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상속세 재원 마련 위해 삼전 지분 또다시 처분최고세율 60%, 세계 최고 징벌적 세금 … 기업경영권 불안·해외 이탈 가속이중과세·서민증세 논란 가열 … 민주당은 '부의 세습' 프레임으로 반대
  • ▲ 상속.ⓒ연합뉴스
    ▲ 상속.ⓒ연합뉴스
    총선을 목전에 두고 상속세 논란이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고 세율 60%에 달하는 상속세가 기업의 투자, 고용 등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여당에선 상속세 개편을 이번 총선 공약으로 제시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또다시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하면서 상속세 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탈지 주목된다.

    9일 세종 관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유산세 방식으로 부과하는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해 그 결과가 이르면 이달 안으로 나올 전망이다. 총선 이후 분위기에 따라 오는 7월 세제개편안을 통해 상속세 개편안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유산취득세는 물려받은 재산만큼 상속세를 매기는 방식이다. 전체 유산이 아닌 상속인 개인의 유산 취득분에만 과세하는 방식으로 상속세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20개국이 유산취득세 방식을 택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속세 부과 방식은 유산세 방식이다. 피상속인(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의 재산 총액을 기준으로 누진세율 10~50%를 적용한다.

    우리나라 상속세는 명목 최고 세율 50%로 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다. 여기에 대기업 최대 주주가 물려받는 주식에 20%를 더해 상속가액을 계산하는 할증과세까지 적용하면 최고세율이 60%까지 치솟는다. 사실상 전 세계 1위에 해당한다.

    전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삼성전자 지분 524만7140주를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상속세 납부를 위한 재원 마련 차원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 사장은 올 들어 보유 지분 매각에 나서고 있다. 지난 1월 삼성전자(240만 주)와 삼성물산(120만 주), 삼성SDS(151만 주) 등 계열사 지분을 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해 총 5586억 원을 마련했다.

    이 사장을 비롯해 삼성 일가가 내야 하는 상속세는 12조 원에 달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지난 2021년부터 5년간 상속세를 분할 납부하고 있다.

    재계는 높은 상속세 부담이 기업의 경영의지는 물론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킨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상속세 부담으로 가업을 포기하는 기업들이 증가하면서 기업의 영속성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12월 협회 회원사 대표 7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무역업계 가업승계 관련 설문조사에서 가업승계 계획이 없다는 응답이 23.8%, 아직 결정을 못 했다는 답변이 31.2%로 집계되는 등 전체 절반 이상이 승계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업승계를 고려하지 않는 이유(복수응답)로는 상속세, 증여세 등 조세 부담을 꼽은 응답자가 40.2%로 가장 많았다. 가업승계에 대한 애로사항(복수응답)으로도 응답자의 74.3%가 조세 부담을 꼽았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주가 부양에 소극적인 이유도 높은 상속세 부담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증시 밸류업의 핵심이 상속세 인하라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 ▲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호텔신라
    ▲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호텔신라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 공약으로 세계 최고 수준인 상속세율 인하를 내걸었다. 지방의 기회발전특구로 본사를 옮기는 중소기업에 대해 상속세를 면제해 주자는 공약도 제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한국거래소에서 진행한 민생토론회에서 "소액주주는 보유한 회사의 주가가 올라가야 하지만,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 부담이 커진다"며 "상장 기업들이 가업을 승계하는 경우 주가가 올라가게 되면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독일과 같은 강소기업이 별로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나친 상속세 폭탄은 기업경영권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기업의 해외 이탈을 가속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우리나라 상속세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경영권 상속이 어려울 지경"이라며 "상속세율을 대폭 인하하거나 폐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으로 상속세는 폐지하거나 최고세율을 내리는 추세다. 영국 보수당 정부는 올해 총선을 앞두고 감세 정책을 검토하는 가운데 상속세 폐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정부가 상속세 폐지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상속세가 이중과세라는 지적과 불만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상속세가 이미 소득세를 부과한 자산에 대해 세금을 또 매기는 것이므로 비도덕적이고 이중과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상속세 인하는 부자감세라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수조 원의 세수 감소도 반대하는 이유다. 민주당은 우리나라의 과세포착률(정부가 세금 납부 대상의 소득을 파악하는 비율)이 50%로 높지 않고, 이게 드러나는 시점이 상속이나 증여할 때라며 상속세를 손질해선 안 된다는 태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야당의 시각은 철 지난 정치 구호에 불과하며 오히려 상속세는 서민 증세라고 지적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야당은 부의 대물림을 얘기하지만, 1999년 이후 상속·증여세는 세율이나 과표 변화가 없었다"며 "인플레이션(물가상승)으로 상속세를 안 내던 사람이 더 내게 된 것을 얘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가령 강남의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가정에서 남편이 사망하면 아내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그 집을 팔아야 한다"면서 "부자증세가 아니라 서민증세가 문제다. 상속세 개편에 대해 전반적인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