는 국회의원들은 일반 국민보다 소위 가방끈이 긴 전문직이 절대다수다. 그런데도 수조 원의 혈세를 들이는 사업을 타당성 조사도 없이 밀어붙이는 게 우리 21대 국회의 현주소이다. 해가 바뀌었지만, 경제상황은 여전히 어려운데 지금 정치중독에 빠진 이들 국회의원에게는 가장 중요한 민생과 국익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정치노름에 빠져 기본적인 경제논리는 까맣게 잊고 오직 제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