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29년간 유지돼온 방송체제가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됐다. 국내 방송의 역사는 일본 강점기 때인 1927년 경성방송국에서 최초의 라디오방송을 했던 것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82년째지만 KBS 전신인 서울중앙방송(HLKA)과 기독교방송(CBS), 부산문화방송 등이 문을 열었던 해방 이후에 본격화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실질적인 방송의 역사는 1963년 12월 국영방송이었던 KBS가 TV 방송을 시작하고 1964년 5월 TBC-TV 개국, 1969년 8월 MBC의 TV 방영이 이어지던 60년대이다. 이때부터 방송질서 정립을 위한 제도적 규제장치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63년 9월 첫 방송법이 제정 공포되고 방송윤리위원회가 설치되기에 이르렀으나 군사쿠데타 세력의 방송통제 기구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후 방송의 영향력 증대와 함께 방송 내용의 편향성이 논란이 되고 중립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자 1972년 한국방송공사법이 제정돼 이듬해 국영이었던 KBS가 한국방송공사로 개편됐다. 우리나라에 처음 공영방송 체제가 등장한 것이다. 당시 KBS는 독립된 법인격을 갖추고 시청료를 징수하는 등 독자적 회계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했으나 정부의 업무감독권이 제한 없이 인정되는 등 국영방송의 틀을 완전히 벗지 못했다.

    더불어 당시의 상업방송은 정치권과 유착, 과당경쟁을 펼치고 저질문화를 양산한다는 등 비판을 받으며 이후 1980년 방송통폐합의 구실을 만들어주게 됐다. 신군부가 출범한 이후 언론통제를 위해 언론인 숙정과 언론통폐합 조치를 단행한 이후 역설적으로 공영 독점 체제가 정착되면서 오늘날 방송시장의 근간을 만들었다. 강압적인 방송 통폐합으로 TBC-TV가 KBS 2채널로 흡수됐으며 KBS가 MBC 본사의 주식 70%를 소유하고, MBC 본사가 다시 지방계열사 주식의 51% 소유하는 구조가 됐다. 방송사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국가가 독점적 소유의 위치를 점하게 된 셈이다. 

    또 방송에 대한 사적 소유도 원천적으로 금지됐고 신문과 방송, 뉴스통신 간의 겸영도 금지됐다. 당시 신군부는 신문과 방송을 아우르는 `언론기본법'으로 외형상 공영체제를 유지하면서 모든 미디어를 규율해오다 결국 정치적 독립성, 공적 통제 기구 등 제도상의 문제점으로 1987년 이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1990년 9월 방송의 시장논리를 수용, 민영방송의 도입을 골자로 한 정부의 방송법 개정안이 `날치기' 통과되면서 1990년대 방송구조는 공·민영 체제로 전환됐다.

    KBS, MBC, CBS, PBC 등 4개 방송사 노조가 제작거부에 들어가는 등 반발이 거셌지만 결국 민영방송 SBS가 1991년 12월 개국한 데 이어 1995년부터 지역 민영방송들이 연속 출범하는 등 지상파 방송은 본격적인 공·민영 방송 체제가 전개됐다. 당시 소유구조는 MBC가 KBS와의 연계 고리를 끊고 새로 신설된 공익법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지분 70%를 소유하는 구조로 전환됐지만, MBC 본사와 지역 MBC 간의 소유구조는 수직적 계열화가 유지됐다.

    반면 민영방송은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채널과 함께 30% 이상을 소유할 수 없도록 했다. 공적 주체에 의한 방송과 사적 주체에 의한 방송의 소유규제에 차별을 둔 것이다. 요컨대 80년대가 KBS와 MBC 두 공영채널의 제한적 경쟁시대였다면 90년대 이후는 공. 민영채널 간, 지상파채널과 뉴미디어채널 간 경쟁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뉴미디어의 등장이 본격화하자 지상파방송을 비롯해 케이블TV, 위성방송, 유사방송 등을 아우르고 방송위원회 신설을 골자로 한 통합 방송법이 1999년 12월28일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통합 방송법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정작 방송통신 융합, 디지털 전환 등 기술적 알맹이를 빠뜨렸다는 비판을 받고 곧바로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는 등 여전히 개정의 불씨를 남겨뒀다. 현행 방송법이 편의적으로 짜깁기 된 누더기 법안이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이후 미디어시장의 변화와 정치적 지형의 변화로 방송 진출을 노려온 신문업계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변곡점을 오르내리고 방송산업도 경기침체로 약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게 됐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출범 직후 미디어산업 발전을 기치로 내걸고 29년 만에 방송, 신문 등 미디어 규제를 변혁하는 발걸음을 떼면서 지난 1년간 우리 사회는 `미디어 개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야 했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