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지난 제품 불법판매 '기승'정부·업계 “판매 금지는 당연”...관련법안은 국회서 '차일피일'
  • ▲ ⓒ 현재 샘플화장품은 온라인쇼핑몰을 통해 수백 개의 유통업체들이 판매하고 있다.
    ▲ ⓒ 현재 샘플화장품은 온라인쇼핑몰을 통해 수백 개의 유통업체들이 판매하고 있다.

    직장인 박 모(여.37세)씨는 평소 피부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터라 고가의 브랜드 화장품을 애용한다. 그녀는 어느 날 친구에게 비싼 정품 대신 온라인에서 저렴하게 파는 샘플화장품 얘기를 듣고 한 온라인쇼핑몰에서 로션 제품을 구매했다. 하지만 박 씨가 화장품을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볼과 턱에 빨갛게 염증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피부과에서 화장품 사용으로 인한 접촉성 피부염 진단을 받았다. 이상히 여긴 박 씨가 샘플화장품 유통기한을 확인해 보니 3년 전이었다.

     

    여성들이 아무리 예뻐지고 싶은 욕망이 강하더라도 화장품에 지출할 수 있는 액수는 한정돼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좀 더 저렴한 가격에 품질이 좋은 제품을 구매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 샘플화장품은 정품 대비 같은 용량을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으며 고가의 화장품을 미리 테스트해볼 수 있어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문제는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샘플화장품이 사용기한이 지나거나 제조처가 불분명한 제품이 시중에 유통되며 앞선 사례처럼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샘플 화장품 부작용 상담은 지난 2005년부터 급증해 한 해 약 300건씩 피해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이에 따라 샘플화장품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지만, 딱히 적용할 만한 법적 규제가 없어 여전히 온라인상에서 샘플화장품 판매 사이트는 계속 기승을 부리고 있다.

     

    ◇ 유통기한 경과 샘플화장품 판매...처벌규정 없어 소비자 피해만
    최근 들어 샘플화장품 피해 사례가 급증하는 이유는 유통기한을 넘겨 변질된 제품들이 유통된다는 데 원인이 있다. 통상 화장품 샘플은 제조업체들의 수량 확인 등 관리가 엄격해 판매업자가 대량으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인터넷 상에서 판매하는 샘플화장품들은 판매업자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모은 것일 가능성이 크며, 그만큼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일 확률이 높다.

    이처럼 유통기한이 지나 변질된 화장품을 쓰면 피부에 세균이 그대로 옮겨져 감염이 일으키며 뾰루지와 피부염증 등이 발생한다. 계속 사용할 경우 만성여드름 등으로 악화돼 치료에 오랜 기간이 걸릴 수도 있다.

    특히 샘플화장품은 판매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적혀져 있지 않으며, 적혀져 있더라도 알아 볼 수 없는 문구로 적힌 경우가 많다. 피부과 전문의들은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샘플화장품은 정확한 유통기한을 알 수 없어 오래된 제품일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샘플화장품은 G마켓, 옥션, 11번가 등 대형 인터넷 쇼핑몰에서만 수백 개의 유통업체들이 판매를 하고 있으며 왕샘플, 비비슈, 미니1004 등 아예 샘플만 파는 화장품 쇼핑몰도 수십 개에 달한다.
    한 오픈마켓에선 '설화수 자음수' 15㎖ 샘플 3개가 4800원에 판매돼 정품 용량(125㎖)으로 환산해도 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한 오픈마켓 관계자는 “요즘엔 화장품회사에 OEM으로 납품하는 하청업체에서 나온 샘플화장품까지 암시장을 통해 대량 유통돼 판매상들이 더 값싸게 샘플을 판매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 화장품법 상에는 판매금지에 대한 조항 13, 14조에 샘플화장품 판매금지조항이 전혀 없어 돈을 받고 샘플화장품을 판매해도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애꿎은 소비자들의 피해만 계속 늘어가고 있다.

     

    ◇ 일각선 샘플제품 옹호 제기...안전성에 위험 초래

  • ▲ ⓒ 샘플화장품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현행 관련 법률이 없기 때문에 소비자는 보상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사진:MBC)
    ▲ ⓒ 샘플화장품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현행 관련 법률이 없기 때문에 소비자는 보상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사진:MBC)

    샘플화장품 판매가 문제가 되는 와중에도 일각에서는 소비자의 편의성을 들어 샘플화장품 판매가 계속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보다 싼 가격에 비싼 종류의 화장품을 체험하려는 소비자의 욕구가 억누르고 법적으로 판매를 금지시킬 경우, 음성적으로 판매되는 유통경로만 새로 만들어 다른 피해자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샘플화장품을 구매한 일부 소비자들은 “본품은 너무 비싸 샘플들을 모아서 이용해 왔다”, “원래 잘 사용하지 않는 아이템인데 가끔 필요할 때가 있어 저렴한 샘플로 구매했다”, “싼 가격이라 별 다른 기대를 안 하고 샀는데 생각보다 제품이 좋았다”, “파우치도 깜찍하고 귀엽다” 등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한화장품협회 관계자는 “유통과정에서 샘플화장품에 문제가 생겨 소비자가 보상을 요구할 경우, 현행 관련 법률이 없기 때문에 제조회사나 판매자에게 책임소재가 없어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고 말했다.

    이어 “화장품회사가 샘플화장품을 만들 때는 신제품 출시 등과 맞춰 일정한 양을 생산하며 유통기한 등 여러 가지 대내외적인 환경을 고려해 재생산하게 된다”며 “실제로 유통되는 샘플화장품은 유통기한이 경과돼 판매되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서도 판매가 금지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 판매금지 법안 국회 상정중...심사는 '차일피일'

    샘플화장품의 피해 사례가 급증함에 따라 비정상적으로 판매 유통되는 샘플화장품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지속적으로 샘플화장품 불법판매를 금지하자는 의견을 제기해 왔다.

    현재 화장품법상으로는 샘플화장품 판매제한이 없고 샘플은 판매 목적이 아니므로 제조일자와 유통기한을 표시할 의무가 없어  샘플을 산 소비자에게 피부 부작용 등 피해가 발생해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실정이기 때문에 제조업체, 판매업체 어디에도 확실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경우 소비자는 한국소비자원의 조정을 통해 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정선 의원(한나라당)은 지난해 4월, 샘플화장품 불법판매 금지 내용을 포함한 ‘화장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당시 이 의원은 “견본품이나 비매품 등을 소매상 등의 판매자들이 대량으로 수집해 판매, 시중에 많은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소비자가 제조일자나 유통기한 등을 알 수 없어 품질이 변질된 물건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화장품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판매의 목적이 아닌 제품의 홍보․판매촉진 등을 위해 미리 소비자가 시험·사용하도록 제조 또는 수입된 화장품을 판매하거나 판매의 목적으로 보관 또는 진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화장품 제조ㆍ수입ㆍ판매업자들은 화장품 샘플을 판매하거나 제조 연월일 등 표시 사항을 위ㆍ변조할 수 없게 되며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하지만 현재 이정선 의원이 발의한 ‘샘플화장품 판매 금지’ 법안은 국회에 상정돼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이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복지위의 여러 가지 법률안이 겹치면서 의사일정상 심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며 “심사가 언제 될지 확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정위에 올라가기만 한다면 사안 자체가 명분이 충분하기 때문에 통과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이 의원은 환경노동위원회로 옮겨가 보건복지위원회 사안인 법안 추진이 향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식약청에서도 처벌한 근거 법률이 없기 때문에 샘플화장품 판매업자를 적발하고 처벌할 수 없어 판매금지 법안 통과가 절실하다. 식약청 관계자는 “현재 샘플화장품 단속을 하기 위해서는 법률을 개정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 역시 샘플화장품은 해당 화장품 제조사들이 소비자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개념이므로, 이를 소비자에게 대가를 받고 판매하는 행위는 당연히 금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샘플화장품은 구매 의사를 갖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제공해 본품을 구매하기 전에 자신의 피부에 맞는 지에 대한 사전 테스트와 함께, 신제품이 출시됐을 때 기존의 제품과의 차이점 등을 비교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한 화장품업체 관계자는 “샘플화장품은 정상적인 오프라인 매장 등 유통경로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계속 유통될 경우 브랜드 이미지나 신뢰도에 타격이 갈 것으로 우려된다”며 “정상적으로 제조사를 통해 배포한 샘플 화장품이라면 소비자 피해가 생길 경우 필요한 보상 조치를 해줘야겠지만, 불확실한 경로를 통해 모아온 샘플을 판매하는 경우는 통제할 방법이 없어 책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샘플화장품 판매금지 법안 등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제조사가 달리 규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밝혔다.