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5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교육부가 전경련과 함께 만든 ‘차세대 고교 경제교과서 모델’을 일선 고교에 배포하겠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인쇄를 중단시켰다. 저작권자 이름에서 ‘교육부’를 빼기 위해서라고 한다. 새 경제교과서 모델은 작년 2월 교육부와 전경련이 맺은 ‘경제교육 내실화를 위한 공동협약’에 따라 1년 가까운 작업 끝에 나온 성과물이다. 그래 놓고 이제 와 교육부가 갑자기 자기 이름을 빼겠다니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선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새 교과서 모델에 대해 ‘시장’과 ‘기업’에 편향돼 있다고 반발하는 성명을 냈다. 교육부 관계자가 교과서 제작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청와대에 다녀온 직후 인쇄 보류 결정이 나온 것도 석연치 않다. 교육부가 전교조 등의 눈치를 살피거나 청와대 압력에 밀려 태도를 바꾼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만한 것이다.

    전교조와 민노총의 반박도 책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교조 등은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은 높은 임금을 받아들이는 대신 노동자를 적게 고용하는 쪽으로 결정하게 된다’는 부분이 실업의 책임을 노조에 돌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문장은 노조의 필요성을 알아보기 위한 ‘탐구 활동’의 설명문에 들어 있다. 노조와 기업의 이해가 서로 엇갈릴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나오는 말이다. 노조 비판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새 교과서 모델은 기업 목표가 이윤 추구라고 밝히는 등 기존 교과서들이 반시장·반기업으로 기울어 있던 것을 바로잡고 있다. 교육부가 새 경제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한 것 자체가 학생들에게 시장과 기업을 제대로 가르쳐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그랬던 교육부가 교과서도 아닌 교과서 모델을 놓고도 전교조와 민노총의 한마디에 몸을 사려 버린 걸 보면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이 땅에 발을 굳게 디디기가 힘들긴 힘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