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작년 6월 축소 이어 아예 철수 단행IFRS17 하에서는 실적이나 경영 측면에서 불리생보업계 "'자금경색'을 뚫어주는 중요 판매 채널""카드슈랑스처럼 방카슈랑스 4단계 규제 완화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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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화재. ⓒ삼성화재
    삼성화재가 방카슈랑스(은행연계보험)을 통한 상품판매를 올 들어 전면 중단했다. 2003년 방카슈랑스 영업을 시작한 지 21년 만의 시장 철수다. 새 회계제도 도입으로 주력 판매상품인 저축성보험이 수익구조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판단해 판매 자체를 접은 것이다. 

    손해보험업계 1위의 '엑시트'로 손보업계의 줄이탈이 예상되면서 방카슈랑스 시장은 생명보험업계가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관련 상품판매 제한이 여전한 만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는 방카슈랑스 신규영업을 전면 중단했다. 은행과 방카슈랑스 제휴를 맺은 저축성·일반보험 등 보험상품을 판매하지 않고 기존 상품에 대해 관리만 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영업을 그만뒀다.

    삼성화재 측은 "방카슈랑스 채널에서는 주로 저축성보험을 팔다 보니 수익성이 안 맞아 축소해오고 있었다"며 "기존 판매한 보험상품의 유지·관리는 하겠지만, 장기보험의 경우 신규 판매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방카슈랑스는 2003년 8월 도입된 제도로, 은행창구를 통해 보험상품을 위탁판매하는 것이다. 은행을 접점으로 하는 만큼 보장성보험보다 연금과 같은 저축성보험 판매가 주를 이룬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간편하게 보험상품을 접할 수 있고 보험사는 판매 채널을 다각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규모 영업조직을 꾸리거나 관리할 필요 없이 전국에 퍼진 은행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보험사가 방카슈랑스로 누릴 수 있는 혜택 중 하나다. 은행은 보험판매로 수수료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앞서 삼성화재는 지난해 6월 방카슈랑스 원수보험료를 전년대비 20% 이상 줄이기로 한 데 이어 이번에 아예 철수를 단행했다. 당시 삼성화재는 방카슈랑스 조직도 줄였다. 기존 방카슈랑스 영업부를 방카업무지원센터로 축소하고 해당 부서에서 근무하던 직원 30여명 중 일부 관리직원만 남기고 다른 부서로 배치했다.

    삼성화재가 방카슈랑스 영업을 접은 것은 지난해 도입한 새 회계제도(IFRS17)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적용한 IFRS17은 보험부채를 시가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방카슈랑스가 불리하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많이 팔수록 내줘야 하는 비용으로 인식해 그만큼 충당금을 쌓는 등 회계상 불이익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이전에는 판매한 시점을 기준으로 수익을 인식했다면, IFRS17에서는 미래에 들어올 수익을 산출해 계약 전 기간에 걸쳐 나눠 인식한다.

    수익성 핵심 지표인 보험계약마진(CSM)은 보험계약 시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의 현재가치를 말한다. 즉 저축성보험처럼 궁극적으로 고객에게 돌려줘야 하는 상품은 수익이 이전처럼 크게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실적이나 경영 측면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방카슈랑스 시장에서 철수를 결정한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흥국화재, 메리츠화재 등 국내 손해보험사는 일찌감치 방카슈랑스 시장에서 손을 뗐다.

    특히 삼성화재와 같은 손보사들은 자동차보험이나 실손보험 같은 보장성보험을 방카슈랑스에서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사업 유지 필요성이 더 떨어진다. 현재 남은 주요 손보사도 △현대해상 △KB손해보험 △DB손해보험 △NH농협손해보험에 불과하다.

    이들은 여전히 방카슈랑스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인 고민은 커지고 있다. 대형손보 A사 관계자는 "방카슈랑스 사업 자체가 예전보다 시장 규모가 많이 줄었다"며 "아직 사업 철수는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고민은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손보 B사 관계자는 "판매량이 적은 데다 회계상 불리하게 작용하는 상품을 굳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유지할 이유가 없다"며 "생보사들과 손보업계 입장이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 손보협회에 따르면 보험판매 채널 가운데 방카슈랑스를 통해 보험에 가입하는 비중은 2.1%에 불과하다.
  • ▲ 국내 한 시중은행에서 운영하는 방카슈랑스. ⓒ뉴데일리경제 DB
    ▲ 국내 한 시중은행에서 운영하는 방카슈랑스. ⓒ뉴데일리경제 DB
    손보사들의 잇단 철수로 방카슈랑스 시장은 생보사들 중심으로 꾸려질 것으로 보인다. 생보사들은 방카슈랑스 채널에서 예·적금과 비슷하지만, 보험성격이 추가된 저축성보험의 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가입자를 유인했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유동성을 확보한 뒤 본업 외 투자부문에서 실적을 올리는 식이다.

    실제 '유동성 확보'가 목적인 생보사는 방카슈랑스를 통해 저축성보험을 적극적으로 판매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일부 보험사들이 보험가입 혜택을 제공하면서 저축성보험을 일시납으로 계약해 목돈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생보 C사 관계자는 "방카슈랑스는 여전히 보험사의 자금경색을 뚫어주는 주요 창구"라며 "고소득층과의 접점을 넓히는 차원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판매 채널"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소비자 선택권 보호 차원…"방카슈랑스 규제 완화 고민해야"

    업계에서는 금융소비자 선택권 보호를 위해서는 마지막 남아 있는 방카슈랑스 4단계(실손보험·자동차보험·변액보험·종신보험 등 판매상품 허용 확대)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카슈랑스는 도입 당시 시장안정성을 고려해 4단계에 걸쳐 저축성·보장성·만기환급형보험 등으로 확대했지만 보험설계사의 반발에 부딪혔고 종신보험과 자동차보험 판매는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금융당국도 시장의 주장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나, 대형사 등 특정 보험사로의 채널 지배력 쏠림과 설계사 등 기존 채널의 반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논의된 방카슈랑스 4단계도 업권 내 의견 차이가 뚜렷해 '중장기 계획'으로만 남겨뒀다.

    보험연구원 한 관계자는 "방카슈랑스 규제는 특정사의 채널 지배력과 설계사 등 기존 채널의 반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현실에 맞게 규제를 들여다볼 필요는 있지만, 금융지주 계열이나 전속설계사 보유 여부 등에 따라 보험사 간 의견이 극명히 갈리고 있다. 보험사간 예민한 이슈인 만큼 당장 금융당국에서 제도를 손질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는 '카드슈랑스(카드사에서 보험판매)'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보험업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올해부터 '카드슈랑스 룰'을 기존 25%에서 50% 수준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신용카드사에서 보험상품을 제공하는 보험사가 4개 이하라서 규제비율을 준수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보험회사별 판매 비중을 50%까지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향후 저금리 기조가 본격 시작되면 고금리 인기상품인 저축성보험마저 인기가 식어 방카슈랑스는 거의 개점휴업상태가 될 것"이라며 "그동안 유보됐던 판매상품 제한을 풀고 방카슈랑스 4단계 도입도 함께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